미래에서 온 편지 22호 (2015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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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제22호

2015.7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www.laborparty.kr

값 10,000원

지금+여기 노동당 ■ 2015 정기 당대회 스케치 당원총투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기획 ■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당의 위기,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표지 이야기

노동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르포작가 이선옥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2003년, 한진중공업의 김주익과 곽재규 열사의 장례식에 갔어 요. 당시에 투쟁과 죽음 끝에 노동조합의 요구안대로 타결되었다고 미래에서 온 편지 제22호

언론들이‘노조의 완승’ 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기사를 내더라고요. 그 런데 그것이 어떻게 완승이에요? 장례식장에 갔는데 40~50대의 경 상도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울었어요. 소리 내서 통곡하는 게 아니라 다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어요. 만장을 들고 있는데… 눈물을 닦는데… 작업복 소매가 다 헤져 있었고…. 깊은 슬픔이 가득 했어요. 그것을‘완승’ 이라고 표현하다니….”

발행인 나경채 편집인 이장규 위원회 김건담 김성현 김헤연 박권일 백시진 장석준 정정은

정철수 조윤호 최백순 교 열 정정은 최백순 디자인 고미숙

이선옥 작가는 그 광경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눈물 을 흘렸다. 알려지는 것과 진실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고, 자기라도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영등포, 라00407)

그광경을 세상에알리고싶어서글을 썼다.

발행일 2015년 6월 30일

슬픔을 보고, 슬픔 속에 깃든 진실을 발견하고 전달해온 이선옥 작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주 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노동당

가지만,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만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설득해

전 화 02) 6004-2006, 2007

야 할 대상은 같은 편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 진실을 알고

팩 스 02) 6004-2001

있는사람들이아니라진실을 모르고있는사람들이기때문이다. “약자 대 강자의 구도가 꼭 옳지만은 않아요. 약자에 편에 서는 것 이 정의라고 말하지만,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 이선옥 작가의 인터뷰 전문은 116~121쪽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메일 laborzine@gmail.com 홈페이지 www.laborparty.kr 인 쇄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973-15 원일컴 가격 10,000원


미래에서 온 편지

‘ 미래에서 온 편지’ 는 영국의 사회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미술가인 윌리엄 모리스가 1891년에 낸 소설 제목

News 『News from Nowhere』 을 우리말로 의역한 것입니다. from Nowhere

nowhere는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는 뜻입니다. ‘ 유토피아’ 라는 말의 원래 의미도 ‘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이라고 하지요. 이제 노동당의 기관지에 ‘ 미래에서 온 편지’ 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한국 사회의 답답한 현재에 햇살을 들이는 미래의 틈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러고 보니 nowhere는 now+here(지금 여기)이기도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미래가 되기 위해, 이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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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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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지도가 없어도, 계속 걸어야 한다|<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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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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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 2015 정기 당대회 스케치 당원총투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최백순

특집 ■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12 최저임금 1만원,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오민규 17 하루를 빠지면, 삼일이 까진다?|김민하 22 더 나은 최저임금제?|이정아 27 알바노조 투쟁과 청년 최저임금 실태|이가현 32 ‘최저임금 1만원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운동본부’ 의

구성과 기획|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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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6|청년학생위원회 대의원 안현진 “녹색의 세대를 잇는 가교를 위해” |김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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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르포 우리가 또다시 힘들게 투쟁한다면 그때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는가?|서분숙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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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가 정답이다|이현정


2015년 7월 제22호

·목차

기획 ■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36

당의 위기,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최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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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을 논평하다 국회법 개정안, 청와대의 결정은?|황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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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현장에서 지역문제 해결, 보다 깊이 보다 다양하게|김강호

84

먼 좌파 이웃 좌파⑯ 보수와 석유의 장기 지배에 마침표를|장석준

90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2015년 서울시대중교통 요금인상 투쟁기|김상철

100

연속기획 한국 대학 체제의 형성⑦

대학 기업화의 빌미를 준 김대중 정권과 BK21|김예찬

삶과 문화 104

성정치 칼럼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의 춤을 출 것입니다|강현주

108

메아리 공업사③ 해운대 에코에코, 꿈의 첫발을 내딛다|화덕헌

112

오보로 보는 한국언론 사망선고는 뉴스가 하는 게 아니다|조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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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찾기 노동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르포작가 이선옥

“언제 유명해지고 싶냐면요… ” |나도원 122

노래의 꿈 점거|민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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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파견의 품격?|공기

128

편지를 접으며 우리가 정말 진보했을까|박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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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띄우며

지도가 없어도, 계속 걸어야 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고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한가’ 라는 루 카치의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별을 보고 지도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기껏해야 방향만을 알 수 있 을 뿐이죠. 방향을 안다고 해도, 그 방향에 무슨 장애물이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길을 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방향만을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길을 모른다고 제 자리에 머물러 있거나 이리저리 헤매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을 택해서 그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길을 되찾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별이 있으면 있는 대로, 별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의 방 향으로.

결국 일관된 방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가다보면, 얼마나 더 가야할 지 모르기에, 게다가 이 방향이 과연 맞는지도 알 수 없기에, 다른 방향을 택하고 싶은 유혹에 휩싸이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방향 을 택한다고 그 길이 더 빠른 길이라는 보장은 없거니와, 자칫하면 제 자리에서 맴도는 결과가 될 수도 있 습니다. 가다가 정 힘들면 그 자리에서 한동안 쉬더라도, 쉬고 나서 다시 원래의 방향대로 걸어가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리의 방향은 무엇일까요.‘노동당’ 이라는 이름대로, 결국 노동의 가치를 지키는 것일 겁니다. 당의 진로가 어떤 식으로 결정이 나든, 노동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당장 길이 보 이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기 이전에,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노동의 가치라는 방향성을 견지하고 있는지 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 내년의 최저임금 결정시한이 막바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호의 특집은 최저임금을 다루었 습니다. 당의 진로를 놓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좀 한가한 특집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시기일수 록 우리는 더더욱 우리 당 밖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방향을 잃지 않는 방 법이기도 합니다. 지도가 없어도, 한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2015. 6. 30 <미래에서 온 편지> 편집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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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모집 오늘 우리의 한 걸음이 길을 엽니다. 미래가 됩니다. 우리는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 사람과 자연이 공존 가능한 지구생태계, 차별과 소외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 …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없는 길을 만들고, 스스로 길이 됩니다. 그래서 노동당의 꿈은 곧 <미래에서 온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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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당원총투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2015 정기 당대회 스케치 글 : 최백순 편집실장|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2015년 노동당 정기 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최대 쟁점이었던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은 재석 284명 중 118명 찬성으로 부결됐다. 의결정족수는 143명이다. 다수의 대의원들은 진보결집이 현재로서는‘시기상 조’ 라는 의견을 밝혔다. 요컨대 진보재편은 노동당이 계속 추진해야 하는 과제임에는 분명하나 총선을 앞 두고 무리하게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대의원들은 일정기간 동안 시간을 두고 노동당을 중심으 로 내실을 닦아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했다. 총선 기본방침안은 재석 279명 중 163명 찬성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전례없이 많은 대의원들이 찬성 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이후에도 많은 보완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반대의사를 밝 힌 대의원들은“빠르게 준비하는 것보다 제대로 준비하는 것이 준비하는 것이 중요” 하다는 점을 강조했 6


다. 반면에 찬성의사를 밝힌 대의원들은“부족하더라도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당의 총의를 모으는 방안” 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당원총투표는 당을 분열시키는 안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에 대한 의결정족수에 관한 질의가 이어졌다. 당의 조직진로의 건에 해당하는 안 건이므로 3분의 2가 맞지 않느냐는 내용이었다. 이덕우 의장은 부의안의 취지가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 이므로 과반결정에 해당하는 사항이고, 이후 추진결과는 당헌 10조 3호에 따라 임시 당대회를 개최해 3분 의 2로 처리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제시했다. 구교현 대의원은“지금 제기되는 통합이 과거의 통합과 다른 것은 무엇이며, 이것이 노동당에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인가” 라고 질의했다. 대표 발의자인 나경채 대의원은“과거와 같이 실패한 방식은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당원총투표라고 하는 방식” 이라고 답변했다. 아래로부터 당원의 의사를 물어 진행하는 것이 실패하지 않고 힘을 모으는 방안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히“2011 년은 새로운 당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테이블 위에서 진행되었다. 노동자·농민이 투쟁하는 현장에서 진 행된 것이 아니라 책상 위에서 모든 힘을 쏟았다. 현장에서 연대연합의 정치를 펼치고 진보정치결집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다.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을 같이 했고,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 에 가서 진보정치가 결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에게도 그런 점들을 설명했다. 아직은 부족하지 만 2011년도 논의와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 답변했다. 지금+여기 노동당 7


찬반토론을 앞두고 이덕우 의장은“당 게시판이나 사석에서 서로 주고받은 비난과 모독도 있었다고 본 다” 는 점을 환기시킨 후 지금 이 순간엔 모두 잊고 토론에 충실해줄 것을 당부했다. 찬성토론에 나선 경남도의원 여영국 대의원은 먼저, 무상급식 투쟁 등으로 노동당이 (지역의)중심에 서 있었음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노동당이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는 현실을 소개하며 진보결집이 지역에서 다시 대표성을 부여받는 방안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특히, (노동자 밀집지 역에서)노동자들에게 큰 희망이 되는 결정이 되기를 바란다며 찬성에 힘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반대토론에 나선 이건수 대의원은 먼저, 운동의 침체기이고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언 급했다. 이건수 대의원은 열악한 강원도당의 위원장을 맡아서 활동해왔기 때문에 지역이 어렵다는 걸 누 구보다 잘 안다. 그렇지만 이건수 대의원은“당이 망했다고 하지만 새로운 희망도 시작되고 있다” 고 강조 했다.“청년당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고, 알바노조, (일부 지역에서)사고당협이 정상화되고 있다” 고 지적하며, 당이 망하고 있다는 이유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또한 당원총투표안이“통합을 이야기하지만 노 동당을 분열시키는 안” 이라며 반대했다.

시기상조, 아래로부터 다시 준비해야 남가현 대의원은 18년간 진보정당운동을 해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진보정치를 통해서 세상 을 바꾸자는 꿈이 있었다고 말했다. 3년간 월급을 받지 못하고 당직자로 일했지만 행복했던 것도 그런 이 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가현 대의원은“당원총투표 건은 당원들의 뜻을 한 번 물어보자는 안건 아닙니 까?” 라고 반문했다. 당원들의 뜻으로 추진의 여부를 결정하자는 안을 가로막는 일은 올바르지 않다고 강 조하며 찬성의견을 밝혔다. 반대토론에 나선 이장규 대의원은“제대로 된 진보결집이라면 찬성한다. 그러나 현재의 어정쩡한 당원 총투표는 심각한 당내 분란만 일으킨다” 고 강조했다. 특히 당원총투표가 의결정족수를 명시하지 않고 있 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당헌개정안을 만들어서 그 당헌에 따라 결정해야 혼란을 막을 수 있다” 는주 장을 재차 강조했다. 특히 지금처럼 시한을 못박고 추진하는 안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덧붙여 그리스의 시리자도 연합정당이지만 4~5년간의 시간을 가지고 신뢰를 쌓았다는 점을 하나의 예로 들며, (진보결집은)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루트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이현정 대의원은 의견에 앞서 당내 논란이 되고 있는 글들에 대해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상처 입은 동물들은 잔혹해진다.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잔혹해진다” 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현정 대의원은“재편에 눈이 멀어 당을 팔아버리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방안으로 진보재편을 추진 하자는 안” 이라며“우리 손으로 부결시켜서 길을 봉쇄하지 말아 달라” 고 호소했다. 찬성토론에 나선 김종철 대의원은“특별결의를 통해 당대회를 다시 열어서 새로운 세력들도 포함시킨 새로운 안을 만들고, 당헌개정안을 논의하자는 (진보결집당원) 제안을 거부한 (의견그룹)당의 미래에 대해 8


유감” 이라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종철 대의원은 지난 보궐선거에서 자신이 얻은 지지율이 1.4% 였다는 것을 대의원들에게 재확인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에 다시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의사 를 밝혔다.“여러분의 마음속에 지금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국회로 간다면 0.5%라도 다시 출마할 수 있 다” 고 덧붙이고, 어렵더라도 지역에서 변함없이 뛰겠다며 진보결집에 찬성해줄 것을 요청했다. 김종철 대 의원은“당원총투표는 오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최종안이 아니” 라는 점을 강조하고는“그럼에도 불구하 고 반드시 오늘 부결시켜서 당대표 공약을 무너뜨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 반문했다. 또한 “제대로 된 진보결집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 며“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을 사 장시키지 말아 달라” 고 대의원들에게 호소했다. 반대토론에 나선 김상철 대의원은“참 오랜 기간, 하지만 짧게 당내 논쟁이 있었다. 앞서 김종철 동지 가 한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원총투표의 부결을 왜 파국으로 이끌었는가. 그 책임이 누구에 게 있는가 묻고 싶다” 고 반문했다. 덧붙여“당원을 대표하는 대의원이 실수와 오판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대의원과 전국위원의 역할은 무엇인가?” 라며 재차 반문했다. 또한“2004년에 당직을 시작하며, 정책 담당자로 일을 해왔다. 당선가능성, 대중의 수용성이라는 이유로 추구해왔던 가치를 (때로는)쪼그려 뜨렸다” 는 경험담도 덧붙였다. 김상철 대의원은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을“어정쩡하게 타협하고 봉합하고 넘어간다면 대체 이 당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라며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하며,“당원총투표가 부결되면 파국이 되는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가?” 라고 안건발의자들을 비판했다. 김상철 대의원은“지금 필요한 것은 지금 상정된 당원총투표가 마지막이 아니며 서로의 신뢰와 확인이다 우선” 이라는 것을 강조 했다. 당이“준비된 시기에 다시 밑에서부터 추진해야 한다” 는 생각을 밝히고, 총선용 진보결집은 적절하 지 않다며 반대표결을 요청했다. 지금+여기 노동당 9


총선 기본계획안, 빠른 시일 내 보완해야 총선 기본계획안도 많은 논란을 거듭했다. 김준수 대의원은“2012년 총선에서 당락을 다퉜던 거제, 울 산동구까지, 역대 선거결과는 야권연대가 필요하다. 2012년 거제에서 당락을 다툴때도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단일화 투표를 거쳤다. 따라서 이와 관련해 전략지역구에서 야권연대를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명확한 답변을 달라” 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최승현 총선준비위원장은“야권연대에 대해 지금 정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개월이 남은 상태에서 야권연대를 하겠다 말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 다” 고 답변했다. 김종철 대의원은 기본소득이 총선의제로 나왔을 때, 기본소득 자체가 검토해야 할 내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추후에 검토하자고 한 것을 총선위에서 다시 원안으로 넣었다고 알고 있다며“가용 예산의 70%가 들어갈 텐데, 당원들이 거리에서 이런 것을 설명하는 게 현실적인가?” 라고 질의했다. 최승현 준비위원장 은“(한국)녹색당도 기본소득을 방침으로 정했다. 그리스의 집권여당인 시리자(SYRIZA)와 스페인의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우리는 할 수 있다)도 마찬가지다. 여러 모델들이 있다. 세금, 지역화폐. 우리 당이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제 시작되어서 차기 전국위까지 만 들어지면 국민들에게 제시할 훌륭한 내용이 될 것” 이라고 답변했다. 그동안 총선 기본계획안은 당 대회에서 부분 수정과 이후 보완을 전제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왔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의원들은 반대토론을 통해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장태수 대의원은 “총선기금을 비롯한 재정전략. 지역구와 비례기금이 구분되어 있다. 이것이 효과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 는 방침인지 걱정이다. 오늘 당 대회에서 이 방침이 채택하지 않는 것이 총선 준비에 불리하다고 생각하 지 않는다” 며 차기 전국위에서 재논의할 사안이라고 반대의사를 밝혔다. 김윤기 대의원은 먼저“제가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역에서는 저도 출마예상자로 오르내리고 있다” 고 소개했다. 그리고는“대표와 부대표가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 정리되지 않 았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기본방침이 나오는 것이 적절한가? 총선기금도 당의 신뢰의 문제다. 빠르게 준 비하는 것보다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 준비가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라며 역시 반 대의사를 밝혔다. 표결 끝에 총선 기본계획안은 통과되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당내 논의를 거쳐 보완이 필요하다는 숙제를 남겼다. 국민연금 하나로 특별결의의 건은 재석 278명 중 177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하지만 당의 핵심정책 중에 하나임에도 많은 수의 대의원들이 반대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이후 정책단위 등의 당내논의가 필 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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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소득격차를 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최저임금제를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다. 최하위 20% 소득계층에 속하는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 소비활성화와 내수진작까지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고 있다. 왜 1만원인가?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11


(출처::::민주노총 민주노총홈페이지) 홈페이지) 민주노총에서 민주노총에서 제작한 최저임금 1만원 선전물 (출처 민주노총 홈페이지) 민주노총에서제작한 제작한최저임금 최저임금1만원 1만원선전물 선전물(출처 (출처 민주노총 홈페이지)

특집 /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최저임금 1만원,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된다면, 대다수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 및 유지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다.

오민규 민주노총 비정규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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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 편히 가족여행 한번 가고 싶어요.” “저축도 하고 노후대책도 세워야죠.” “빚 갚아야죠.” “영화도 보 고 문화생활도 하고 싶어요.” “부모님 건강검진과 임플란트 해드릴래요.” “아이들과 외식 좀 제대로 했으 면 해요.” “양문형 냉장고로 바꿀래요.” “동네 미용실 말고 비싼 곳에 가서 머리 할래요.” “기부도 하고 봉 사활동도 해보고 싶어요.” 최근 몇몇 사업장에서‘최저임금 1만원’ 이 되면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간략 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중 가장 빈도수가 높은 답변들을 모아보았다. 정말 소박하지 않은가?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항목이 양문형 냉장고 정도인 것 같다. (참고로 정규직·비정규직 모두에게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이다.)

뒤집어서 말하면, 현재 임금 수준으로는 이런 소박한 일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왜 최저임금 1만원을 쟁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보다 더 강력한 선동이 어디 있을까? 설문에 참여한 조합원 들은 이런 소박한 꿈조차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야만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분개하곤 한다. 한편 이 설문조사에서 상당한 빈도로 함께 발견하게 되는 답이 있다.“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네 요.”다시 말해,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1만원에 자신들의 희망과 열망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열망이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올해 자신 있게 최저임금 1만원 요구를 내걸도록 추동했고, 이의 실현을 위해 민주 노총은 500만 서명운동과 장그래 대행진 사업으로 우리의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 500만 서명운동과 장그래 대행진은 올해 최저임금 투쟁이 예년과 다르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 다. 수많은 서명운동을 해봤기에 식상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4월 총파업을 넘어 지금까지 16개 지역본 부 전역에서 꾸준히 거리서명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민주노총이 그동안 이렇게 끈질긴 서명운동을 전개 한 적이 있을까? 게다가 거리에서는 상당한 호응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고등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의 폭 발적인 지지를 확인하고 있다.

재벌에게 세금을! 노동자에겐 최저임금 1만원을! 민주노총의 자체 집계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현재 10대 재벌의 상장 계열사 97개 사내유보금만 무려 507조 원에 달한다. 이 수치는 2년 전(2012년 말)에 비해 무려 70여 조가 늘어난 수치이다. 실질투자액은 21조에 불과한 반면, 금융자산은 그 사이 무려 36조가 늘어났다. 다시 말해 사내유보금 상당 부분이 투자 되지 않고 은행에 쌓여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최경환 부총리의 입에서도 사내유보금 과세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우리가 그걸 주장하지 못 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그냥 과세 수준이 아니라 50%에 달하는 중과세를 매기고, 이를 저임금 노동자 생활임금 보장과 복지재정에 사용하자는 말이다. 재벌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가난한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사실 이는 현재의 저임금 구조를 놓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를 분명히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13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은 현재의 저임금 구조에 대한 책임

투쟁의 성격도 갖고 있다.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성격도 갖

왜냐면 경총을 비롯한 자본

고 있다.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단체들이 최저임금 인상 에 반대하는 핵심 논리가 바로‘소상공인들과 영세자영 업자들을 힘들게 ’ 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가단체들이 최저임금 인상 에 반대하는 핵심 논리가 바 로‘소상공인들과 영세자영 업자들을 힘들게’ 한다는 말 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난한 이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편을 갈라 분할통치 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 할 만하다. 영세자 영업자들은 누구인가? 대부분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배우자들, 형제자매들이다. 반듯한 일자리가 없고 벌 이가 시원치 않아 불가피하게 최저임금이라도 받으면서 사업장에 들어간 이들, 위험천만하지만 그래도 남의 손 빌지 않고 내 손으로 한번 살아보겠노라고 은행대출 끼고 치킨집, 피자집을 차리는 이들. 사실 이 들의 뿌리는 모두 가난한 노동자와 민중들 아닌가!

“최저임금이 1만원 되면 내가 왜 위험천만한 장사를 합니까. 차라리 알바로 일해도 지금보다 돈을 더 버는데 …”

최저임금 인상과 무관하게 영세자영업자들은 이미 몰락 중이다. 기획재정부가 2013년에 발표한‘최근

민주노총에서 제작한‘장그래 대행진’리플렛 중 일부 (출처 : 민주노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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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동향과 시사점’ 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에 신규로 창업한 이들의 85%가 2년 안에 폐업 했다고 나타났다. 특히 음식점의 경우는 95%의 폐업률을 보였다. 치킨과 피자를 사 먹어줘야 할 사람들이 그걸 팔고 있는 상황이다. 골목마다 들어선 치킨집이 출혈경 쟁을 하니 살아남는 이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 대부분이 직장생활하다가 희망퇴직·권고사직으로 밀 려나온 50대들인데, 박근혜 정권이 이들을 위해 내놓은 정책은“55세 이상 고령자에게 파견 무제한 허 용” , 즉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할 자유뿐이다. 이분들이 일할 반듯한 일자리가 있었다면 과연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최근 노동시장은 구조개혁이라 는 이름 아래 더 쉬운 해고를 추진하고 있고, 이미 상당수 기업체에서 과장급 이상 50대 노동자들이 강제 퇴직을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 또한 퇴직하면 결국 또다시 전망이 불투명한 창업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내가 왜 위험천만한 창업을 합니까? 어디든 들어가서 일하는 게 낫지요.” 재벌 2,3세들이 운영하는 빵집에서도 어김없이 최저임금은 적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영세 자영업 자와 소규모 상공인들의‘갑’ 이라 할 자본의 대표 경총이 자영업자가 몰락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 은‘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에게 돌려줘야 할 답은“사내유보금에 중 과세할 테니 그걸로 노동자 착취한 거 일부라도 토해내라” 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으로 지속가능한 국가복지와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월 급여

국민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현행 최저임금

1,166,220

52,470

7,580

37,700

4대 보험료만

최저임금 1만원

2,090,000

94,050

13,585

67,580

77,465원 더 걷힌다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분석에 따르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가 무려 227만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12.1%에 달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포함하면 어림 잡아 500만 명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만약 현재 5,580원인 시간당 최저임금이 1 만원으로 오를 경우, 임금인상에 따른 1인당 사 회보험료 증가분은 월 77,465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위 표, 150인 미만 사업장 기준) 근로소득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해당 노 동자가 연간 약 100만 원 이상의 조세를 부담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 500만 명

세는 약 1~2만 원 가량 증대되는데, 이렇게 될

을 기준으로 연간 5조원의 조세수입이

경우 해당 노동자가 연간 약 100만 원 이상의

증가한다.

조세를 부담하게 됨으로써, 저임금 노동자 500 만 명을 기준으로 연간 5조원의 조세수입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임금 상승에 따른 소비 진작으로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15


부가가치세 징수도 증가되기 때문에 국가복지를 위한 필요한 재원이 확보된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국 가복지의 재정 기반을 오히려 튼튼하게 하고, 공공복지 확대에 기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직 대책은 저임금 노동자 중 일부에게 세금 혜택이나 4대 보험료를 지원함으로 써 저임금 노동자의 근본적인 소득증대 및 복지향상을 외면해왔다. 저임금정책에 기반을 둔 일부 계층에 대한 미미한 지원으로는 저임금노동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기 어렵고,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대다수 의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실질적인 사회보장은 지속적으로 외면될 뿐이다. 최저임금 1만원이 실현 된다면, 대다수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사회보험 가입 및 유지가 실질적으로 가능해지고, 이를 통해 사회보험 사각지대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

기업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 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이다. 기업소득·가계소득의 불

될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에 따른 추가 비용 은 당연히 남아도는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에서 충당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

균등을 해소하고 정부의 세금 수입도 늘릴

소득을 가계소득으로 환류 시키는 가장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확실한 방법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대 폭 인상하는 것이다. 기업소득·가계소득

의 불균등을 해소하고 정부의 세금수입도 늘릴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세금 깎아줄 생각하지 말 고, 차라리 떳떳하게 세금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라!”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잔업·특근 좀 안하고 살았으면 …” 최저임금이 너무 낮다보니 8시간 일해서는 기껏해야 116만 원이 전부다. 4대 보험료와 세금 떼고 나면 100만 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는 어떤 생계도 책임질 수 없다. 따라서 잔업·특근을 해야만 최소한의 생 계비 200만 원을 맞출 수 있는 게 평범한 노동자들의 현재 생활조건이다. 만일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어 잔업·특근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최소 생계비를 벌 수 있다면, 노동시 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길이 열리게 되어 그만큼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신규고용의 길을 열어낼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을 죽이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신 규고용을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왜 안 한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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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참세상) 참세상) 특수고용직 특수고용직 노동자 총력 투쟁 결의대회 (출처 참세상) 특수고용직노동자 노동자총력 총력투쟁 투쟁결의대회 결의대회(출처 (출처 참세상)

특집 /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하루를 빠지면, 삼일이 까진다?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 1만원을 넘어 더 많은 요구들이 필요하 다. 이를테면 예산을 확대해 근로감독관의 숫자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 최저임금을 위반할 경우‘징벌적 배상제도 도입’등을 촉구해야 한다.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17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좀 더 젊었던 시절엔 아르바이트라는 것을 해서 생계에 도움을 줘야 했다. 대학 생이 되고, 특히 지출이 많아지는 상황에선 단 얼마라도 용돈을 벌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가 스물 두 살이던 2003년 당시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2510원이었다. 이것으로는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 어들이기로 목표한 금액보다 늘 적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급을 주는 아르바이트 를 찾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학기 중에는 시간을 쪼개서 쓸 수밖에 없으므로 학기가 끝난 시점에 하루 종일 일할 수 있는 아르바이 트를 찾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무작정‘인력파견회사’ 를 찾아갔다.‘아웃소싱’ 이란 단어는 오늘날에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잘 알려진 상황은 아니었다. 하여간 ‘아웃소싱’ 이라는 영 생소한 단어가 붙어있는 그 곳에서 나는 무려 시급 4000원을 받기로 하고 우선 전기 오븐 공장으로 팔려(?)갔다. 그곳의 노동환경은 영 좋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컨베이어 벨트의‘위 력’ 을 체감했다. 3일이 지나고 나서 무언가 상황이 바뀌었는지 이번에는 LCD모니터 공장으로 출근을 하 게 됐다.

한 달에 휴일은 하루 LCD모니터 공장에는“애들 학원비라도 벌려고 나왔다” 고 말하는 아주머니들이 많았다. 이 공장에 직 접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괴이한 기준에 의한 임금을 받고 있었다. 임금을‘일급’ 의 형태로 계산하 고 한 달을 모두 채웠을 경우 만근수당의 형태로 월급을 보전해주는 형식이다. 즉, 하루라도 결근을 하였 을 경우에는 그 달 월급의 30% 이상이

남성 노동자보다 2천원 적었으므로 하루라도 결근한 달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최저임금에 미달한 임금을 받게 된다.

깎여나가는 형태다. 이 아주머니들의 일급은 아무 이유도 없이 남성 노동자 보다 2천원 적었으므로 하루라도 결근 한 달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최저임금에 미달한 임금을 받게 된다는 결론이었

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머니들은 일요일의 특근도 빼먹지 않고 한 달에 하루만 쉬는 삶을 살며 저임금으 로부터 도망 다녀야 했다. 그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있었다. 민주노총에 소속돼 파랗고 빨간 조끼를 입고 깃발을 든 채로 대형 집 회에 참가하는 그런 노조는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아무것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식물노동조합이 었는데, 어느 날은 노사협상의 성과가 나왔다며 휴식 시간을 이용해 뭔가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시 우 리는 반드시 발 뒤쪽이 막힌 형태의 실내화만을 착용해야 했는데 불편했기 때문에 모두의 불만을 사고 있 었다. 또, 일요일 특근 시에 구내식당의 밥이 유난히 맛이 없었다는 것도 불만사항이었다. 노사협상의 결 과는 은혜롭게도 이 두 가지 문제를 개선하여 뒤가 트여진‘슬리퍼’형태의 실내화를 신는 것이 허용됐으 18


며, 일요일의 식사도 좀 더 맛있는 음식들로 준비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 혀를 찼다. 지금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많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경우는 그나마 도 낫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고, 주변적인 문 제제기를 하는데 그치긴 하지만 노동조합도 있긴 있다. 이런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없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통계청의 올해 3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노동자 중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 는 최저임금 미달자는 233만 명으로 전체의 12.4%다. 최저임금은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법에 정해진 대 로 지급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직도 많은 사업장에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정부 역시 근로감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는 점이 드러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최 저임금의 90~110%를 간신히 받는 노동자는 176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9.4%다. 우리가 이래저래 살아 본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 범위에 들어가는 저임금 노동자들도 언제나 받아야 할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청년노동의 사각지대 개별 사례를 돌아본다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상황은 좀 더 비극적이다. 예를 들면 청소년 노동자다. 많 은 청소년들이 단기간에 저임금만 받는 불안정 노동에 종사한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PC방,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을 고용한 사업자들은‘어른’ 이라는 지위나 권위를 치졸하 게 활용하면서 논리로 포장된 억지를 부려 조금이라도 임금을 덜 주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한다. 그만두 겠다는 청소년 노동자에게 정해진 일수를 채우 지 않으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든지, 편 의점에서 계산 실수로 일어난 손해를 떠넘긴다 든지, 학교나 부모님에게 뭘 고하겠다든지 하는 경우가 다 여기 포함된다. 많은 경우 청소년들

그나마 받아야 할 임금을 완전히 떼이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부조리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은 여기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며 그나마 받아야 할 임금을 완전히 떼이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부조리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일반화할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이런 단기간의 아르바이트는 자신의 장래나 생계에 심대한 영향을 주 는 정도가 아니라면 최소한“재수 옴 붙었네”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 는 것은 직종 자체에 최저임금제도 같은 것은 아예 고려하지 않는 구조적 부조리가 고착화돼있는 경우다. 패션이나 미용처럼 경력과 전문성이 중요한 직종에서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착취와 도제식 교육 이‘시너지’효과를 일으킨다. 미래의 전문가를 꿈꾸며 당장의 고통을 참겠다는 청년들에게 저임금을 지 급하면서 제대로 된 교육조차 시켜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예 무급으로 부려먹는 걸 넘어서서 이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19


직종의 전문성과 별 관계도 없는 일까지 죄다 떠맡기는 악독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태 가 일반화되니‘열정페이’ 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전문가가 되겠다는 청년들의 열정을 담보로 저임금을 강 요하고 그걸 당연시하는 풍토를 비꼰 말이다. 꼭 전문성이 필요한 직종이 아니더라도 경력 한 줄의‘스펙’ 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말도 안 되 는 편법이 활개를 치고 있다. 당장의 최저임금법 위반에 분노하기 보다는 무급으로라도 일을 해 일정 기 간 이상의 경력을 남겨 더 좋은 조건에서의 노동을 모색해야 하는 청년들의 처지를 이용해 인건비 지출을 아끼자는 것이다.‘무급 인턴’ 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착취체계가 대표적인 예다.

노인 노동과 이주노동자 청년만큼 노년도 문제다. 고령의 청소노동자들이나 경비노동자들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 을 받으며 비인간적 대우에 고통 받는 사례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돼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다. 노인 노동자의 경우 숙련도가 낮고 재교육이 어려운데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이 배가된다. 정부는 퇴직 이후의 재취업에만 초점을 맞춘 대책만을 내놓고 있고 취약계 층 고령자 문제에는 관심조차 없다. 감시단속직 노동자들의 경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의 90%를 적용받 았지만 올해부터는 100%를 받을 수 있게 됐는데, 물론 일선 현장에서 이게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주노동자 역시 최저임금제도의 안전망에서 벗어

불법체류자 신분의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 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나 있는 대표적 주체들 중 하나다. 최근 대법원은 거 의 10년 만에 불법체류자 신분의 이주노동자도 노동 조합에 가입해 활동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 다. 이런 판결이라도 내려진 것은 다행이지만 이주노 동자들이 놓여있는 노동환경은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

이다. 일상화된 차별과 폭력, 인권유린에도 모자라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주노동자의 언어 문제나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를 십분 활 용해 임금체불의 수단으로 삼는 악덕기업주도 수두룩하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건설노동자 역시 최저임금을 보장받지 못하는 대표적 직종이다. 대부분의 현장 에서 사측은 관행적으로 첫 달 임금을 두 세 달 뒤에 지급한다. 소위‘스메끼리’ 라고 불리는 유보임금 관 행이다. 단지 임금을 늦게 주는 문제라면 어떻게든 참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유보임금은 공사대금이 발주처,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하도 급 체계 때문에 발생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법다단계하청 속에서 하청업체가 부도가 나거나 증발(?)하 는 경우 건설노동자는 임금을 아예 지급받지 못하게 된다. 구제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임금체 불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구조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결국 이런 노동환경에서 최저임금제도는 무력화되 20


고 있다. 임금을 주기적으로 받아야 최저임금 기준을 적용해보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특수고용노동자 아예 노동자가 아니니 최저임금을 안 줘도 된다는 낙인을 찍어놓은 경우도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다. 이들은 학습지 교사, 화물 및 덤프트럭·레미콘 운전자, 골프장 경비보조원, 퀵서비스 기사, 화장 품 외판원 등처럼 사실상 노동자의 지위에 서 일하면서 법적으로는‘개인사업자’ 로 분류돼 노동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내쫓긴 상태다. 이들의 경우 노동과 관련한 모든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저임금은 임

사실상 노동자의 지위에서 일하면서 법적 으로는‘개인사업자’ 로 분류돼 노동법의 테두리 바깥으로 내쫓긴 상태다.

금을 적게 주는 사업주의 책임이 아니라 개 인사업자로서 충분한 수완을 발휘하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모든 게 노동법이 보호해주는 테두리 밖에 있기 때문에 이들은 일자리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스스로 임금을 깎기도 하고 자기 돈을 들여 실적을 부풀리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외에도‘최저임금의 사각지대’ 와 관련한 더 많은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최저임 금 1만원’ 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민주노총 등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근로 감독관의 수를 늘리고 예산을 확충하는 방안이나 최저임금과 관련한 징벌적배상제도 도입을 촉구하고 있 다. 진보정당은 좀 더 정치적인 발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임금의 문제가 결국 노동정치의 문제라는 점을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인식하도록 하고 그들을 직접 당원으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다. 노동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는 늘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의를 다지곤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 하자면 탁월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올해 정의당과 같은 이들은‘비정규직 정당’ 이 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서‘진보결집’ 이 어디로 갈지 예상할 수 없겠지만, 이름에‘노동’ 이 들어가는 우리 당도 이런 흐름에 뒤처 져서는 안 되겠다. 노동자들이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노동계급으로서 조직되고 이를 기반으 로 한 노동정치가 제대로 된 힘을 갖게 되기 전까지는 최저임금 사각지대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 이런 노동정치를 만들기 위해 우리 자신부터 사상적 혁신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이 야기일 것이다.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21


2014년 유럽연합 법적 최저임금 (출처 : Hans-Boeckler-Stiftung, Statista)

특집 /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더 나은 최저임금제? 최저임금제의 국가별 다양성 네덜란드의 최저임금제 운영 목표는“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의 임금이 그 가족의 최저생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회적 으로 용인된 노동보수를 보장하기 위한”것이다.

이정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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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차원의 임금정책으로서‘유럽 최저임금제’ 에 대한 논의 끝에, 유럽노동조합총연맹(ETUC)은 모든 유럽국가가 각국 평균임금의 50%, 중위임금의 60% 이상을 최저임금으로 정하는‘합리적’방안을 권고했 다.1) 이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최저임금제를 가지고 있는 EU 가입국들에게 일관된 목표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여기서 일관된 목표란 유럽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괜찮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공정임 금이다. 언뜻 보기에 평균임금2)의 50% 또는 중위임금3)의 60% 이상이라는 최저임금 수준은 단순하고 명 확한 기준으로 제시된 방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시된 각국의 목표 수준을 명확하게 도출하는 것조차 생각처럼 쉽지 않다. 국가별로 최저임금제의 형태, 운영 방식이 매우 다르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이 최저임금제의 주요한 특징인 이유는 우리가 최저임금제를 단순한 제도로 여기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제는‘임금의 하한에 대한 제도적 규제’ 로 간단히 정의되기에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간단 한 정의를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 적용한 결과가 곧 최저임금제의 다양성이다.

최저임금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되나 예를 들어보자. 2012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4580원이었고 브라질의 최저임금은 월 622헤알 (BRL)이었다. 각국의 평균임금 대비 50%를 산출하려면 먼저 평균임금을 계산해야 하는데 평균임금을 시

간급으로 계산해야 할까, 월 급여로 계산해야 할까? 아니면 자유롭게 자국의 최저임금 결정단위를 적용해 야 할까? OECD에서 각국의 최저임금 수준을 평가할 때와 같이 시간급으로 계산하기로 정했다면 브라질 의 소정노동시간4)을 알아야 한다. 브라질의 소정노동시간은 주당 44시간인데 월평균 4.345…주(365÷ 7÷12)이므로 월간 소정노동시간은 191.19…시간이고 시간급으로는 3.253…헤알이다. 이렇게 계산한 브

라질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제대로 된 것일까? 이번에는 브라질 시간급 계산방식을 거꾸로 적용하여 우리 가 잘 알고 있는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월 급여로 환산해보자. 한국의 소정노동시간은 주당 40시간이 므로 월간 소정노동시간은 173.809…시간이고 시간당 최저임금인 4580원을 곱하면 월간 최저임금은 796,047.619…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당시에 최저임금위원회는 월간 최저임금이 95만 7220원이라고 고시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잘못 계산하고 있었던 것일까? 2012년 월간 최저임금 95만 7220원은 시간당 최저임금 4580원에 월간 노동시간 209시간을 곱해서 산출한 값이다. 173.809…시간이 아닌 209시간을 곱한 이유는 한국의 근로기준법이 한 주 15시간 이상 일 한 모든 노동자에게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주휴수당)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

1) Schulten, T.(2012), <European Minium Wage Policy: A Concept for Wage-Led Growth and Fair Wages in Europe>, International Journal of Labor Research, 4: 185-103. 2) 전체 노동자를 100명으로 가정했을 때, 100명의 임금을 모두 더한 후 100으로 나눈 값을 뜻한다. 3) 전체 노동자를 100명으로 가정했을 때, 100명을 일렬로 세운 후 50번째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뜻한다. 4) 노사가 상호 약정한 노동시간으로 실제 노동시간과는 관계가 없으며, 연장근로수당, 휴일 근로수당, 연차수당을 산정할 때, 법률 상 일, 주, 월 등에 의한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 중요하다.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23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은 다름 아닌

이다. 즉, 주 5일간 40시간을 일했다면 임금은 유

임금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은 필연적

급휴일 하루 몫인 8시간을 더하여 주 48시간에 대

으로 임금에 대한 다양한 법적, 제도 적 규제와 관련된다.

힌 값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173.809…시간 일하 고 유급휴일을 정당하게 받을 때의 월 급여는 시 간급에 약 209시간을 곱한 수준이다. 최저임금의 적용 대상은 다름 아닌 임금이다. 따라서 최저임

금은 필연적으로 임금에 대한 다양한 법적, 제도적 규제와 관련된다. 앞서 계산한 브라질의 시간당 최저 임금이 정확한지 여부도 브라질의 노동법을 확인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 공정한 임금, 사회적 안전망 및 빈곤 완화 이제 한국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도출해보자. 필자가 2012년 통계청의 상용직 5인 이상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직접 계산한 바에 따르면 평균 시간당 정액급여는 모든 사람 이 주휴수당을 받았다는 가정 하에 1만 2551원이었다. 하지만 주휴수당에 대해 사용자도, 노동자도 잘 모 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위의 브라질 시간당 최저임금 환산 방식으로 시간당 정액급여를 계산하면 평균은 1 만 4629원으로 높아진다. 모든 사람이 주휴수 당을 받았다면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최저임금을 받는 전일제 노동자가 모두

약 36.5%, 받지 못했다면 약 31.3%이었다.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면 평균 월 급여

2012년 평균 월 급여는 259만 6229원이었다. 최저임금을 받는 전일제 노동자가 모두 주휴수 당을 받을 수 있다면 평균 월 급여 대비 월간 최

대비 월간 최저임금 수준은 약 36.9%, 받지 못한다면 약 30.1%에 불과하다.

저임금 수준은 약 36.9%, 받지 못한다면 약 30.1%에 불과하다. 최저임금의 현 수준, ETUC가 제시한 목표 수준을 계산하는 일만으로도 숨이 가쁘고 판단이 필요한 내용이 많다. 이미 머리가 복잡하지만 더 복잡한 측면들을 간단히 언급해야겠다. 최저임금의 결정 주기는 주로 정기 적이지만 빈도에서 차이가 있고 미국처럼 비정기적으로 하는 국가도 있다. 결정 주기가 정기적인 국가들 간 결정 및 적용시기에도 차이가 있어서, 국가별 최저임금 수준을 비교할 때 비교 시점이 영향을 끼친다. 적용범위를 전국, 전 산업으로 하면 가장 포괄적이지만 지역이나 산업, 직종에 따라 다르게 결정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가사 사용인과 선원을 제외 대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적용 대상이 제한적인 경우도 있 다.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 및 과정도 다양하다. 특별기구의 권고나 심의에 따라 정부가 결정하는 국 가의 비율이 절반 정도이고, 정부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국가, 특별기구가 직접적인 권한을 가진 국가, 단 체교섭 또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통해 결정하는 국가 비율이 각각 10%를 넘거나 적은 정도이다. 단, ILO 24


는 단체협약을 통해 결정하는 최저임금을 최저임금제의 일종으로 보지만 이 경우 OECD는 최저임금제가 없는 것으로 본다. <표 1>에서 보듯이 유럽에는 그런 국가들이 많다. <표 1> 유럽 국가별 최저임금 설정 시스템 법 규제

단체협약

(서유럽) 프랑스,룩셈부르크,네덜란드,아일랜드,영국 전국 단일 수준 (남부유럽) 몰타, 스페인, 포르투갈 (동유럽) 크로아티아, 체코, 헝가리, 라트비아,

(양자 협약) 벨기에, 에스토니아, 그리스 (삼자 협약) 불가리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슬로베니아, 터키 부문 또는 직종별 다수준

키프로스, 독일

(노르딕)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유럽대륙)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위스

출처 : Schulten(2012), p.89. 독일의 최저임금제는 올해부터 시행되었으므로 필자가 수정

최저임금제의 명시적 목표와 결정기준도 다르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목표는 저임금 노동자 보호, 공 정한 임금, 사회적 안전망 및 빈곤 완화, 거시경제 정책 수단이다. 최저임금 결정 시 동원되는 기준 또는 지표에는 물가, 생계비, 경제적 여건, 임금수준, 노동자의 필요, 생산성, 고용률 등이 있다. 한국의 최저임 금제는‘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을 결정기준으로 고려한다고 하지 만, 실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이 지표들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드 물지만 분명하게 결정하고 있는 국가도 있다. 그 중 네덜란드의 최저임금제를 눈여겨볼 만하다.

네덜란드의 평균임금과 최저임금 연동제 네덜란드의 최저임금제 운영 목표는“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의 임금이 그 가족의 최저생활 수 준을 유지하도록 하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노동보수를 보장하기 위한”것이다. 네덜란드 노동자의 85% 이상이 단체협약으로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 임금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의 영향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최저임금 역시 단체협약의 영향권 아래에 있게 되는 이유는 네덜란드 최저임금제의 독특한 운영 방식에 있다. 1992년 이후 매년 1월과 7월에 네덜란드 사회고용부는 중앙기획국이 계산한 평균임금 상승률을 곧 최저임금 상승률로 반영해왔다. 평균임금이 3% 오르면 최저임금도 3% 오르는 식이다.5) 따 라서 현재 네덜란드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41%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흥미로운 특징은 최저 임금이 다른 사회보장급여 및 세제와 유기적으로 연동된다는 데 있다. 평균임금이 상승하면 최저임금도 인상되고 최저임금의 70% 수준에서 실업수당도 오른다. 노령연금과 다른 생활부조금도 오른다. 만약 한 국과 같이 네덜란드의 분배가 악화되고 있고 저임금화 경향이 나타난다면 평균임금에 대한 연동 방식은

5) 최저임금위원회(2014), <주요국가의 최저임금제도>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25


단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단체협약의 전통은 이러한 최저임금 조정 방식이 가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한 지 지대가 된다. 또한 네덜란드 최저임금제의 운영 목표인 가족의 최저생활 수준이 최저임금 인상률 연동의 토대로 보장되었기에 지속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표 2>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2012년) 국가

주간 소정 노동시간 /상한

최저임금

한국

40/52

시간/₩4580

일본

40/없음

뉴질랜드 40/없음

월 환산액 (미달러)

결정 메커니즘 /갱신방법

범 위

제외 대상

716

양자기구-정부/연 1회

전국

가사사용인, 선원

시간/¥821

1,782

삼자기구 권고-정부/ 연 1회

전국과 지역 및 산업

가사사용인, 장애인, 견습생

주/NZ$520

1,773

정부/연 1회

전국

도제, 영화제작 노동자

벨기에

38/50

월/¥1453

1,898

특별기구/자동연동

덴마크

40/48

시간/DKK107

3,451

전국 단체협약

전국

스웨덴

40/44

월/kr17517

2,699

단체교섭

부문 및 직종

월/¥1,456

1,878

정부/연 2회

전국

네덜란드 없음/48

전국, 부문별 도제, 임시직, 가사사용인

프랑스

35/39

월/¥1,398

1,803

삼자기구 권고 및 단체협약-정부/연 1회

전국

미국

40/없음

시간/$7.25

1,256

정부/비정기적

전국, 지역

18세 이하 (낮은 임금률 적용) 12~22세 연령층, 장애인(할인율 적용)

(주제산업 등 제한된 산업에만 적용)

출처: ILO(2013), <Working Conditions Laws Report 2012: A Global Review>

위 <표 2>는 ILO에서 보고한 국가별 최저임금제 현황 중 몇몇 국가 사례를 간추린 것이다. 상술하였듯 이, 위 표에서 한국의 최저임금 월 환산액은 주휴수당을 고려하지 않고 소정노동시간으로 계산되었기 때 문에 낮다. 다른 국가의 최저임금제를 제대로 알고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최저임금제는 임금에 적용하는 제도이므로, 각 사회가 지닌 임금에 대한 관점과 규범 및 임금을 둘러싼 법과 제도를 알아야 최저임금제 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최저임금제와 운영 방식이 좋을까? 다른 국가의 최저임금제 형태와 운영 방식에 대한 면 밀한 검토를 통해 알 수 있을까? 이상의 고찰 속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면, 사회마다 다른 임금 관 련 규범과 제도를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제 또는 최저임금 수준의 비교로는 충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다. 네덜란드의 최저임금 운영 방식은 사회 구성원 누구나 예측 가능하기에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족의 생활 유지에 적합한 수준을 토대로 운영되고 있으며 임금의 사회적 결정인 단체협약과 연계된 다는 전제 위에서 합리적이다. 취약한 단체교섭 문화, 저임금화 경향 속의 한국 최저임금제를 더 견고한 형태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미 25년의 세월을 넘어 운영되어 왔지만 앞으로 갈 길이 훨씬 더 멀기 때문이다. 26


최저임금1만원위원회의 국회 포위 1인시위 (사진제공 : 알바노조)

특집 /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알바노조 투쟁과 청년 최저임금 실태 알바노조는 최저임금을 지키면‘모범업소’ 라는 인식에 맞서 최저임금은 최저수준에 불과할 뿐 최고임금이 되어서는 안 된 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가현 서울 서대문 당원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27


알바연대의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알바연대가 만들어진 2013년 1월부터 시작된다. 경제민주화를 공 약으로 걸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의하려고 청와대 기습시위, 국회의원들을 나무라기 위해 국회포위 1 인시위부터 시작했다. 알바연대는 진보신당 청소년위원회, 청년좌파 등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최저임금위원회에 대항하여 ‘최저임금1만원위원회’ 를 만들었다. 이들은 최저임금을 심의·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2013년 6월부터 7월까지 한 달간 노숙농성을 하며 최저임금 위원회를 압박했다. 최저임금 동결안을 내세운 대흥 동 경총플라자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은“최저임금 동결안을 철회하고 최저임금 대 폭인상을 전제로 오늘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내달라” 는 요구를 걸고 경총플라자 처마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자꾸 기습시위를 벌이고 그들의‘신성한’ 공간을 점거하는 등‘사회적 물 의’ 를 일으킨 알바연대 회원, 알바노조 조합원들은 몇 번이나 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회원들 은 재판으로 선고된 수백만 원의 벌금 하나쯤은 대부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해 열 심히 투쟁한 동지들을 위한 후원주점을 열기도 했다.

최저임금은‘최저’ 임금이다 투쟁 과정에서 한 동지를 떠나보내기도 했다. 알바연대 대변인인 권문석 동지는 2013년 6월 1일, 활동 가들에게 최저임금 동결 주장을 반박하는 논거를 가져오라는 숙제를 내주고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 권 문석 동지를 기억하는 추모사업회는 매년 6월 1일 그를 기리며 최저임금 1만원운동과 알바노동운동에 대 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특히 올해처럼 전국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 열풍이 불 때 권문석 동지와 함께였다 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바노조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했다. 매년 5월 1일 세계노동자의 날에 불안정한 청춘들이 연대하는 날,‘알바데이’ 를 만들어서 재기발랄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에 왜 최저임금 1만원이 필요한지 시민들에게 알려왔다. 알바노조는 최저임금을 지키면‘모범업소’ 라는 인식에 맞서 최저임금은 최저수준에 불과할 뿐 최고임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해왔다. 최저임금은 알바들의 생계비이다. 누가 감히 이들의 삶을 한낱 숫자로 취급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 최저임금을 받을 일이 없는 사장님들의 머릿속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최저임금은‘최저’ 임금이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시간만 때워도 그만큼의 임금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일을 하면‘응당’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 일이 편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당연하다는 논리, 최저임금을 지켜주는 일자리라고 해서‘모범적인’일자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청년 알바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이란 이런 것이다. 한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몇 달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았다. 그러다가 갑자기‘기흉’ 에 걸리게 되었다. 원인도 모르게 갑자기 발병한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든 돈은 무려 300만 원이었고, 이 청년알바는 몇 달 동안 모은 알바비를 모두 병원비로 지출하고 말았다. 28


아무리‘티끌 모아 태산’ 이라지만 알바로 뼈빠지게 안 먹고 안 쓰고 모아도 돈이 날아가는 건 한순간이다. 티끌이 작아도 너무 작은데다가 여기저기서 자꾸 바람을 불어대는 이 불안한 세상에서 알바노동자로 살 아간다는 것은 그저‘숨만 쉬고 살아간다’ 는 뜻이다.

만원이 되면 자영업자들이 망할까? 알바 실태조사는 알바노조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 중 하나이다. 홍대와 신촌에서 알바를 하는 시 민들을 만나서 근로기준법 위반여부, 필요한 한 달 생계비, 지금 받는 임금의 액수 등 알바들의 삶을 면밀 히 조사하기 위해 힘써왔다. 한 번은 심야에 신촌에서 일하는 알바노동자들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밤과 새벽이 이어지는‘자야 할 시간’ 에 일을 하고 있는 알바노동자들이 꽤 많았다. 버거킹에서 3 년 이상 알바를 해왔다는 청년도 있었고, 취업준비를 하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청년도 있었다. 취업 을 언제쯤 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이제 곧 알바를 그만둘 거라고 말하면서도 쓸쓸하게 웃는 모습이 잊히 지 않는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한 달 생계비로 필요한 금액은 대부분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였다. 그러나 그들이 한 달 노동을 해서 받는 돈은 1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일을 해도 필요한 돈을 모두 벌 수 없는 것이었다. 알바로 생계비를 벌 동안은 다른 걸 하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일 단은 목숨부터 유지해야 할 것이 아닌가? 또 마음이 아팠던 점은, 야간에는 대부분의 편의점에서‘사장님’ 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야간에 알바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을 주는 것보다 자신이 일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사장님들의 삶도 팍팍하기는 매한가지였다.‘만원이 되면 자영업자들이 망할까?’ 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설명을 하는 것은 최저임금 운동의 가장 중요한 투쟁 중 하나였다. 자영업자들의 애환과 고충을 아는 알바노조는‘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 과‘세븐일레븐 점주협회’ 와 연대하여 간담회를 개최하고 영세자영업자와 알바노동자가 최저임금 1만원을 이루고도 상생할 수 있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상가임대차권리문제와 프 랜차이즈 본사들의 로열티, 24시간 영업 강요, 중도해약 시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게 하는 등의 불공정 거래, 가맹점 뜯어먹기를 함께 고발하며 영세자영업자들을 이유로 들어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하는 경총 의 주장은 기만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알바가 500만이라고? 설마… 걸스데이 혜리의 알바몬 광고를 봤다면 한 번 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요즘은 비정규직 600만 시대 라고 한다. 그런데 알바가 500만이라고…?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규모는 2007년 7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총 818만~865만 명 사이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29


를 7년째 오르내리고 있다. 언뜻 증가 추세가 멈춘 것으로 보이지만, 비정규직법에 대한 노동조합의 투쟁 효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크게 떨어지지도 않은 채‘공고화’ 되는 추세가 확연하다. 알바노동자는 여기 에 잡히지도 않는 수치이다. 알바라고 보기에는 조금 뭐하지만 기업에는 청년들을 데려다가 일을‘경험’ 하게 해주는‘인턴제도’ 가 있다. 이런 인턴제도가 생겨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부터 대학교 3, 4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인턴제도를 거쳐가는 시대가 되었다. 꼭 인턴이 아니더라도, 1학년 때부터 취업을 위한 대외활동을 시작 하는 대학생들이 많아졌다. 본인의 친구, 선배들도 인턴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인턴도 취업만큼 어려워서 지원서를 내는 족족 떨어진다고 시무룩한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그게 대체 뭐가 좋아서’ 라는 생각 이 들게 마련이다. 직무경험을 쌓기는커녕 온갖 잡무에 저임금이나 무임금까지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인턴생활을 했던 한 친구는 아침 9시 반에 출근해서 저녁 6시 반에 퇴근하는‘Nine to Five’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첫 달엔 60만 원, 둘째 달엔 8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명백한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지금의 최저임금으로는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렇게 시간을 꼬박 투자해서 받는 돈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으 니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에서 지난 3월에 발표한 <대학생과 인사담당자의 대외활동 인식과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턴과 같은 대외활동을 경험한 대학생 중 자신이 열정페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 율이 무려 36%였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청년의 일 경험 참여 실태 및 만족도 조사 결과>에서는 무급으 로 인턴을 했다고 응답한 청년이 40%에 육박했다.

청년이 저임금에 내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는 청년을‘예비 인력’ 으로 취급한다. 정식 인력으로 간주하지 않고 경험을 쌓아야 할 존재로 보기 도 한다. 정식 노동자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지켜주지 않고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 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 거기다가‘채용 우대 인턴’등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줄 것처럼 전시하 여 많은 인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경쟁하게 만들고 열악한 임금조건이나 근무조건에도 침묵하도 록 만든다. 인턴제도의 부당함은 극도로 불안정한 일자리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회와 노동력을 값싸 게 착취하려는 자본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알바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시간당 법정최저임금인 4860원을 받거나 그 미만의 금 액을 받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38%에 달했다. 그리고 설문응답자의 70%는“현재의 최저임금이 적당하 지 않다” 고 답변했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으며, 스트레스의 원인 (중복답변 가능)으로 낮은 시급, 장시간 노동, 인격적 무시를 순서대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 알바를 하지 않

아도 된다면, 알바 시간이 줄어든다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중복답변 가능)에는 취미활동 및 30


문화생활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만약 내년도 시간당 법정최저임금이 오른다면 하고 싶은 일(중복답변 가 능)로는 저축을 하겠다, 개인물품 구매비용을 늘이겠다는 순으로 많이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아르바이트

노동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중복답변 가능)에는 최저임금 인상 이 108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85명이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처벌을 선택했다.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한 국민투표!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종의 가게들은 청년 알바노동자를 수없이 많이 고용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이 5580원의 최저임금만 주면서‘모범적인’일자리를 자처하고 있다. 그 5580원으로 청년들은 절대‘모범 적인’청년의 삶을 영위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정말 모범적이지 못한 기업 중에 맥도날드가 있다. 맥도날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가 에 진출한 음식점이고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번다. 그런데 이런 글로벌 대기업이 한국에서 주문을 받고, 햄 버거를 만들고, 매장을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알바노동자에게 딱 최저임금만 준다. 알바노조는 조합원을 부당하게 해고한 맥도날드에게“알바시급 만원으로” “부당해고 철회”등의 요구 를 해왔다.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운동은 맥도날드 노동자로부터 시작되었다. 맥도날드 노동자들은 지난 해 맥도날드 본사에 찾아가“임금을 슈퍼사이즈로” “나는 더 받을 가치가 있다”등의 구호를 외치면 서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약 1만 5000원)로 올려줄 것을 요구했다. 작년 미국 패스트푸드업계 노동자 의 평균시급은 9.08달러(9300원)였다. 최근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을 강력하게 주장한 데에 따른 작용인지, 맥도날드 미국지사는 미국에서 일하는 맥도날드 노동자들에게 10%의 임금인상을 약 속했다. 약 1달러를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이것도 너무 낮은 수준이라며 맥도날드 노동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청년들과 알바노동자들이 미국처럼 지루한 싸움을 해왔기에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 한국 의 청년 알바노동 실태는 그 어느 나라보다 참혹한 수준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알바노동을‘곧 벗어날 수 있는 시기’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는 청년들을 희망고문하고 이것을 이용하는 나쁜 일자리들만 자꾸 만들어낸다. 청년노동실태가 그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고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 어나고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월 209만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살아간 다는 것뿐이다. 을이 연대하면 갑들에게 최저임금 1만원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을들의 대변자인 노동 당도 최저임금 1만원 국민투표를 시작했다. 이 국민투표의 결과가 최저임금위원회에 필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동당이 이번 투쟁을 계기로 국민들의 염원을 실현하는 강력한 좌파정당이 되기를 기대한다.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31


최저임금 국민투표 제안 기자회견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특집 / 2017, 대선이 다가온다

‘최저임금 1만원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운동본부’ 의 구성과 기획 운동본부의 일차적 목표는“사회적 기준과 새로운 대안으로 정치적 결집을 확장하는 위력적 국민운동을 기획” 하는 것이다.

정진우 최저임금 1만원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노동당 운동본부장,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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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은 4기 1차 전국위원회(2015.3.27)에서 <최저임금 1만원,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노동당 운동본 부>(이하 운동본부)를 설치하였다.“최저임금 1만원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과 사회적 결집을 시도하며, 노동기본권 투쟁을 전개하는 당 체계 건설과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투쟁을 주도하는 정치적 위상을 확보 하는 것” 이 전국위원회 산하에 운동본부를 설치한 취지이다. 운동본부의 이름이 무척 긴 이유는 이러한 취지를 충분히 담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4월 대표단회의에서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과 GM 비정규직 노동자 신현창 당원을 공동본부장 으로 선임하였고, 현재 3인의 공동본부장들은 중앙당 비정규노동실 당직자들과 함께 운동본부 사업을 기 획·추진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구교현 본부장은 6월 15일 구속영장이 재청구되어 심사가 진행 중) 수차례 회의와 간담회를 거쳐 사업안이 정돈되었으며, 5월 15일 개최한 운동본부 전국회의와 노동위원회 합동회 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상반기 집행계획을 확정하였다. 첫째, 지역별 활동체계와 운동본부를 구성하며, 위력적인 최저임금 국민운동을 기획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공동투쟁이 활발히 시도되었지만, 해마다 최저 임금 결정기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 평가와 더불어 투쟁방식과 대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반복되고 있다. 2015년에는 민주노총과 최저임금연대도 공식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요구로 내걸며 최저임금 운동 의 새로운 전환을 공표하고 있지만, 아직 최저임금의 대폭인상 필요성을 홍보하는 데 급급한 상황이다. 운동본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며, 최저임금 결정기간에 진행할 기획사업, 홍보활동에 주력하는 과정에서 당내외의 적극적인 논의를 통해“사회적 기준과 새로운 대안으로 정치적 결집을 확장하는 위력 적 국민운동을 기획” 하는 것을 명시하였다.

최저임금 국민투표운동“최저임금 당신의 선택은?” 의 홍보물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33


상반기 핵심사업은 이미 2만여 명이 투표에

물론, 상반기 핵심사업은 이미 2만여 명

참여한 <최저임금 국민투표 운동>이다. 최저

이 투표에 참여한 <최저임금 국민투표운동>

임금 1만원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국민 적 요구를 집약하는 것이 그 취지이다.

이다.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 하고, 국민적 요구를 집약하는 것이 기획의 취지이다.“최저임금 당신의 선택은?” 이라 는 질문에 대해 노동계“최저임금 ( 노동자와 가

족의 생계를 위해서는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 )와 경영계“매년 (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업부담이 과도하므로 안 정화해야 한다” )의 실제 주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투표 페이지 (http://10000.laborparty.kr/)가 개설되어 있으며, 전국 각지의 주요 거리와 현장(노동조합 사무실 등)에는 투

표소를 설치하여 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는 국민투표의 결과는 6월 29 일 최저임금위원회(세종시)에도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이러한 사업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반기에 위력적인 국민운동을 기획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지 만, 운동본부와 당이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대폭인상 시대를 위한 사 회적 조건을 준비하는 것이다. 특히, 중소상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문제는 더 이상 미 룰 수 없는 절박한 현안이다.‘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 과 간담회를 진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동기 자회견을 시작으로 최저임금 의제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인데, 단지 최저임금 공동전선의 의미를 넘어 사회연대의 주체와 전략을 재구성하고 현실화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결국,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의의는“신자유주의 친 재벌 경제체제를 극복하며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에게 제대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 으로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임금제도를 비롯한 노 동체제 전반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며, 불평등 해소와 재분배를 비롯한 사회적 대안과 방향을 수립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포함하여 누구나 살아갈 권리를 위한 핵심전략을 확 장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 국민운동의 새로운 2막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불안정·저임금·장시간 노동체제는 자본의 기획이고, 전략이다. 경쟁과 착취의 시스템에서 고통 받 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강력한 족쇄이고, 거대한 장벽이다. 연대한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족쇄를 부수고, 장벽을 넘는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조금 더 버티며 생존하기 위해 급하게 투여되는 만병통치 약이 아니다. 장벽 너머를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를 연결하는 새로운 탈주를 시작하자. 우리의 기획과 전 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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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당의 위기,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2015년 정기 당대회를 앞두고 당내에서 다양한 이견들이 쏟

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과 총선 기 본방침(안)에 대한 쟁점이 첨예하다. 각 이견들을 대표하는 당원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날것 그대로의 토론을 진행했다.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35


기획 /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당의 위기,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2015년 6월 22일(월) 중앙당 회의실 토론자 김종철 진보결집당원모임 / 나도원 신좌파당원회의

윤현식 당의 미래 / 채훈병 무지개사회주의자연대 사회 최백순 편집실장 정리 기관지 편집실 사진 박성훈 홍보실장

<미래에서 온 편지>가 독자들의 손에 도착할 때는 2015년 당대회는 이미 끝이 난 후가 될 것이다. 주간지 보다 월간지가 행사를 반영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있지만 아쉽게도 이번호는 시기가 겹치면서 뒤늦은 소식 이 되고 말았다. 당 대회의 결정이 난 이후에 싣는 토론이라 어쩌면 변죽을 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끝장토론을 활자로 중계하는 것은 당 대회 결정에 대해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하는데 도 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이다. 좌파정당은 다양한 의견그룹과 정파들이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점이 생기기도 한다. 이를테면 개인팬클럽이 당의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견그룹이나 정파들이 당원들에게 자신들의 의견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는 것 이 문제였다. 부족하지만 기관지위원회가 날 것 그대로의 토론회 자리를 만들었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 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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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순 : 날씨도 많이 덥고 메르스 때문에 많은 혼란이 있는 상황에서도 참석해 주신 당원 여러분 고맙 습니다. 오늘 토론은 공지한대로 날 것 그대로 하겠습니다. 진행순서는 서두발언, 상호 질문과 답변, 그리 고 청중들의 질의에 응답을 하고 나서 패널들이 정말 끝장토론을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낙타 그리고 위기 윤현식 : 최근 메르스 사태 때문에 낙타가 수난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이 건조한 노동당을 지금 우리 당원들이 낙타처럼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들고 고달파도 계속 그 길을 가고 사막을 건너 고 있는 상황입니다. 낙타도 그냥 갈 수 없겠죠. 가다가 물도 먹어야 되고 밥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 금 상황에서 낙타가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과 관점이 좀 다른 것 같습 니다. 그 관점에 대해서 당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으나 그동안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 다. 지금 지쳐서 쓰러지기 직전인 낙타에게 채찍질을 해서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낙타가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지,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늘을 시작 으로 해서 많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짧은 시간 동안이겠지만 저도 제 생각을 말씀드리 고 다른 분들 말씀도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채훈병 : 솔직히 말씀드려서 당대회 쟁점에 관해서 저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려 야 할지 답 없는 시간을 계속 보내왔습니다. 사실 은근히 (기대라고 표현하면 좀 이상하겠지만) 국가적인 메르스사태 때문에 실내에서 다수가 모이는 당대회는 연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제 조금 마음속에 느긋한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토론회가 닥치니까 많이 당황스럽 습니다. 저는 무지개사회주의자연대(이하 무사연)라는 모임에 속해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 면 무사연은 당의 진로에 대한 공식입장은 없습니다.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재작년에 재창당할 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고민해왔습니다. 그런 내용을 간접적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밝히도 록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분발해 진지하게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종철 : 제가 속한 진보결집당원모임(이하 진보결집)에서 의견그룹들의 끝장토론을 제안하게 된 결정 적인 이유는 이 논의를 당원들이 과연 얼마나 따라잡고 있을까? 생업에도 바쁘고 쉽지도 않은 주제기 때 문에 토론을 통해서 당원들이 좀 더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의견그룹들이 해야 할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 부천당협에 가서 토론회를 했는데 당원 한 분이, 직장 동료들 이 새정치연합이 잘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새정치연합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지금 진보정치가 대안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본인은 판단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상당히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6월4일 날 발표된 정의당, 국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37


민모임, 노동정치연대와 합의한 진보혁신과 결집으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4자 공동대표 자 선언입니다. 우리 당은 두 개의 위기가 있습니다. 외적으로 존재감의 위기입니다. 내적으로는 당원들 의 위기, 즉 토대의 위기입니다. 이 두 개는 공통되어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능하고 자기 내 용을 실현할 수 있는 정당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현재 우리 위치를 고수함으로서 그런 것 이 가능한가를 끊임없이 회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2010년, 11년, 그리고 우리가 독자적인 입장을 가 져왔던 2012년 이후에 당권자가 매번 선거 때마다 20%씩 축소되는 그러한 것이 바로 당원들의 위기, 토 대의 위기를 불러온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에 우리는 대중뿐만 아니라 우리 당원들에게 도 우리 당이 진정으로 한국 사회 진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 진보정치를 이렇게 가져 가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진보결집을 이번에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도원 : 신좌파당원회의(이하 신좌파)를 대표해서 나왔습니다. 이번 당대회를 앞두고 당원총투표부의 의 건이 올라오면서 고민과 갈등, 혼란을 겪는 당원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민주사회라는 것 자체가 합법적인 갈등사회입니다. 그 갈등을 어떻게 공적이고 합법적이고 제도적으로 수습하고 해소할 것인지가 관건이죠. 정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당 특히나 진보좌파정당에는 고집 센 사람들이 많다보니 더 많은 갈 등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과정에 대해서 당원들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우리 노동당 에는 그런 이견과 갈등을 해소해 나갈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자리도 그런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최백순 : 김종철 당원부터 질문하시겠습니다.

김종철 : 나도원 당원에게 질문하겠습니다. 6.4공동선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그동안 우리당이 추구 했던 가치에 대해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이것이 앞으로 새로운 정당, 이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새로운 진보결집을 할 때 그 기준에 비춰서 부족한 것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도원 : 지난 재·보궐선거 때 정동영후보와 합의한 내용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공동선 언에 들어있는 합의문은 우리 당의 강령으로 써도 될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봅 시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그 좋은 합의문을 만들어놓고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옛날이야기를 한번 해보죠. 지난 2011년입니다. 당시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통합논의를 할 때, 합당을 하기 위한 많은 문건들을 만들었는데 그 대부분이 진보신당에서 제안한 내용 그대로 채택한 것입니다. 아주 좋은 내용으 로 합의를 하고 통합안을 상정했습니다. 그 당 어떻게 되었습니까. 깨졌습니다. 또 하나 2011년에 우리당 을 대표했던 정치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국민참여당이 참여할 것 같으니 우리가 가서 진보정치 의 우경화를 막아야 한다. 지금 그 사람들 어디에 있습니까. 그 사람들과 같이 정당을 하고 있습니다. 내용 과 실제가 차이가 나는 것이 정치인데, 정치적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8


김종철 : 2011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합당 논쟁 때 합의문을 보면 마지막까지 합의를 못한 게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북한과 핵무기, 3대 세습에 대해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입니다. 저는 그 문제가 패권의 기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민노당 때부터 겪었던 패권의 본질이 바로 그런 사상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입장 표명이 없으면 안된다고 주장했지만 합의가 되지 못했습니 다. 그 당시 조승수 대표가 합의안을 만들어서 2월 달에 당대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조승수 대표가 진보신당 내에서 북한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처리하기로 했다 이야기 했습니다. 그때 이정희 대표가 그것 은 소수의견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민노당의 집행부가 진보신당과 통합하는 것을 그다지 지향하고 않았다는 겁니다. 당시에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수 있는 문재인과 가교가 될 수 있는 국민참여 당과 하고 싶었던 거겠지요. 그것을 통해서 예를 들면 통일부장관을 받거나 이런 식으로 정권에 참여하려 고 했기 때문에 진보신당보다는 국민참여당을 더 높게 쳤던 것이라고 저는 판단했고, 그렇기 때문에 조승 수 대표가 굳이“북한 문제는 이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라고 한 것을 (이정희) 본인이 나서서 반박한 것입 니다. 장원섭 사무총장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과연 그때 통합논의 당시에 이정희 대표나 장원섭 총장 이 보였던 모습처럼 지금 정의당이 진보결집 과정에서 신뢰를 깨트릴만한 행동을 한 것이 있는지, 과연 2011년 논쟁과 똑같이 우리에게 해가 될만한 행동을 한 것이 있는지 알고 계시면 말씀해주십시오.

나도원 : 대상과 신뢰에 대한 말씀이신데요. 4자라고 하지만 조직의 규모라든지 자산으로 보았을 때 사 실상 노동당과 정의당의 합당이죠. 제가 정책당대회 때 정의당 당원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자료를 제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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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있습니다. 2014년 10월에서 11월까지 조사한 내용입니다. 그때 진보정당의 통합에 65.8%가 찬성했습 니다. 정의당 당원들이 진보정당의 통합에 적극적이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2016년 총선에서 새정치연합 과의 선거연대에 무려 72.6%가 찬성했습니다. 또한 정의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에도 32.8%가 적극 임해 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당원을 포함하면 과반이 넘습니다. 이런 정당과 통합 을 하고 총선이 다가옵니다. 총선 때 반드시 중앙 차원에서 새정치연합과 야권연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당내 극심한 혼란이 있을 겁니다. 그 다음 대선, 아마 후보사퇴전술 포함하여 정권교체론에 동조 하는 당론 있을 겁니다. 노동당 당원들이 받을 수 있을까요. 극심한 혼란이 닥칠 겁니다. 그 결과가 나쁠 경우에 그 정당 또 깨집니다. 이런 정치적인 포지션의 판단 때문에 그것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지 현재 정 의당과의 노동당과의 관계와 연대 등은 충분히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뢰 그리고 당원총투표 최백순 : 나도원 당원 질문하시겠습니다.

나도원 : 이번 당대회 가장 큰 쟁점은 당원총투표 건이죠. 당원총투표 부의안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 지 당원들에게 짧게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2013년에 진보신당이 사회당과 합당하고 노동당으로 재창 당을 합니다. 그때 이미 소위 말하는 진보신당과 정의당의 합당을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노동 정치연대 프로젝트죠. 그때 당헌에 당원총투표 한 줄짜리가 삽입됩니다. 두 번째로 보면 2013년 말입니 다. 노동당이 재창당한 바로 그 해입니다. 노동정치연대가 진보정치 원탁회의를 제안합니다. 잘 안됐죠. 나중에 진보정치혁신회의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민주노총 내 이견으로 불발이 되고 준비상태로 쭉 이어집니다. 세 번째 국면입니다. 지방선거에서 아무런 역할 못합니다. 7.30 재·보궐선거, 바로 김종 철동지가 출마했던 선거인데요, 노회찬씨가 동작에 출마하면서 그때서야 노동당이 발을 뺍니다. 참여 재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네 번째 국면입니다. 2015년 노동당 대표단 선거입니다. 그때 제1야당 교체, 정 의당과 선통합을 주장하면서 나경채 대표가 당선이 됩니다. 당시 국민모임이라는 이야기도 없었고요. 이 런 과정에서 4.29 재·보궐 선거가 있었고요. 아시다시피 당내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전국위원회 에서 재·보궐선거 평가 채택의 건, 진보결집단 활동 중단과 재구성의 건 등을 채택합니다. 그런데 바로 공동선언이 나옵니다. 그리고 대표가 계시는 중앙과 전국위를 통한 발의가 아니라 대의원 발의로 이른바 공동선언, 당원총투표 부의의 건이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나온 것은 노동당 현실이 어렵고 이런 것 이라기 보다는 지난 진보신당 시절부터 몇 년 동안의 역사, 매우 오래된 맥락 속에 나왔다는 것을 말씀드 리는 것입니다. 조선대 정치학과 지병근 교수가 각 진보정당의 당원 수 분포를 보며 연구한 결과입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2007년 감소하던 당원 수는 2009년을 기점으로 다시 증가세로 전환하여 2010년에는 11만 4천명, 40


2011년에는 12만 9천명으로 급증한다. 진보신당 역시 2008년 창당 1만 5천명이었던 당원 수가 2010년 그 이상으로 증가한다. 그러니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분립구도에서 진보정당들의 당원이 가장 많았다는 겁니다. 신뢰에 기반을 두지 못한 정당통합이 오히려 진보정당의 발전에 심각한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분립해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저도 충분히 알고 있 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인지, 새로 만들어질 통합진보 정당에서는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김종철동지께 묻겠습니다.

김종철 : 민노당에서 한 때 12만 명이었던 것은 당원번호가 그런 거고요. 민노당은 당원이 탈당해도 번 호를 삭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데이터라는 게 연구자들이 잘 모르시는데 중간에 수만 명이 탈당해 도 당원번호는 12만 명이 되니까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닙니다. 그 다음 에 신뢰에 기반을 둔 통합이 없으면 통합이 안되고, 그런 신뢰가 없는 재편을 하다 보니까 당원들이 축소 되는 거라고 말씀하시는데 거꾸로 물어봐야 되겠습니다. 2년 동안에 진보재편이 주요 이유가 되서 그게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어서 당원이 줄어든 사례가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지금 나도원 동지가 이야기 하 는 것이 성립이 되려면 2012년부터 지금까지 당권자 수천 명이“또 다시 진보재편을 추진하는구나”하고 실망해서 탈당을 하거나 당비를 정지시키는 것이 맞는데.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2012년 이후에 2014 년 7월까지 운영위원회에서 진보재편이 안건이 된 당협이 있을 것 같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존재감이 사 라지니까 당원들이 이 당의 유의미성을 찾지 못해서 탈당하거나 조용히 당비를 끊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로 탈당자는 많지 않은데 당권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탈당절차가 어렵기도 하고, 탈당을 신고하면서 당과 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괴롭기 때문에 조용히 은행계좌를 해지하는 것뿐입니다. 존재감의 위기, 외적인 위기가 당원들이 볼 때도 내적위기로 전환해서 당원들이 탈당하고 당비납부율이 줄어들고 있는 겁니다. 당협위원장이 있는 곳이 62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 실제 운영위원회가 있는지 지역사업을 하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존재감의 위기가 당의 내적위기, 토대위기, 당원들의 위기로 전환했다, 이게 핵심 아닙니까.

나도원 : 청년당원들 비율이 줄어들고 나이가 고령화된다는 이야기인데, 제가 2년 전에 했던 이야기하 고 똑같습니다. 그때 제가 당원증감 추이를 보면 이십 대와 삼십 대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사십 대는 고정되어 있고 오십 대는 오히려 늘고 있다. 제 대안은 이겁니다. 청년층 조직 실패의 결과다. 젊은층이 이 탈하고 중년층 이상이 고정되어 있는 현황은 당의 경로의존성과 의견분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까 통합과 분열과정에서 당원수가 유실된 것을 유독 노동당의 상황으로 국한시켜 당의 미래가 없다고 유 포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뜻입니다. 지금 방향전환과 혁신을 못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죠.

윤현식 : 당의 미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제가 당의 미래 운영위원장으로서 당의 미래 있습니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당 대표후보 출사표에 당의 미래를 두려워하시는 문구들이 몇 가지 있더라고요. 정의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41


당에서도 당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선 김종철 당원께 묻겠습니다. 내년 4월에 총선이 있습니 다. 얼마 남지 않았죠. 결집이 추진하는 로드맵 속에서 계획하는 대로 이뤄진다면 내년 총선의 결과를 어 느 정도로 목표치를 예상하고 계십니까?

김종철 : 비례대표 득표에서는 7~8% 정도를 기준해서 더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를 좀 말 씀드릴까요? 2004년 민노당 시절에 최종 13% 득표를 했습니다. 그때 1월 달까지의 여론지지율이 1~2% 였는데 그것이 차츰차츰 올라서 4%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2월 말에 탄핵정국이 벌어지면서 다시 1%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특별히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떨어졌냐, 탄핵이 동원되면서 당시 노무현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을 빼고는 다 지지율이 떨어졌습니다. 또 2002년 지방선거에서 비례 8%를 득표해서 TV토론 에 나갈 자격이 생겼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때 노회찬 사무총장이 나가서 많은 히트를 치면서 굉장히 지지 도가 올라갔죠. 최종 13%를 얻었는데 저는 지금 정국에서 그 정도가 가능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현재 정의당이 4% 내지 5% 정도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고, 저희야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 지고 있는 지지도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보고 그리고 일정하게 상호신뢰에 기반을 둔 통합이 되었다고 했을 때는, 아주 나쁘지 않은 조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8%를 기준으로 해서 우리가 얼마나 더 잘하느냐에 따 라서 더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 당선자는 솔직히 그렇게 많을 거라고 예상은 하지 않습니다.

윤현식 : 그 전망에 대한 데이터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실제로 여론이 8%를 기준으로 상향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한편으로는 여론이 그대로 표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 았을 때 결국 선거에 돌입했을 때 어느 정도의 조직력을 가지고 선거에 직접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가를 판 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득표율을 보았을 때 통합진보당이 5%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역 량이 강제적으로 흩어진 상황에서 이 조직력들이 결합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8%라는 수치가 나올 수 있 을 것인지 회의할 수밖에 없고요. 내년에 통합을 해서 말씀하신 예측이 나오지 않았을 때, 지지를 한 곳으 로 모아서 재정이라든가 활동력이라든가 이런 것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종철 : 원래 진보정당이라는 것은 성과를 예측했다가 그것이 안되더라도 거기서 다시 시작한 것 아 닙니까? 예를 들면 2000년 총선에서도 울산북구에서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고 창원에서도 권영길후보 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 둘 다 안됐습니다. 둘 다 안됐는데 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번 총선에서 도박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태로 가다가는 진보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나 활동력을 가지고 있는 노동당이 소멸될 위기에 처할 수 있고, 그 소멸이 자랑스러운 소멸이면 모르겠는데 그것이 아니라 진보분립구도에서 우리 자체만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윤현식 : 깃발 지키느라고 여기 있다는 것, 저도 그 부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42


말씀하시는데, 사실 노동당에서 재창당을 하고 지금까지 온 것은 다시 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여기 서 다시 할 수 없으니 합쳐서 한다는 건 저의 입장에서 설득력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6.4 공동선언에서 나왔던 이런 가치들이 관철이 되고 그 속에서 진보정치를 재구 성하면서 노동자·민중들이 기대를 갖고 우리에게 올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할 텐데요, 정의당 이 7월 달에 선거가 있지 않습니까? 출마하시는 분들의 출마선언문을 쭉 본 결과로는 그분들이 제시하고 있는 것은 새정치연합과 관계정립이 전제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새정치연합과 선거연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6.4선언에서 나왔던 좋은 가치들을 지켜나가는 쪽에서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결국은 총선에서 후보단일화라든가, 대선의 연립내각 구성에서 지분이라든가, 이런 쪽으 로 흘러갈 가능성은 없는가,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힘의 역관계라는 것이 작동하면서, 6.4공동선언에서 그렇게 강조하면서 노동당의 가치를 많이 반영했다고 하지만, 결국은 그 부분이 형해화되고 구도가 깨질 경우에는 가치도 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우려 조금 있습니다.

물적토대 그리고 재생산 최백순 : 채훈병 당원, 질문하시겠습니다.

채훈병 : 일전에 나도원 동지도 윤현식 동지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당에 있는 위기가 촉발된 근 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계속 우리 당의 위기나 전망을 선거에서 지지 율, 득표율을 가지고 평가한다는 것은, 진보정당의 역할을 굉장히 협소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듭니다. 선거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사회변혁의 대상인 국가기구와 그 국가 안에 있는 대의제인 정당체제에 우리 진보정당의 역할을 집어넣는 것이 됩니다. 나도원 동지께서 반론으로 지금 당 비 감소율의 원인이 다른데 있다고 하셨는데, 하지만 당비 줄고 있고 당원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물적토대가 붕괴됐다? 그런데 그분들이 처 음 운동했을 때는 의원 하나 없고 물적토대도 없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아까 나도원 동지가 재생산을 할 수 있는 청년당원을 육성하자고 했는데, 육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굉장히 보잘 것 없죠.) 그런데 우리가 진보정당의 소명을 너무 협소하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요한 원인들 중에 하나가 당의 성격이나 체질을 정량적인 평가, 아까 나왔던 당비 납부율, 당원 감소율 그리고 선거 때 당의 지지율로 평가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재편에 고민은 되지만 찬성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재편으 로 가서 우리 당이 얼마나 의석수와 지지율을 더 확보하느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김종철, 강상구, 장석준이 얘기해왔던 진보정당 운동의 전통을 여기서 젊은 당원들과 함께 새로 쓸 수 있는지에 저는 더 관심이 있습니다. 신좌파당원회의의 대표이고 많은 청년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나도원 동지 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나도원 동지께서 청년의 재생산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셨고, 선거 때 공약이 청년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43


의 동력이 소모되지 않는 운동을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지난 당직선거 그리고 그 이전에 지방선거에서 젊 은 당원들이 자신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파적인 입장에서 자기의 젊은 역량을 소모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노동당 활동에 대해서 걱정이 됩니다. 제가 최근에 경험한 바 로는 결코 당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나도원 : 예전에 진보신당이 국회의원이 한 명 있었죠. 그리고 국회의원 한 명도 없이 4년을 버틴 정당 이에요. 민노당 때부터 오랫동안 정당 활동을 해왔던 분들은 많이 지치고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일방적 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인과 당 그리고 진보정치의 전망을 하나로 일치 시킬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로 역할을 나눠가면서 도울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죠. 당원 수는 줄 지만 실제 보면 청년활동가는 크게 증가를 하고 있죠. 통합이냐 독자냐 이 논의를 종결지어야만 선배들과 청년당원들이 당을 위해서 머리 맞댈 수 있다고 봅니다.

윤현식 : 사실 서두 발언할 때 가벼운 인상비평 정도만 했는데 저는 진보결집이라든가 이런 것은 진보 정당이라면 언제든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결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자체가 당론이 되 는 것이 아니라 결집이냐 해체냐 하는 것은 언제든지 상수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고 지금 상황에서 통합 을 말하는 사람들만큼이나 저는 하루 속히 제대로 결집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갈려면 제대 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최근에 4자모임에 들어와 있는 단위 중에 저는 정확하게 파트너십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정의당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국민모임 같은 경우에 과연 정치적으로 유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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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력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작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태도들이 사실상 정치에 대한 이 해가 거의 책상위에서만 있었던 그런 수준으로 보이는데 이분들이 과연 4자연대의 축으로서 기능하는 것 이 맞느냐 하는 겁니다. 한편으로 노정연 같은 경우는 우려스러운데요, 최근에 보니까 각 지역을 돌아다 니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정당에 입당하겠다는 선언을 조직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분들이 왜 정의당이나 노동당이나 들어가셔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으셨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분들도 정당의 파트너십을 가지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채훈병 동지께 질문을 드리겠습니 다. 과연 국민모임이라든가 노정연이 실질적으로 진보정치 판에서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는 존재라고 생 각하시는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뭔지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채훈병 :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2008년 진보신당 노회찬, 심상정 전 당원이 총선에서 낙선하 고 입당한 당원이기 때문에 그 전에 같이 관계를 맺고 운동을 했던 분들은 신문지상에서 보죠. 이제 그분 들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세력도 스탠바이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이 만들어지면 들어오겠다는 건 데 마찬가지로 궁금해요. 민주노총이 옛날에 배타적인 지지를 했던 우호세력이고 거기서 돈도 나오고 세 력도 나오고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인데요, 오랜 시간동안 밖에서 보기에는 진보신당, 노동당이 소 꿉장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정당 활동을 하면서 활동가들을 꾸려나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 니다. 당 밖에 평론가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움직일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선거연대 그리고 명망가 김종철 : 인식의 차이가 많아서 정당을 왜 할까 하는 문제의식을 공유해야겠다 싶습니다. 노동단체나 특정주제의 단체를 만든 것이 아니라 정당을 만든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제도정당의 틀을 존중하면서 그 안에서만 머물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런데 위기라는 것이 항상 찾아오는 것인데 그게 두려워서 다른 것을 못한다고 하면 사실 정당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총 선준비위원회에 따르면 내년에 전국적으로 한 곳 또는 두 곳에 집중한다는 것이 선거계획입니다. 노동자 밀집지역이죠. 거제와 울산입니다. 말이 좋아서 집중이지 다른 곳에 나갈 사람이 거의 없어서 거기에 집 중하자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유력한 2등을 했던 거제지역이 통진당, 민주 당과 단일화를 해서 새누리당에게는 이겼지만 무소속에게는 진 곳입니다. 총선계획에 따라 한 곳에 집중 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선거연대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까 선거연대를 하면 당이 난리가 나고 고통 받을 것이라고 채훈병 동지가 말씀하셨고요, 윤현식 동지는 그 부분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 고, 나도원 동지도 그 난리판에 당원들을 맡기자는 것이냐 말씀하셨습니다. 4자 공동선언이 다 좋은데, 선 거연대를 하면 대선 때 연립정부 같은 것 때문에 고통에 빠질 수 있으니까 그걸 꼭 해야 하는 거냐, 저는 이것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제나 울산에 후보를 중점적으로 내면 선거연대를 할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45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나도원, 윤현식 동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고요, 선거연대를 열어 놓고 있다면 우리가 진보결집을 할 때 선거연대가 기회주의적인 요소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도원 : 선거연대는 중앙 방침의 문제인거고요. 지역차원에서 진보신당 시절에도 선거연대 많이 했습 니다. 통합정당이 생긴다면 누구와 누구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방침을 정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김종철 : 2007년 전까지 거제나 울산 창원에서 민노당의 주도하에 선거연대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 고 한 것이었고 수도권이나 대선에서 선거연대를 한 적이 없습니다. 선거연대 때문에 진보정당이 계속 휘 청휘청했다고 하는 것은 그 이전에는 성립이 되지 않아요.

나도원 : 지금 통합정당이 만들어지면 유명한 정치인 몇 명 당선시키는 것으로 끝날 겁니다. 노동당 재 창당 할 때 노동중심 그렇게 강조하시던 분들이 지금은 미련 없이 정의당, 국민모임과 합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동당이 어떤 정당입니까. 진성당원 중심의 생활정당 아닙니까. 우리는 명망가 몇 명이 모인 팬클럽정당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통합논의는 결과적으로 소수 명망가 몇 명에 의존하는 대 리주의 정당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윤현식 : 저는 정당이라는 것은 선거를 중요시해야 되고, 공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정당의 한계는 분 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동지가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을 만들고 공직자를 보내는 것에 대단히 관 심이 많습니다. 명망가에 기대는 정치에는 반대하지만 명망가는 계속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0 명을 만들어내서 99명이 도망가더라도 정당은 명망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한국처럼 희한한 정치관계법 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소선거구제에서는 선거연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2년 총선 때 거제에서 민주당, 통합진보당과 후보단일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통합진보당 측에서 전혀 선거에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분패를 했죠. 김종철 동지 가 수도권에서 선거연대 없었다고 했지만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진 2012년만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민주당 과 선거연대 했습니다. 결국 선거연대 다 했거든요. 선거연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저는 선거연 대, 더 나가서 대선에서 정권을 잡는 특정세력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열어놓을 수 있다고 보나 우리 주도로 할 수 있다는 낙관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

김종철 : 2007년 이전에 수도권에서 선거연대가 없었다고 한 것은 아까 나도원 동지가 계속된 선거연 대가 정당의 몰락을 재촉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했을 때 실제로 민노당은 선거연대가 아니라 내부분 란으로 분당이 된 것이라는 것을 설명을 드렸던 거고요, 선거연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윤 현식 동지의 의견에 공감을 합니다. 그런 것이 진보결집이나 통합논쟁에서 과도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것 46


은 맞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채훈병 : 윤현식 동지가 이야기한 내용이 공감이 가서 말씀을 드리는데요, 앞으로 선거연대는 피할 수 없는 문제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선거연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야기하는 문 제에 대해서 우리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명망가 말씀을 하셨는데, 어쨌든 과거에 몇 분의 명망가 때문 에 상처가 많아서 싫다고 하는데 저는 좌파정치는 명망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좋기는 한데 그걸 설명하려면 2박3일 설명해도 긴가민가하고, 우리 당원들끼리도 정책을 설명하려면 밤을 새도 아침이면 까먹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정책이나 가치를 알릴 수 있 는 번역가라든지 인격체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람이라면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윤현식 동지에게 꼭 드리고 싶은 질문입니다. 당 안팎으로 우울한 소식들이 들리고 있죠. 2008년 창당의 정신, 그리고 우 리의 이념이고 지향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실천으로 체화되지 못한 것들이 그 징후가 나타나는 것이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당의 미래가 노동당 노선을 지키고 사수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노동당 노선의 중심에 노동중심성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당이 어떤 지향을 가지고 그동안 유보해 왔던 정신들을 책임 있게 끌어갈 것인지에 대해 당의 미래가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윤현식 : 당의 미래는 당 중심성과 당 강령 중심성, 그리고 그 안에 노동 중심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 다. 강령이 추상적인 형태이고 내용 중에는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부분 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강령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 면서 실천하는 것이 우리 당원들이 모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실천을 어떻게 구체화시킬 것인가 하는 부 분에서 각론이 나올 것이고, 그것이 정리가 된 것은 정책이고, 정리가 안된 것은 의제로 만들 수 있을 것입 니다. 오면서 진보결집 릴레이 글 여섯 개가 올라온 것을 읽어봤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내용들이 진보정 치가 해야 할 일들인데요, 어떤 사람들은 결집을 하지 않고 노동당만으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고, 어떤 분들은 노동당에서부터 출발해보자고 합니다. 당의 미래는 강령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실천하는 하나의 조건으로 우리 당의 당원들이 지금까지 활동해왔던 것부터 천착하고 출발하자는 겁니다. 여기서 그것을 못했다는 것은 선배의 입장에서, 먼저 당 활동했던 입장에서 굉장히 미안하고 사과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앞에 가는 사람, 뒤에 오는 사람 이런 식으로 역할을 분담해서 의무를 떠맡길 것이 아니 라 지금부터 같이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면 어떻겠는가. 당의 미래는 지난 토요일 총회를 하고 몇 가지 의제를 제공하고 실천방안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했습니다. 사업계획이 만들어지면 당원 들과 공유할 것이고, 당원들이 허락해 주신다면 당과 함께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당의 미래는 당 중심 성이라는 가치관에 맞게 당원들이 하는 일의 모든 성과는 당에 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판단을 가지 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성과로 쌓이게 된다면 우리 노동당 안에서 정말 지쳐 있는 부분들에 대해 물 을 주고 싹을 키워나가는 출발점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실천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47


최백순 : 자연스럽게 총선 기본방침안과 진보결집에 대한 내용으로 토론이 진행됐습니다. 제일 쟁점이 되고 있는 당원총투표에 대해서 패널들이 의견과 질문을 주시길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요약한 내용에 대해 짧게 질의도 허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도원 : 저는 당원총투표 부의안은 네 가지 면에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의도의 무책임. 당원의 뜻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의결기구를 압박할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습니다. 지도부가 당원들이 선출한 의결기구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얘기입니까? 이런 식의 대립각을 그리면 이후에 당을 어 떻게 운영하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란 직접 논의하고 합의하 고 결정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논의와 합의 과정은 무시하고 O, X로 결정하라고 던져 버린 겁니다. 두 번째로 과정의 무책임이 있습니다. 지도부가 전국위원회를 우회해서 안건을 올렸습니다. 게다가 세칙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합의과정이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불필요한 논란이 늘고 있습니다. 매우 우려스러운 게 향후에 이게 만일 일반 안건이고 과반이라고 주장하면 다수의 대의원을 점한 의견그 룹은 차후에 이런 방식으로 얼마든지 당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과정이 무책임하다는 겁니다. 세 번째 결정의 무책임이 있습니다. 대상들이 지금 난립하고 있는데 대상자들에 대한 합의가 없 습니다. 이번에 올라온 당원총투표 부의안의 내용이 더 구체적으로 변경될 소지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까 당원들에게 지금 A를 가지고 결정하시오, 그러면 나중에 A+B가 될 수 있습니다. 또는 A-C가 될 수 있 습니다. 이걸 가지고 대의원들의 다수가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결정의 무책임이 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결과의 무책임이 있습니다. 만약에 당원총투표 부의안이 통과되어 당원총투표를 시행한다고 합시다. 처음에 당원들이 당원총투표안을 받았던 이유는 빨리 매듭을 지을 수 있겠구나 그런 뜻이었죠. 하지만 당원총투표 부의안이 올라갈 경우에는 올해 하반기 내내 이 논쟁이 또 지속됩니다. 앞으로 석 달 동안 이 얘기를 또 해야 될 거고, 혼란한 상황에서 임시당대회를 열 수밖에 없고, 거기까지 극한 대립과 혼 란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이 당원총투표 부의안의 네 가지 무책임입니다. 저는 대의원도 전국위원도 아 닌 평당원입니다. 평당원 나도원, 대의원들께 요청드립니다. 여러분이 책임지고 결정해 주십시오.

절차 그리고 민주주의 윤현식 : 지난번에 당헌개정안을 제가 성안을 해서 전국위원회에 발의를 했는데, 일부 전국위원들께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일어나서 나가셨습니다. 제가 당헌개정안을 올린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총투표를 하게 된다면 총투표의 의의와 절차, 효력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가자는 것이었습니 다. 두 번째로는 기왕에 논의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총투표의 의의가 좀 더 활발하게 나오기를 바랬고 요, 어떻게 보면 반 정도의 효과는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그것을 냈을 때 두 측면을 가지 48


고 있었는데 하나는 진보통합을 얘기하는 분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당원들이 납득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 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자는 취지의 제안이었고, 반대쪽에서는 아예 결집이라든가 통합이 라든가 이런 얘기들을 당 안에서 더 이상 논의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있는 상황에서 기왕 나온 얘기 빨리해 보자 이런 취지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한쪽에서는 왜 지금 결집이나 통합 이야기를 종료시켜야 되는 마 당에 그 판을 깔아주느냐라는 비난이 비등했습니다. 그런데 반대편 즉 통합을 얘기하는 분들께는 전국위 원회 당일까지도 아무런 접촉이나 연락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 당일 전국위원들께서 그런 식으로 가결정 족수를 두는 것이 마치 진보정치의 원칙을 깨는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요, 당원 들에게 의사를 묻겠다고 했는데 그 당원의 의사가 명확하게 의사로써 규정이 돼야 됩니다. 그런데 현재 이야기가 되는 당원총투표는 그 의사라는 것이 사실상 지금 6.4공동선언을 기반으로 진보결집 논의를 할 까 말까 당원들에게 묻는 겁니다. 이건 마치 어느 집안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할까 말까를 묻는 것 이 아니라 결혼을 할지 말지 논의를 시작할까 말까를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과정 속에서 이걸 듣 는 우리 당원들의 입장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아까 나도원 당원이 말씀하셨던 것 중에 중요한 것은 숙 의의 과정, 당원 전체가 참여해서 숙의를 할 수 있는 과정을 얼마나 열어놓고 있는가, 단순히 찬반의 표를 찍는 정도로 당원들을 불러 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럼 이것이 과연 당원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으로 우리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 다. 제대로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르고 더 명확하게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적어도 이런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당원들에게 어떤 소명을 부여하려고 한다면 이 정도의 의사결정 중이라는 것을 당원 들 스스로가 인식하도록 조건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제안하는 총투표 부의 건 같은 경우에는 당원에게 의사를 묻는 방식으로 좋지 않다, 어렵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채훈병 : 저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기보다는 당원총투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다 른 각도에서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 나도원 동지가 대의기구에 대한 불신, 과정의 문제, 결정의 무책임, 결과의 무책임을 말씀하셨고, 윤현식 동지도 크게 다르게 않게 말씀하셨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 기구의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대의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당헌당규에 당원들의 총투표를 애매하 지만 명시를 하고 있는 것이고 당원총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내용의 과 정이 있고 절차의 과정. 절차에 관해서 사실 합의되지 못했습니다. 나경채 대표께서 공약을 들고 나오셨 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고 어떤 권위를 갖는가에 대해서는 서로 묻고 답하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용의 과정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당직선거 때 몇 달 동안 토론을 했고 그 뒤로도 꾸 준하게 당원총투표에 대하여 토론했습니다. 사실 당원총투표라고 하는 당원직접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제 가 몇 년 전부터 강하게 주장을 해왔고 여러 사람 붙들고 얘기를 해서 심한 경우에는 저보고 반정치주의자 다 이렇게 할 정도로 평당원민주주의를 주장했습니다. 다만 나경채 대표가 절차에 집착하지 않고 내용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 책임은 분명 최우선적으로 나경채 대표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당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49


내 논의에 부쳐졌을 때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복안을 갖고 계셨어야 하는데, 당직선거 때 나 왔던 당원총투표의 상과 지금 집행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총투표의 상은 다릅니다. 절차가 중요하지 않지 만 정치라는 건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합의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게 결국은 절차와 형식입니다. 저는 12분의 7의 가결 요구를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 얘기를 왜 말씀드리냐면 12분의 7이면 58%입니다. 58프로는 이쪽저쪽도 냉큼 합의하기가 어려운 수치입니다. 과연 우리의 정치가 12분의 7를 받을 수 있는지 저는 그것을 묻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내용의 토론에도 불구하고 절차상의 생략된 생각 들, 상을 당원들에게 전달 못하는 정치적인 책임은 분명히 지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 6월4일 노동당, 정의당, 국민모임 등 4자 대표가 합의한 것은 우리 당 강령에 굉장히 많이 기 반을 둔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합의였습니다. 단지 우리가 앞으로 통합할거냐 말거냐를 추진할 지 말지를 결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높은 수준의 합의를 이미 낸 것입니다. 6월 당대회까지 일정을 맞추면서 그동안 각 조직 내부의 프로세스를 밟는데 늦어진 측면이 있습니다. 당의 미래가 오늘 그런 제 안을 하셨잖아요, 당원들이 당원총투표로 선택을 하려면 누구랑 합당할 거냐 말거냐, 그리고 어떤 내용을 더 보강해서 할 거냐 말거냐를 논의할 수 있느냐,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당원 총투표를 제대로 실시해 보자는 취지에서 그것이 제안된 것이라고 한다면 저는 이번 당대회에서 미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원 동지가 이야기한 것처럼 당원총투표의 내용을 가지고 최종적인 당대회 에 부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원 동지는 그것은 대의원을 믿지 못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은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주권자는 언제든지 대의기구의 성원들이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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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배신하거나 원래 위임한 형태로 되지 않을 경우가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직접민주주의를 통해서 자 기의 의사를 표현할 자유가 있고 그것이 직접민주주의의 핵심적인 정신 아닙니까? 그런데 당원총투표를 추진하고 있다고 해서 대의원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고 하는 것은 어떤 당원이건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합 니다. 당원들의 총적의지가 모인 총회보다 더 권위 있는 견해가 있습니까? 그래서 저는 당원총투표에 대 해서 신좌파당원회의도 제대로 된 당원총투표의 권능, 당원들의 총의가 중요함을 확인해주셨으면 좋겠다 고 생각을 합니다. 그 방향으로 나가되 어떤 쟁점이 있는지 토론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윤현식 : 현재 당헌 규정에도 굉장히 애매모호하게 돼 있는 것이 당의 진로 결정을 당대회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회에서는 당원총투표에 부의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그 부의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결의를 통해서 당의 진로에 대한 문제도 당 원 총투표에 부의할 수 있죠. 지금 당헌에는 그렇게 돼 있고요, 당원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전적으로 부인은 안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당부를 하고 싶은 것은 김종철 동지가 당의 미래가 올린 주장에 대해‘만약에 그러면’ 이라고 하셨는데 그 진의를 믿어주시기 바라고요, 나도원 동지가 의결 기구에 대한 불신이나 무력화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직접민주주의가가 가 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고. 그런데 지금 총투표는 결정을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굉장히 애매하고 당원들이 한 번 의사를 밝히는 게 좋은 거 아니냐 하는 수준인데 이것이 과연 총투표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렇다면 왜 이것을 여론조사를 못하는가, 여론조사는 오히려 당의 집행부에게 항상 정치활동의 일환으로 할 수 있도록 보장이 돼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수준이라면, 오히려 찬반의 O, X의 상황보다도 더 많은 질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여기 4자모임에서 빼고 싶은 데가 있나, 아니면 붙이고 싶은 데가 있나, 이런 것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더 다양하게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볼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그것 이 최종결정사항이 아니라 나중에 다시 열게 될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 토론에 부치고 거기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다시 당원총투표에 부칠 수 있는 과정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 면 지금 이 주제를 가지고, 당원총투표가 아니면 안된다, 이것을 반대하면 당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는 것 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인지 저는 그것이 납득이 안된다는 겁니다.

가치 그리고 진보결집 최백순 : 마무리 발언 3분씩입니다. 선거에 출마를 했다는 기분으로 열정적으로 요약해서….

나도원 : 오늘 토론을 들으셨거나 지난 선거 때 문건들을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분명한 정치지향, 특히 정당경험 그리고 현실인식, 나름대로의 정세판단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안 된다고 주장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보정치가 다원화 된 것이 인정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51


예요. 우리 한국에는 진보정당이 다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대중정당을 거부하자는 것 이 아니고요, 대중이 주인 되고, 대중을 대변하고, 본인들이 바로 노동자 민중인 정당, 이것이 바로 대중 정당 아닙니까? 그 길로 가야 되는데 통합을 거부하면 대중정당을 거부하는 것이냐, 저는 전혀 그렇지 않 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노동당이 그분들이 미래까지 담을 수 있는 정당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이 굉장히 안타깝고“이제 다시 시작할 때가 맞다” 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 가지 주장하는 분들을 활동가로 서 당원으로서 존중할 뿐만 아니라 그 의견에 나름대로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리 모두들 죽이는 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저는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몇 달 전 에 김종철 동지께서 토론회에서 플로어에 앉아있는 저에게 질문하신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당의 결정이 진보결집으로 난다면 그 결정에 따를 것인가, 그리고 나도원 동지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도 열심히 설득 할 것인가? 저도 이렇게 질문 드리겠습니다.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의 결정에 대해서 명확히 따라 주실 것인지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열심히 설득할 것인지 이렇게 여쭙겠습니다. 동지들, 이번 당대회 희망을 담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김종철 : 저는 나도원 동지가 이 당의 위기가 당원들의 위기이며 그런 점에서 토대의 위기라는 점에 대 해서 한 번 더 깊이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고, 그것에 한 가지라도 동의가 된다면 당원총투표를 거부할 이 유가 없다, 당원총투표 실시를 요구해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한 가지 의문이 있 습니다. 진보결집 과정에서 노동당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이 부분이죠. 그런데 거꾸로 한 번 추측성 질 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의당은 진보결집 과정에서 정의당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까요? 정의당이 잃어버릴 것은 없을까요? 우리가 정의당이라든가 이런 세력들을 믿지 못한다고 했을 때 그 이유는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상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우리 랑 합의하고 있고 계속해서 진보결집과 진보재편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하나 합의 되는 가치를 중심으로 해서 각 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저는 그 가 치와 내용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진보를 더 큰 틀에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 당원들에 대한 예의이자 더 나 아가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계속해서 빈곤해지고 자살하는 민중들에게 아주 유력한 정치적인 힘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채훈병 : 당 대회 쟁점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당의 전반적인 상황과 진로에 대해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 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어쨌든 2011년도에 독자통합 논쟁이 있었고 그게 우리를 위기로 몰았느냐 안 몰았느냐는 각자 판단이 있는 것이고요, 분명한 것은 아까 윤현식동지가 말씀한 것처럼 당은 계속 재편논의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에는 동의합니다. 저는 앞으로의 논의는 당 대회 주장을 봉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각자 얘기를 꺼내놔야지 답이 나온다고 봅니다. 한가 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정당으로서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는 의원을 배출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고 사회적 52


으로 그런 힘이 필요한 건 사실인데, 국가권력과 국가체제를 대의하는 역할, 진지하게 체제를 고민하는 정당의 역할은, 선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전술로 판단하는 틀 안에서 고민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너 무 먼 얘기지만 그걸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틀은 아직까지는 지금 여기 노동당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상식처럼 생각을 하고 있었던 2008년 창당의 가치를 다시 꺼내서 생각을 해야 합 니다. 지금 게시판에서 얘기가 되고 있더라고요, 우리가 상식처럼 얘기해왔던 얘기들, 여성주의자가 생태 주의자가 될 수 있는가, 노동과 여성주의를 대비할 수 있느냐, 노동 중심성이 중요하다, 2008년도 2012년 도 못했던 그런 의미 있는 논쟁이 지금 뒤늦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회가 더 지속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를 더 강하게 지속했으면 좋겠습니다.

윤현식 : 시작할 때 지금 낙타에게 채찍질을 할 때냐 물을 먹일 때냐 판단을 해보자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토론하면서 다시 한 번 그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힘을 키우고 대중정 당을 하든 운동정당을 하든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더 크고 강한 조직이 되어야 결집도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지금처럼 지쳐서 넘어져가고 있을 때는 채찍질이 아니라 물을 먹이는 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뢰라는 것은 4자, 특히 정의당과 노동당 간의 신뢰 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요, 한국에서 진보좌파 정치에 대해 기대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우리들 이 이 과정에서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느냐를 판단해 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정의당과 노동당 이 합치면 어디를 찍을지 몰라서 헤매고 있는,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그 당을 찍을 거라고 하 는데 그 부분에 대해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과정에서 대기업 정규직 조직노동자들 일부의 지지는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보신당을 창당할 때 들고 나왔었 던 민주노총당화 되는 것에 대한 비판, 비정규직 당이 되겠다고 하면서 우리가 손을 내밀려고 했던 비정 규 노동자들, 불안정 노동자들이 이 모습을 보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지, 이것 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가 어디고 우리가 손을 내밀고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명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신뢰 를 가져야 하는 그분들과 더 넓고 깊게 우리가 같이 하는 것이 저는 진보정치의 제대로 된 결집이 아닌가, 이렇게 판단합니다. 우리 노동당이 그런 결집을 위한 방식과 프레임을 재구축하는 그런 기회가 만들어지 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최백순 : 고맙습니다. 당원동지 여러분이나 패널, 이 방송을 보고 있는 당 대의원분들, 당대회까지 6일 이 남았는데 치열한 고민을 가지고 오셔서 당대회에서 좀 더 현명한 판단들이 논쟁이 되고 결정이 되었으 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기획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53


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6

청년학생위원회 대의원 안현진

녹색의 세대를 잇는 가교를 위해 “그런 공백이 있어요. 노동 쪽은 알바노조나 청년유니온 등이 있지만 환경 운동은 확실히 적죠. 청년을 이름에 내걸고 녹색이나 탈핵을 내건 곳이 드 물어요.” 세대의 공백이 있는 자리에서 청년과 청소년을 구심으로 새로운 동력을 내고 싶은 안현진 당원은 무엇보다도 흩어져 있는 녹색청년들을 모으고 기존 환경운동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터뷰·정리·사진 : 김영길 청년학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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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55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 “쌍용자동차 투쟁이었어요.”처음에는 흔한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딱“초등학생일 때 아버지가 파업투 쟁을 했었거든요.” 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안현진 당원의 아버지는 코오롱에서 일하던 노동자였다. 코 오롱은 2005년 2월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82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했다. 코오롱노동자들은 그때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꼬박 10년을 삼보일배에 고공농성, 단식농성까지 치러가며 투쟁했다. 일터로 돌아가 기 위해서였다.“이게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일이구나 생각했어요. 쌍차에서는 올해 5월까지 28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잖아요. 2009년 당시에도 큰 문제로 기사화되었던 게 바로 그 해고노동자 가족의 이야기 였거든요.” 당시 유년시절의 안현진 당원과 쌍용자동차 투쟁을 연결한 건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빨간 머리띠와 노조 조끼를 입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와 생활비가 없어서 사촌과 친구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주변

“곧‘나의 일이구나. 해결해야 할 일이다’싶었 어요.”적어도 그에게는 해고된 노동자와 그 가 족의 삶이 기사로 재현되는 일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저희 아빠는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친구의 아빠는 해고되고. 덜 할리 없겠죠.”적 어도 그에게는 해고된 노동자와 그 가 족의 삶이 기사로 재현되는 일이 아니

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묻지 않았지만 쌍용자동차 투쟁을“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 이라고 말할 때, 정리 하지 못할 무게감이 다가왔다.“곧‘나의 일이구나. 해결해야 할 일이다’싶었어요.” 사회운동을 하겠다는 막연한 다짐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조금씩 눈앞에 있는 것들이 되기 시작했다. 한 신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한 후 뜻이 맞는 사람들과 반폭력학회‘홍시’ 를 만들었다. 세미나도 하고 학회 지도 만들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군 내 폭력,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 김치녀 논쟁 등 사회 곳곳에 존재하 는 폭력과 혐오의 문제를 학습하고 고민했다. 특히 학회지를 내면서 세상의 문제들을 알리는 일에 생겨난 관심은 2학년 때 학보사 입사로 이어졌다. 학보사 기자 활동을 계기로 밀양을 만나게 되면서 안현진 당원은 새로운 결심을 했다.“그러니까 제 인 생의 첫 집회가 밀양 희망버스거든요.(웃음)”2013년 11월 수습기자 시절 사회면 취재를 위해 밀양 희망버 스를 탔다.“밀양에 가니까 이상한 거예요. 방패를 든 경찰이 수십 명 서 있고요. 할머니 댁이 당진인데, 거긴 이미 송전탑이 쭉 늘어서 있거든요. 한 시간까지 내내 철탑이 보여요. 들어갈 때 엄청 무섭죠.”할머 니 댁 같은 평화로운 농촌에 또 다시 송전탑이 세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송전탑이 세워진다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국가가 농촌마을에 송전탑을 세우는지는 잘 몰랐다. “송전탑 공사 현장에 올라가려고 다들 좁은 산길을 줄줄이 올라갔거든요. 근데 그것조차 몇 시간 동안이 나 막아서선 다들 화장실도 못 가고. 큰 분쟁이 있었던 날은 아니었고 어떻게 올라가긴 갔지만,‘왜 못 가 56


청년초록네트워크에서 진행한‘푸른하늘 국제포럼’(사진 : 안현진 제공)

게 하냐’ 라는 물음에 대답하지 못하는 경찰들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서울로 돌아와 기사를 작성 하는 중에 故 유한숙 씨의 음독자살 소식을 들었다.“밀양에서 노동자까지 포함해서 3명이 목숨을 잃었어 요.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쓰는 전기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문제 를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눈감아야 하는 건지, 도시와 공장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비수도권에 서, 전기를 만드는 곳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밀양에서 동아시아로, 청년에서 인류로 밀양 송전탑 투쟁에 함께하면서 안현진 당원은 녹색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지금은 밀양에서 모인 청년들과 함께 꾸린‘청년초록네트워크’ 라는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청년초록네트워크는 후쿠시마 핵발 전소 사고와 밀양 송전탑 공사를 바라보며‘탈핵’ 을 생각하게 된 한국의 청년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2013년 한-일 푸른하늘 공동행동’한국 측 기획단과‘밀양송전탑 전국대책회의 청년모임’ 을 전신으로 2014년 1월에 결성되었다. 현재 청년초록네트워크는 탈핵의제를 중심으로 활동 중이다. 올해는 지난 1월부터 시작된‘푸른하늘 프로젝트’ 를 통해 교육운동, 국제연대, 선언운동 등을 활발하고 펼치고 있다.“올해 8월 6일은 핵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지 70주년, 그러니까 인류 사회에 있어서 핵에 대한 피해를 경험한 지 70 주년이 되는 해에요. 하지만 엄청난 사상자를 낸 그 사건 이후에 인류가 어떤 성찰을 했나요. 쓰리마일, 체 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57


‘2015 푸른하늘 겨울캠프’(사진 : 안현진 제공)

르노빌, 후쿠시마 모두가 안전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안전하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어요. 보고 싶지 않을 뿐이죠. 맨하탄 프로젝트로부터 핵이 시작되었으니, 원폭 투하 7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핵이 없 는 푸른하늘을 바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해서‘푸른하늘 프로젝트’ 를 시작하게 됐어요.” ‘푸른하늘 프로젝트’ 는 지난 1월 청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태캠프인‘푸른하늘 겨울캠프’ 를 진행 하고, 지구적 탈핵을 선언하는‘푸른하늘 밀양선언’ ,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의 청년들이 모여 탈 핵운동과 국제연대의 방향을 모색한‘푸른하늘 국제포럼’ 을 이어왔다. 3월 11일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 4주기 추모행진을 개최했고, 5월부터

“핵에는 인격이 없어요. 북한의 핵은 나쁜 핵이고, 나가사키·히로시마의 핵은 광복 을 가져다준 착한 핵이냐는 거죠. 핵을 제

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피폭 2세들을 기 억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을 서울 시내 곳곳에 서 진행하고 있다.“저희의 입장은‘핵에는 인격이 없다’ 는 거예요. 누구의 말처럼 우리

어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전 지구적

를 위협하는 북한의 핵은 나쁜 핵이고, 나가

탈핵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사키·히로시마의 핵은 광복을 가져다준 착 한 핵이냐는 거죠. 오히려 지난 70년은 인간

과 핵의 전쟁이었다고 생각해요. 핵은‘어떤’인간을 사적으로 보호하는 무기고, 전쟁무기에서 산업무기 로 바뀌었을 뿐 언제나‘모든’인간에게 있어서는 존재의 문제였으니까요. 핵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해 결책은 전 지구적 탈핵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58


다른 환경운동단체와는 다르게 원폭 피해자와 피폭 2세에 관한 의제를 던진다는 점이 신선했다.“일단 피폭자 문제는 굉장히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있어요. 환경운동을 오래한 분들 도 잘 알지 못하시더라고요. 70년 전 원폭 투하로 인한 전체 피해자가 70만 명 정도인데 그 중 10퍼센트 가 강제로 징용·징병을 당하거나 도망을 갔던 한국인들이에요. 핵 피해다보니 피해자가 2대, 3대로 이어 지고 있고요. 현재 2만 3천여 명이 한국에 귀국해서 살아가고 있어요. 국가에서는 전체 피해규모도 제대 로 추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실태조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예요.” 안현진 당원은 방사능 없는 급식, 노후핵발전소, 송전탑 등 핵과 관련한 여러 문제들과 피폭자의 문제 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앞으로 발생하는 피폭의 문제들, 혹여나 모를 핵발전소 사고 시 재난관리의 측면에서도 제일 처음에 있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위안부 문제처럼 피폭 1세들의 문제도 묻히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사회적 시선 탓에 피폭자 스스로가 피폭 사실을 쉽게 드러낼 수 없 고, 한국에서 피폭자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영영 이 문제는 건드리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해요. 2세, 3세의 문제들도 함께 얘기해야죠.”2013년부터 원폭 피해자부터 피폭 3세까지 를 지원하는 법안이 매년 국회에 제출되고 있지만 계류 상태에 머물고 있다. 청년초록네트워크에서는 일 단 피폭자 문제를 알리는 것에 초점을 맞춰 관련 캠페인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청년세대의 탈핵운동, 함께 싸우고 있는 지금 이제 2년. 청년초록네트워크의 활동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든 운동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진행한‘푸른하늘 캠페인’(사진 : 안현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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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인 탓에 인력도 재정도 안정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안현진 당원은 지난 1년 동안 집행책임 자로서 많은 일을 맡아 성실히 해내고 있다. 한국에 수많은 환경운동단체들이 있지만 청년초록네트워크처럼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는 드 물다. 밀양에서의 특별한 경험도 이유였겠지만 왜 새롭게 단체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궁금했다.“기존의 녹색운동에서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단절됐고, 많은 기성세대는 생태적 전환에 대해 귀농을 말하며 도 시에서 단절됐다고 생각해요. 이미 여기서 살아가는 청년세대로서 이미 가동되고 있는 핵발전소와 비도 시를 수탈하는 전력구조를 직시하고,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체제를 고민 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청년세대에게 핵발전 문제가 가지는 여러 의미가 기성세대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쿠시마 사건을 청년기에 처음 들어오는 시기에 마주했어요. 자기 인생의 첫 핵사고고요. 특히나 사고 등급 7단계의 대형사고가 근접한 일본에서 발생했다는 것도 있고요. 세월호 참사가 세대에 따라 다른 감 수성과 의미를 지니듯 밀양과 후쿠시마를 보고 자랐던 청년세대의 감수성은 다른 것 같아요.” 안현진 당원은 무엇보다도 흩어져 있는 녹색청년들을 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모으고 기존 환경운동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청년세대만 해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환경운동, 탈핵 운동 뿐만이 아니라 사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일 건데 청년들이 없잖아요. 그런 공백이 있어요. 노동 쪽 은 알바노조나 청년유니온 등이라도 있지만 환경운동은 확실히 적죠. 청년을 이름에 내걸고 녹색이나 탈 핵을 내건 곳이 드물어요.”세대의 공백이 있는 자리에서 청년과 청소년을 구심으로 새로운 동력을 내보 겠다는 의지였다. 관련 활동들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는지 묻자 없는 것 같다고 말하다 종종 듣게 되는‘기특하다’ 라는 말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청소년과 청

“같이 옆에서 싸우고 있는데‘너희가 미래 다’ 라고 말하는 건 이상한 것 같아요. 같이 싸우고 있는 지금은 현재잖아요.”

년들이 이 운동에서 주역이 되고 활동을 하 고 있어요. 밀양에서도 가장 앞장서서 투쟁 하다 연행됐고요. 같이 활동하는 활동가는 미성년자일 때 8개 죄목으로 조사받고 구 속영장이 나왔어요. 같이 옆에서 싸우고 있

는데‘너희가 미래다’ 라고 말하는 건 이상한 것 같아요. 같이 싸우고 있는 지금은 현재잖아요.” ‘청년세대 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던 방금의 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읽히는 것 같았다. 안현진 당원은 최근 8월에 있을‘푸른하늘 여름캠프’준비로 바쁜 시절을 보내고 있다. 전국의 청소년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생태캠프로, 월성 원자력발전소, 합천 원폭 피해자 복지회관, 우포늪 물길을 막 는 합천보 등을 방문해 정해진 것만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벗어나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다는 컨셉이다. 캠프가 마무리 되는 날인 8월 6일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70주년을 맞아‘푸른하늘 퍼레이드’ 를 벌이고, 동아시아의 탈핵 청년들을 다시 모아‘푸른하늘 국제포럼’ 을 개최할 예정이다. 60


청년초록네트워크는 오늘 6월에는 핵발전소 예정부지인 영덕으로 떠나는‘2015 생태평화의 초록농 활’ 의 공동주최로도 참여한다.“청년초록네트워크를 결성한 사람들도 그렇고 계속해서 삼척, 밀양과 청도 등과 연대해왔어요. 긴급연대를 가기도 했고, 꾸준한 연대의 의미로서 초록농활로 연을 맺어왔고요. 올해 는 영덕과 청도로 떠나요. 푸른하늘 프로젝트와 동시에 새로운 투쟁이 필요한 곳에 함께할 계획입니다.”

당이 탈핵과 생태적 전환을 앞당기는 중심에 서기를 안현진 당원의 입당 계기 역시 밀양에서부터 시작됐다. 밀양에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청년당원들을 만 난 것을 계기로 2014년 입당해서 청년학생위원회 여성국장을 맡았다. 올해 1월에는 당직선거에서 청년학 생위원회 여성명부 대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세월호 투쟁과 지방선거, 총회 등으로 바쁘게 보내던 3기 청학위지만 마지막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건 반성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시작한 것을 제가 마무리짓고 싶었고, 여기서 시작을 한 만큼 청학위에서 끝까지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위원장에 출마했던 박기홍 당원이 다시 시작할 의지를 비춰줬고, 그래서 다른 당원들이랑 같이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출마를 했었죠.” 올해 새롭게 출발한 4기 청년학 생위원회는 월례 정치강연 등 다양 한 대중사업을 펼치며 활발히 움직 이고 있다. 현재는 이를 총화할 여 름사업인‘청년정치학교’ 와‘총회’ 를 기획중이다.“청년정치학교는 대중사업이었던 월례 정치강연의 맥락을 이어가는 사업이고요. 당의 청년들이 모여서, 당이 가지고 있 는 의제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면 서 당의 전망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장을 만들자는 맥락에서 기획되었 어요. 총회와 함께 개최되는 위상 으로요. 청학위가 작년 총회를 못 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61


열면서 현재 진보신당 시절의 회칙을 그대로 쓰고 있어요. 새롭게 노동당의 회칙으로 인준시킬 계획이고 요. 그간 2년간의 평가와 반성을 통해 전국의 많은 당원들이 모여 기탄없이 의견을 나누고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한편 녹색운동을 당에서 시작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냐고 물었다. 평범한 당원의 입장에선 당이 생태 주의를 지향하고 있지만 당 안에서 관련한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는 가시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사실 당 내에 생태주의라던가 녹색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고, 관심 있는 분들도, 활동 하고 계신 분도 많아요. 다만 모일 구심이 부족하고, 당 역시 그런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지 못하는 상 황이죠.”

“노동당은 생태정책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당이 말하려면 정책이 있어야 되죠. 최저임금 1만원처럼 노동당이 녹색으로 뭘 주장하는지 정책으로 나와야 해요.”

안현진 당원은 당원들이 당 내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생태운동에 참여하고, 또 당과 당 밖의 생태운동을 연결시킬 방법 에 대해서는 대중성을 지닌 정책과 이를 중심으로 한 적극적인 선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노동당은 생태정책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당이 말하려면 정책이 있어야 되죠. 노동에서의 최저임금 1만원처럼 노동당이 녹색 으로 뭘 주장하는지 정책으로 나와야 해요. 녹색당 같은 경우에는 완전한 탈핵과 에너지전환, 기본소득을 택하고, 또 잘 보여요. 우리 당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 안팎으로 생태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는 마지막으로 당이 탈핵과 생태적 전환을 앞당기는 중심에 서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올해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70주년, 내 년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주년을 맞아요. 삼척이 주민투표로 핵발전소 건설을 막아내고, 고리 핵발 전소가 국내 처음으로 폐로 단계에 접어들고 있지만, 이제 영덕에 핵발전소를 짓기 위한 압력이 집중될 확률이 높아요. 전국의 송전탑 투쟁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요. 내년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는 지금 당이 강 하게 탈핵과 생태적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대중운동을 펼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을 모아서 오는 여름, 남은 한 해 잘 헤쳐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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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또다시 힘들게 투쟁한다면 그때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는가? 노동르포

희망버스, 2011년에서 2015년으로

6월 11일 희망버스의 문화예술인 참가자들 (사진 : 서분숙)

청(소)년 진보정치 열전 63


노동르포

우리가 또다시 힘들게 투쟁한다면 그때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는가? 희망버스, 2011년에서 2015년으로 서분숙 기록 노동자

2011년 6월 11일, 한진중공업으로 간 희망버스 책장 맨 아래 칸에 수북이 쌓아둔 취재수첩을 한 권씩 한 권씩 열어본다. 대부분의 글은 현장에서 녹음한 녹취록을 되풀이해서 듣고 정리해서 쓰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현장에 가 면 꼭 취재수첩에 기록을 하는 습관이 있다. 들리는 모든 걸 기록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에 내 마음에 다가온 말이나 이야기들은 꼭 기록을 한다. 2015년 6월 6일에 부산으로 다시 희망버스가 온다는 소식을 듣던 날, 나는 4년 전 희망 버스가 부산 한진중공업에 처음 오던 그날의 기록을 찾아 수첩을 뒤적였다. 다행이다. 수첩 은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수첩 안에는 그날 내 마음을 움직였던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룻밤을 한진중공업 안에서 보내고 다음 날 아침에 공장을 떠나올 때, 남 편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함께 싸우던 아내들이 알록달록한 색깔의 양말을 선물로 내밀 었다. 그날 양말을 감싼 비닐포장지 안에 담겨 있던 편지글도 그대로 수첩에 담겨 있다. ‘당신을 통해서 희망을 봅니다. 희망의 버스에 용기를 싣고 오셔서 많은 힘을 얻었습니 다. 먼 길 선뜻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리해고 반대 가족 대책위 드립니다.’ 발뒤꿈치 부분이 꽃분홍색이었던 그 양말을 한동안 정말 잘 신고 다녔다. 2·3차 희망버 스가 다시 부산으로 떠나는 동안에도 줄곧 그 양말을 신고 버스에 오르곤 했다. 그날, 우리 들에게 양말을 건네주던 그 젊은 엄마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정리해고된 남편 의 복직을 위해 싸우는 친구를 대신해 친구의 아이를 돌봐주던 미혼의 친구들도 그날 한진 64


중공업 정문 앞 집회장에 함께 있었다. 회사를 지킨다며 공장 정문 앞에 서서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적개 심을 드러내던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해고된 동료들의 싸움을 막는 구사대들이었다. “동전의 양면 같아요.” 그날 공장 밖 도로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한 노동자는 그가 맞이한 지금의 모습이 꼭 동전의 양면 같다고 말했다. 공장 앞을 막고 있는 구사대들이나 공장 안의 노동자들이나 모두 똑같은 노동자인데 이렇게 서로 막혀 있는 모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나는 안타깝다는 게 어떤 심정이냐고 좀 더 깊숙 이 그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마음이 힘든 거죠. 바로 옆이잖아요. 저 사람들이나 우리들이나 조금만 깨닫고 보면 모두 바로 옆인데, 이렇게 서로 가로막혀 있다는 게 힘든 거죠.”한 몸이면서도 서로 마주볼 수 없는 동전의 양면. 나도 그랬다. 구사대처럼 회사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 아니었을 뿐, 그날 내가 그곳에 가기 전까지 무심히 침묵했던 세월은 해고노동자들에게는 그저 닿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뒷면의 동전과도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2011년 6월 11일 밤 11시 11분. 전국에서 온 희망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촛불행진을 마치고 막 한진중 공업 정문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정리해고 철회하라” “민주 노조 사수하자” “생존권을 지켜내자”천 여 명의 대열 속에서는 계속 구호가 터져 나왔다. 구호가 쉬는 사이사이“횡단보도 쪽으로 올라오세요” 라 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차들이 다니는 데 방해가 될까봐 그러는가 싶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횡단보도 쪽으로 달려가는 기색이 예사롭지가 않아 나도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횡단보도 쪽으로 달려갔 다. 가보니 한진중공업 공장 담의 안팎으로 철제 사다리가 세워져 있었다. ‘아, 저 담을 넘어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거구나’순간적으로 상황을 알아차렸지만 난감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나는 담을 넘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잠시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망설이는 사이 마음보다 빨리 움직인 건 몸이었다. 몸의 직감은 때로는 마음보다 더 정확하다. 생각보다 다리가 많 이 떨렸지만 여러 군데 사다리에서 함께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용기를 냈다. 마침내 나는 사 다리를 타고 담 위에 올라 공장 안으로 뛰어내렸다.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담을 넘어 공장 안 으로 들어왔다. 그날 밤, 전국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자정이 넘도록 집회를 했고 새벽이 오도 록 노래를 했다. 희망버스는 6월 11일에서 6월 12일로 이어지며 그렇게 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크레인 위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진숙이었다. 일하다가 잘못되면 뺨을 맞는 일이 허다했 던 공장에서 뺨을 맞고도 아무 저항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했다던 젊은 날의 그가 한진중공업에서 해 고된 세월이 2011년, 그해로 25년째였다. 열아홉 살 이후로 스스로 삶을 선택해서 살아본 적이 없다던 사 람. 삶을 선택할 겨를도 없이 그를 막는 억압을 헤쳐 나가기도 벅찬 삶이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외롭지 않음을, 우리가 정당한 것임을” “저들이 나를 버린다 해도 나는 저들을 버릴 수 없는 백 가지도 넘는 이유” “85호 크레인 대신 우리 조합원들을 기억해 달라.” 그날 크레인 위에서 들려오던 그의 말들은 아직도 내 취재수첩에 담겨 있다. 노동르포 65


2011년 그날로부터 4년이 지났다. 그날의 기록들을 담은 수첩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읽고 뒤에서부터 거꾸로도 읽어본다. 그날, 크레인 위의 김진숙이 간절히 했던 말 중 한 가지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되찾게 해주고 싶다” 는 말이었다. 누구나 해고당하지 않고 공 장에 다니고 생계를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그가 크레인 위에서 그토록 긴 날 동안 싸운 이유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지상의 사람들이 가장 간절히 바란 건 그의‘안전’ 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무사히 내려오기를. 그런 그들에게 희망버스는 일주일 단위로 기다리다가, 이틀 단위로 기 다리다가, 하루씩 지워가며 기다리다가, 열 시간씩 시간을 지우며 기다리다가, 희망버스가 오는 날이 점 점 가까워 오면서부터는 한 시간 단위로 기다리다가, 삼십분 단위로 기다리다가, 십 분씩 나눠서 기다리 다가, 나중에는 일 분씩 지우며 기다리다가, 하루 이틀 바짝 날짜가 다가올수록 일 초, 이 초를 애태우며 기다린‘희망’ 이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 공장 문을 돌아서 나올 때 누군가가 떠나는 이들에게 건넨 말도 수첩에 담겨 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은 여전히 간절하고 절박한 질문이다. “우리가 또다시 힘들게 투쟁한다면 그때도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겠습니까?”

2015년 6월, 부산 생탁막걸리, 한남택시로 향한 희망버스 해질 녘 아버지의 부름은 늘 양은 주전자를 손에 쥐어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색이 바래고 찌그러진 노 란 주전자를 들고 얼마나 걸어갔을까. 동굴 속처럼 좁고 거칠던 길을 걸어가면‘이북 집’ 이라고 불리던 가 게가 있었다. 동전 몇 닢이면 바가지로 쏟아붓듯이 주전자 한가득 막걸리를 담아주던 집. 막걸리를 들고 돌아오던 골목길은 여전히 좁고 거칠었다. 어둠마저 더 깊어져 버린 그 길에서 나는 어둠 속에 숨어 주전 자 뚜껑에 조금씩 부은 막걸리를 마셨다.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입안으로 퍼져갔다. 아버지에게 들 고 갈 막걸리를 조금씩 훔쳐 먹으며 걸어오던 유년의 골목길. 그 길에서 나는 조금씩 술맛을 알았고 어둠 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도 터득했다. 일찌감치 알아버린 막걸리 맛 때문인지 살면서 곧잘‘막걸리나 한잔하자’ 는 말을 흘리며 살았다. 막걸 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 기억과 기억 사이를 흘러 들어가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곤 했다. 막걸 리를 마시면서 강물처럼 흘려보낸 무거운 근심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내 아버지의 근심을 위로해준 것도 자식들이 아니라 주전자에 받아온 막걸리였을 것이다. 막걸리는 그런 술인 줄만 알았다. 위로가 되는 술,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술. 적어도 생탁막걸리를 만드는 노동자들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 생탁막걸리는 1970년에 부산에 있는 양조장 43곳이 모여서 만든 합동양조회사다. 장림과 연산 두 곳 에 제조장이 있고, 지금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장림 공장의 사장은 모두 25명이다. 장림 공장 노동자들 이 지난해 노동조합을 처음 만들 때는 노동자들 45명이 함께 조합을 만들고 파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지 금은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 중 9명이 남아 싸우고 있다. 66


6월 6일 희망버스 때 생탁막걸리 공장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 (사진 : 서분숙)

“우리가 며칠만 일을 안 하면, 막걸리 만드는 재료는 빨리 상하니까, 열흘 안에 다 끝난다, 그러고서 마 흔 다섯 명이 시작을 했어요. 교육 받고 교섭을 하고 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지난해 2014년 4월 25일에 파업을 들어갔어요. 파업을 했는데, 5월 8일 날 노조 지회장이 사측에 회유를 당해가지고 들어갔어요, 서 른 명이 같이. 그때만 안 들어갔어도, 그때 술 만드는 재료가 하나도 없었는데, 사장하고 사장 조카들하고 다 불러서 일해도 숙성해 놓은 막걸리만 빠져나가는 정도였는데, 그 사람들이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거지.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우리 노조가 요구했던 것, 월급 올려달라는 것 그런 걸 들어간 사람 들한테 다 해준 거야, 그리고 이때까지 교섭을 회피한 거지, 미루고. 그 사이에 한국노총 어용노총 만들어 가지고 교섭권하고 파업권하고 그쪽한테 다 가져가고, 우리한테는 다 넘어갔다 포기해라 그러는데, 이제 우리가 아홉 명 남았는데, 한 명 죽고 여덟 명 남았어요.” 2015년 6월 6일, 생탁막걸리와 한남택시 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가 부산에 왔다. 생탁막걸리 공장이 있는 연산구에서 열린 집회를 마치고 걸어서 도착한 부산시청 광장 앞에서 생탁 막걸리 공장의 노동자인 윤명희를 만났다. 명희 씨는 부산시청 광장 화단을 벽 삼아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은 곳 바로 위 전광탑 위에는 생탁 공장 노동자 송복남과 택시 노동자 심정보가 있다. 2015년 4월 16일 새벽 4시, 부산시청 앞 도로변에 위치한 높이 10여 미터의 옥외 전광판에 오른 지 오십여 일이 다 되었다. 땅위에서의 싸움에 한계를 느낄 때 즈음이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말라 죽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올라간 곳이었다. 한남택시 노동자들과 부산 생탁막걸리 노동자들은 1년 가까이 부산시청 광장에서 싸우다가 어 느새 이웃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처음엔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이었지만 1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다 보니 노동르포 67


생탁 공장 진덕진 조합원의 추모 걸게 (사진 : 서분숙)

공장은 달라도 노동자들 처지는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명희 씨 바로 앞에는 한 노동자의 영정사진이 현수막에 담겨져 걸려 있다.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내가 묻자 명희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질 못한다. “덕진이 이야기 할려면 눈물이 나서….” 진덕진. 겨우 쉰다섯 살의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이른 나 이다. 2009년에 입사한 그가 생탁 공장에서 한 일은 생산된 막걸리를 운반차에 싣는 일이었다. 2015년 5 월 7일. 그의 죽음은 희망버스가 도착하기 한 달 전에 일어났다. 심장마비였다. 1년 넘게 함께 싸우다가 어 느 날 갑자기, 너무나 급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이었다. 한 달에 하루 정도 휴일이 있을 뿐, 그렇게 일하고도 백 삼십여 만 원의 임금을 받았다. 휴일에는 수당이 없는 특근을 했다. 점심밥으로는 삶은 고구마나 달걀 이 나왔다. 임금명세서에는 잔업이나 휴일특근에 대한 어떤 수당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래서 최소한의 권리라도 찾아서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에 참가했다. 함께 싸우던 사람들 삼십 여 명이 파업한 지 며칠 만에 공장으로 돌아가 버리고 그 사람들이 또 하나의 노조를 만들었다.‘기업노 조’ 라고 불리는 노동조합을 만들고는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과는 아예 교섭이 이뤄지지 않았다. 쉰다섯 살이 넘는 촉탁직 노동자들은(생탁은 정규직 노동자들도 쉰다섯 살이 넘으면 자동으로 촉탁직 노동자로 전환한 다) 해고해 버리고 나머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일터로 복귀하라고 한 것이 벌써 여러 차례다. 정규직이

었던 명희 씨는 1년째 이어지는 이 싸움이 너무 힘들지만 결코 혼자서는 공장으로 돌아가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함께 싸우던 동료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장례식조차 지키지 못한 채 한 사람은 저 높은 전광탑 위 에 있다. 이 사람들이 다 함께 돌아가는 게 아니라면, 명희 씨는 결코 혼자서는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68


고 한다. “그냥 이렇게 놔 놓고 해고된 사람 두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가서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 자고 들어가겠어요. 다 같이 들어가면 들어가는 거고, 안 그러면 그냥 우리도 해고자 되고 말겠다 그랬죠. 1년 이상 싸워 놓고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그렇다고 들어가면서 우리가 요구조건을 다 받고 들어가는 것 도 아니고, 그냥 백기 들고 들어가는데 뭐 하러 들어가겠어요.”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길은 자꾸만 진덕진의 모습이 담긴 걸게 속 사진으로 간다. 사진 속에서 그는 희 미하게 웃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막걸리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속 시원하게 취하도 록 막걸리 한번 들이켜 보지도 않은 듯한, 조용하고 절제된 그의 웃음이 가슴을 누른다. 얼마나 힘들었으 면 그렇게 혼자 급하게 숨을 멈춰 버렸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스스로 숨조차 내쉬지도 못할 만큼 그렇 게, 정말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 몸이 굳어 버렸을까. 그래도 그에게는 혼자서는 절대 공장으로 돌아 가지는 않겠다는 동지들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죽는 날까지 함께했던 그를 기억하는 동지들의 소중한 약속이다.

희망 버스는 무죄다. 2015년 6월 11일은 첫 번째 희망버스가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출발한 지 꼭 4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은 희망버스의 첫출발을 함께 준비했던 송경동, 정진우, 박래군의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린 날이기도 하다, 부산 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는‘예술을 구속하지 말라’ 는 푯말이 나란히 함께 서있다. 희망 버스의 출발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표현이었다. 전국의 다양한 버스들이 부산으로 향하던 그 모습을 상상

부산 고등법원 앞에서 열린 희망버스 참가자 사법처리 항의 기자회견 (사진 : 서분숙)

노동르포 69


해 보라. 희망버스는 바람이며 강물이며 노래며 춤이었다. 벌금형과 집행유예의 선고가 내려지던 순간, 법정은 소란스러워졌다. 법이 심판할 일이 아닌 곳에 유죄판결을 내린 데 대한 항의였다. 송경동 시인은 이 날의 판결을 두고‘역사는 희망버스를 무죄라고 판결할 것’ 이라고 했다. 4년 만에 다시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왔다. 희망보다는 여전히 아픔이 많은 날들이다. 목이 쉬어 버린 생탁 노동자 송복남은 말을 잇기가 힘들다. 한남택시 노동자 심정보는 말을 할 수 없는 송복남의 몫까지 대신해서 말을 하고 싶다. 이 두 곳 사업장은 모두 기업노조가 들어선 곳이다.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속한 노동조합은 기업노조에 비한다면 소수노조이다. 한 공장안에 노동조합이 두 개가 있는 복수노조이 다 보니 힘이 약한 노동조합은 교섭권조차도 얻기 힘들다. 택시 노동자들은 전액관리제1)와 부가세 경감 분2)을 노동자들에게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싸우는 중이다. 너무 오래된 싸움이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다. 부산시청 광장에서 만난 한남택시 노동자는 택시 노동자들의 현실을 벼랑 끝이라고 표현한다. 노 동자들에게서 이미 너무 자주 들었던 말이다. 긴 싸움으로 인해 가장 힘든 부분은 경제적인 고통이지만 이대로 현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고통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만 하는 절박한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새도 아닌데, 그곳이 집도 아닌데, 자꾸 만 사람들이 하늘로 오른다. 어찌할 것인가. 부산시청 앞 전광판에 오른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불어온다. 그 목소리를 듣는 누군가의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곳에 올라올 때는 다른 사업장들과 함께 승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가 이곳에 올라온 건 하나의 요구조건 때문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은 하나라는 걸, 그걸 꼭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꼭 이 기고 내려가겠습니다.”

이제 곧 장마가 시작될 것이다. 다시 희망을 불러야 할 때다.

1) 전액관리제란 택시기사가 운송수입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정해진 월급을 받도록 하는 제도로, 1997년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택시업계는 매일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나머지 수입을 기사가 가져가도록 하는 사납금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제껏 전액관리제를 위반한 사업장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출처 : http://blog.daum.net/tjca/551) 2)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옛 조세특례제한법은 특정 기간 택시회사의 부가세 납부액을 90% 경감하도록 규정했다. 아울 러 부가세 경감분을 택시기사의 처우개선과 복지향상을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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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포럼

평창 동계올림픽, * 분산개최가 정답이다 산림보전 역사의 오점으로 남지 않으려면 이현정 녹색위원원회(준) 위원장, (주)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건설이 불러올 산림파편화 평창 동계올림픽이 반환경올림픽으로 불리우며 수년간 논란을 이어 온 가장 주된 원인은 가리왕산 알파인 활강경기장 건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국토의 3분의 2에 달하지 만, 대부분 조림지로 자연림이 드물기 때문에 산림청과 지자체에서는 원시림, 희귀식물 자 생지 등을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은 일체 의 개발이 불가능함은 물론 그 지역에서 나온 산물을 절취하는 것만으로도 산림보호법에 따 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엄격한 규제를 받는 지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 3일의 스키경기를 위해 유전자원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500년 원시림을 파괴하는 결정을 내린 일은 우리나라의 산림보전 역사에서 매우 큰 사건이라 하겠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은 모두 지정하는 데 각각의 이유가 있으며 그만큼 각자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알파인 활강경기장 건설 대상지에 포함된 보호구역은 보전의 필요성이 유독 높은 곳이다. 2012년 기준으로 지자체 지정 보호구역이 83개소, 산림청 지정 보호구역이 295개소로 총 378개소의 보호구역이 지정되었는데, 이 중 가리왕산의 알파인 활강경기장 예정지가 포함된 보호구역은 이 378개소 중 아홉 번째로 면적이 넓은 보호구역 에 해당한다. 가리왕산보다 넓은 면적을 가진 보호구역은 고성, 양구, 인제, 철원, 화천, 홍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6월 18일 노동당 강원도당이 주최한 <2018 동계올림픽 분산개최를 촉구하는 강릉시민 토론 회 - 동계올림픽과 삼시세끼>에서 발표한 토론문입니다. 토론회 전체 자료집은 노동당 홈페이지, 노동당 → 정책 → 정책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책포럼 71


가리왕산 알파인 활강경기장 벌목공사 현장. 공사가 시작되기 불과 몇 달 전까지 이 지역은 나물을 채취하는 것만으로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사진 : 박용훈)

천 등 대부분이 DMZ 일원에 분포하고 있으니, DMZ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보호구역들 중에는 한 손 안 에 꼽힐 정도의 규모라 하겠다. 여기서 보호구역의 면적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이유로 발생하는 산림파편화(forest fragmentation)가 생물종다양성(biodiversity)에 가장 큰 위협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의 해제는 해제된 면적이나 훼손되는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준변의 숲과 생태계 전체 에 영향을 미친다.

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면적 이상의 숲이 훼손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전될 필요가 있는데, 숲 의 면적이 작아질수록 그 숲에서 서식할 수 있는 생물종의 수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따 라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의 해제는 해제

된 면적이나 훼손되는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숲과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보다 큰 문제는 토양과 수체계의 영구적인 변화 조직위는 대회 이후 산림생태를 전면 복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가리왕산에 대한 엄격한 산림생태계 복원계획을 수립한 뒤 환경부의 검증을 받고 경기장을 착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조 직위는 복원계획의 수립 없이 공사를 강행했다. 게다가 조직위와 강원도는‘자연천이(natural 72


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사실상 복원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자연천이는 산불과 같이 비구 succession)’ 조적이거나 자연적인 교란이 발생했을 때, 자연의 회복 능력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복원되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발생한 고성의 산불이 3762헥타르의 산림을 휩쓸고 난 후 국유림지 역에 인공조림지와 자연복원지를 나누어 장기 모니터링을 하면서 자연천이의 효과를 검증한 바 있다. 인 공조림지에 비해 자연복원지에 훨씬 다양한 식생이 자리 잡고, 복원 속도도 빠른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복원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비유가 아닌 단어 그대로의‘맹아’ 가 나올 수 있는 환경 이 유지되어야 한다. 다시 말 해, 식생을 키우는 땅과 물의 체계가 온전해야 한다. 산불의

자연복원의 전제는‘맹아’ 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다. 대규

경우는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모의 토목공사와 인공눈 유지를 위한 화학물질의 다량 살

전부 태워 없앴지만 지하에는

포가 이루어질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부지에 자연복원을

깊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땅에서 잠자고 있던 씨앗이나 뿌리로부터 새로운 싹을 틔우고, 타버린 잿더미로 부터 충분한 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리왕산 활강경기 장 부지에 이러한 자연복원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방치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슬로 프 조성과 리프트 건설을 위해 대규모의 절·성토 등 토목공 사가 수반될 수밖에 없고, 90 여 대의 제설기가 만들어낸 인 공눈의 설질을 유지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다량 살포하는 등 활강경기장 건설지역 뿐 아니 라 주변 산지의 토양과 지하수 체계, 나아가 생태계에까지 돌 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 이기 때문이다.

[그림1]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건설대상지(Google Earth)(위) [그림2] 무주리조트 슬로프 전경(Google Earth)(아래)

정책포럼 73


분산개최가 답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는 매몰비용과 공정률을 무기삼아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책임질 수 없 는 사업을 강행 중이다. 벌목 공정률이 90%에 달했지만, 이러한 영구적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아 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이미 투자된 비용

벌목 공정률이 90%에 달했지만, 가리왕산 의 영구적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분산개최다.

은 향후 투자가 예정된 비용이나 추가적으 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에 비하면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분산개최는 국가재정 낭비, 지방재정 파탄과 대규모 환경파괴를 막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미 시민사회에

서 다양한 분산개최 방안을 제시해왔고, 국민의 57%가 분산개최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가장 현실적으로 활강경기장의 대체지로 얘기되고 있는 곳은 무주리조트이다. 다음 [그림1]과 [그림2] 는 가리왕산 건설대상지의 지형과 무주리조트의 지형을 보여준다. 무주스키장은 표고차가 809미터로 825미터인 가리왕산에 근접해, 기존 시설을 보완하면 국제스키연 맹의 기준인 855미터에 맞출 수 있다. IOC 또한 일본과의 분산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아래 [그림3]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주 스 키장으로 사용했던 하쿠바 핫포네 스키장의 모습이다. 이 스키장의 경우는 해발고도 3000미터에 근접하

[그림3] 일본 나가노 올림픽 하쿠바 핫포네 스키장 슬로프 전경(Googl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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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북한 마식령 스키장 전경(Google Earth)

는 산줄기의 정상부위가 아니라 거주지와 가까운 산자락에 스키장을 건설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문순 도지사의 북한 공동개최 발언과 일부 단체의 언급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 북한 마 식령 스키장의 전경은 다음 [그림4]와 같다. 정확한 제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도와 슬로프 등을 보면 알파인 활강경기 적용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기회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강원도민들과 많은 관계자들이 해온 노력들 그 자체를 폄훼할 생각 은 없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두 번째 국가가 된 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경 제적으로 성장해왔고, 국제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연환경 조건 면에서 동계올림픽 개최에 적합한 나라가 아시아 국가들 중에 그만큼 많지 않기 때 문이다. 알프스 산맥 주변의 기존 개최국가들은 물론 일본 나가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훨씬 많은 투자 와 환경파괴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늦기 전에 나가노 등 기존 유치지역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유럽 도시들의 유치의사 철회가 이어지는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분산개최 없이 모든 건설 사업을 강행할 때 에는 빚잔치와 함께 가리왕산의 환경도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 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책포럼 75


논평을 논평하다

국회법 개정안, 청와대의 결정은? 황종섭 언론국장

[2015년 6월 1일 노동당 대변인실 논평]

청와대는 이참에 입법까지 도맡겠다고 선언하라 박근혜 행정부는 삼권분립 운운하지 말고, 차라리 입법까지 도맡겠다고 선언하라. 국회의 입법취지에 어긋나 는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 요구도 못 하는 입법부는 있을 필요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 받아들일 수 없 다” 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대통령과 여당의 뜻이 다를 수 없다” 며 맞장구를 쳤다.

한국의 행정부와 입법부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은 독재체제를 거치면서 압도적인 행정부 우위의 정치체제를 물려받았다. 현재 한국의 입법부는 오히려 너무‘행정부 프랜들리’ 해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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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은 입법부가 집행은 행정부가 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요체임에도, 한국의 행정부는 매년‘입법계획’ 을낸 다.‘법률안 제출계획’ 이 맞는 표현임에도 입법부에서조차 문제제기가 없다.

게다가 이번 공무원연금 개편 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청와대는 국회 논의 시기는 물론 내용까지 가이드라인 을 제시한다. 그러다보니 입법부의 의제 선정과 시계가 행정부에 맞춰지는 일이 다반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운운하는 것은 입법부를 무력화하고 행정부가 입 법까지 다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다. 그럴 생각이라면 부디 삼권분립은 입에 올리지 말아달라.

국회법 개정안, 무엇이 다를까? 5월 29일 새벽 3시 50분경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정치권은 공무원연금 법 개정안을 두고 150여 일간 공방을 벌여왔습니다. 본회의 당일에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 와 불발을 거듭하며, 약 17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최종안을 마련했습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싼 국회와 청와대의 갈등에 대해 보도한 YTN 보도화면

논평을 논평하다 77


그런데 문제는 엉뚱한 데서 터졌습니다. 이날 처리된 66개 안건 중에 껴있던 국회법 개정안이 그 주인 공입니다.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국회법 제98조의2(대통령령등의 제출등) 3항과 4항을 [표1] 과 같이 개정한다는 내용입니다. [표1] 국회법 개정안 신구대조표 현

개 정 안

제98조의2(대통령령등의 제출등)

제98조의2(대통령령등의 제출등)

①·② (생 략)

①·② (현행과 같음)

③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

③ 상임위원회는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제출한

적으로 개회하여 그 소관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입법이 법률의 취

통령령·총리령 및 부령(이하 이 조에서“대통령령

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한다고 판단되는 경

등” 이라 한다)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여부등을 검

우 소관 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수정·변경을 요구

토하여 당해대통령령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수정·변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관중앙

경 요구 받은 사항을 처리하고 그 결과를 소관상임

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 이

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통보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상임위원회 에 보고하여야 한다. ④ 전문위원은 제3항의 규정에 의한 대통령령등을

④ ----------------------------

검토하여 그 결과를 당해위원회위원에게 제공한다.

대통령령·총리령·부령등행정입법 --------

제98조의2(대통령령등의 제출등)

------------------------------.

한마디로 국회가 만든 법과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만든 행정입법이 충돌할 때, 국회 상임위원회가 해당 기관장에게 행정입법의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개정한다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는 통보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 시행령으로 인해 법률이 무력화되는 경우도 발생해왔습니 다. 대표적인 것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입니다.

청와대의 반발, 그 진짜 이유는?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법원의 심사권과 행정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 으로, 헌법상의 권력 분립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국가 재정이 어 려운 이 시점에 정파적인 이익을 논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주는 것” 이 라며 횡설수설했습니다. 다시 봐도 뒤에 덧붙인 발언은 국회법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78


법학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공법학자 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2.6%(38명)가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왜냐하면‘법률 내용이나 취지에 위배되 는 대통령령 등은 그 자체로 위법성을 가지므로 위법성이 있는 대통령령 등에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 은 당연하기 때문’ (15명, 39.4%)이고,‘입법권은 국회에 존속된 권한으로 헌법 제75조에서 규정한 행정입 법은 국회에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정할 수 없어 행정부에 위임한 것이기 때문’ (10명, 26.3%)입니다. 상 식적인 판단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국회가 무슨 법을 만들든 행정부는 행정입법을 통해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국회가 대통령령 등에 대해 수정 요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니 청와대가 깜짝 놀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청와대의 모습과는 달리 매우 발빠르게 국회법 개정안에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어 울리지도 않는 삼권분립 운운하며 횡설수설한 이유입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국회 통과 보름 만에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됐습니다. 새정치민주 연합이 정의화 국회의장의 수정안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수정안은 개정안의‘수정·변경 요구’ 를‘수정 ·변경 요청’ 으로‘톤 다운’ 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청와대는 이 조항이 강제성이 있다고 보고 거부권 카드를 만지작거립니다.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어갔습니다.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테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거부권 행사 즉시 재의에 들어가자고 요구할 것입니다. 과연 청와대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요?

■참 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회법 개정안 위헌 논란에 대한 공법학자 설문조사 결과>, 2015. 6. 15.

논평을 논평하다 79


지역에서 현장에서

지역문제 해결, 보다 깊이 보다 다양하게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를 촉구하는 강릉시민 토론회 후기 김강호 영동당협 위원장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그나마 강릉에서 올림픽이라도 한다면 사람들도 많이 올 거고, 서울까지 전철 도 놓이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지 않겠어요?” “2002년에 부산 아시안게임도 그렇고, 2014년 인천은 부채만 잔뜩 늘어 오히려 인천시민들 생활이 더 고단해진 것 같은데요.” “아, 그래도 뭐라도 좋아지겠지요!”

강릉·원주 간 복선전철 공사로 새로운 역사가 들어설 때까지 강릉역이 없어져도, 그래서 철도 이용이 불편해도, 이로 인한 부동산 기대심리로 아파트 분양가가 치솟아도,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무언가 좋은 일 이 있을 것 같은, 아니 있어야만 하는 강릉시민들의 절박함이 택시를 타거나 음식점 옆자리에서 늘 묻어 나는 요즘이다. 이런 이유로, 영동당협은‘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를 촉구하는 강릉시민 토론회’ 를 열기로 했다. 작년 9월의‘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초청 강연회’이후 영동당협이 조금 큰 규모로 준비하는 두 번째 사업이었다. 동계올림픽이 지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더불어 지역의 환경과 생태에 어떤 영 향을 주고 있는지, 이번 토론회에서 속속들이 밝히고 알리고 싶었다. 이리하여 토론회의 제목도 <동계올 림픽과 삼시세끼>로 정했다. 요즘 화제가 되는 예능프로그램《삼시세끼》 의 후광도 살짝 기대하면서.

더 늦기 전에! 지난 5월 15일, 노동당은 평창 동계올림픽 D-1000일을 즈음하여 <反경제올림픽, 反환경올림픽 D80


1000일, 더 늦기 전에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를 추진하자>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잠시 잦아들었던 올 림픽 분산개최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물 건너간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아직 늦지 않았음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특히, 이미 벌목이 시작된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에 대해“하지만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니다. 가리왕 산 활강경기장의 경우 벌목 공정률이 높다고 해도 구조적이고 영구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공정은 아직 시 작되지 않았다. 또한 이미 투자된 비용은 향후 투자 예정 비용이나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에 비 하면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고 밝히며, 즉각적인 분산개최 수용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하루 뒤인 5월 16일, 당협위원장 워크샵 시작 전에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네 사람이 만났다. 사 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조동진 정책기획실장까지 다섯 명이라고 해야겠다. 정규석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장, 이현정 ㈜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이건수 강원도당 위원장, 김강호 영동당협 위원장이 드디어 자 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모두 노동당원이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역에서 개최지역의 시민들이 분산개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강릉 시민 사회는 이미 분산개최는 힘들다고 보고 올림픽 이후를 준비하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을 치른 후 드러날 지역문제들을 고민하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당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만 더 늦기 전에 동계올림픽의 전체적인 문제점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분산개최를 지금이라도 결단해야 함을 요구하는 실 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여러 면을 고려할 때, 강릉에서 분산개최 촉구 시민 토론회와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앙당과 강원도당 영동당협이 긴밀하게 협조하여 진행하는 노동당 단독 행사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동계올림픽과 삼시세끼>는 시작되었다.

토론회 전에‘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 추진’ 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릉에서 열린 노동당 첫 단독 기자회견이었다. (사진 : 노동당 영동당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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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보다 주민 삶의 질 개선이 먼저다 6월 18일 오후 한 시 삼십 분. 오랜 가뭄에 신음하던 강릉에 단비가 내렸다. 강릉시청 앞 야외에서 하기 로 했던 기자회견을 급하게 청사 내 프레스센터로 옮겼다.‘기자들이 얼마나 와줄까, 방송국 카메라는 올 까?’당대표가 참석하는 기자회견이지만 강릉에서의 노동당 단독 기자회견은 처음이기도 했고,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우리의 존재감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었다. 다행히 방송국 카메라와 신문기자들, 동계올림픽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이마리오 감독의 촬영 팀까지, 제법 모양을 갖춘 기자회견이 이루어졌다. 이제야 한 숨 돌렸다 싶으면서 동시에 조금은 으쓱해 지는 기분까지 들었다. 주제만 잘 잡으면 노동당 단독 기자회견도 가능함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우리는“박근혜 정부가 대선공약인 누리과정 무상보육 예산을 책임지지 못해, 우리 강원도교육청을 비롯해 모든 시도교육청이 지방채 1조 원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메르스 치 료거점병원인 강원대병원은 음압병상이 없고, 국가지정격리병원인 강릉의료원의 격리병동에는 혈액을 밖으로 뽑아서 산소공급을 해주는 장치조차 없습니다.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투자해야 할 곳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라며 분산개최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는 강릉지역 시민사회단체, 노조대표들과 함께 동계올림픽과 메르스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노동당이 강릉지역의 시민사회와 긴밀한 협조를 통하여 합리적 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였다.

反경제올림픽 反환경올림픽이 될 평창 동계올림픽, 이대로는 안 된다 오후 4시, 강릉 녹색도시체험센터에서 드디어 <동계올림픽과 삼시세끼>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기자회견 후 강릉 시민사회단체, 노조대표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어 동계올림픽과 메르스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사진 : 노동당 영동당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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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론회의 홍보는 그야말로‘역대급’ 이었다. 열 개만 붙여도 볼 사람은 다 본다는 거리에 현수막 스무 개를 설치했고, 웬만해서는 안 하는 신문 간지 홍보도 했다. 그 외에도 웹 포스터, 보도자료, 초청장 등 총력을 기울였지만 메르스 여파 등으로 많은 시민들의 참석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중에도 참석해주신 당원들 덕에 무사히 토론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정규석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발제문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의 문제점을 적시했다.“우선 재정문 제가 심각하다. 올림픽 개최 이후 막대한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예와 지금껏 국내에서 치러진 국제스포츠행사의 악수를 평창올림픽은 반복하고 있다. 계획 대비 증가하고 있는 사업예산은 결 국 시민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환경훼손의 대표사 례로 기록될 참이다. 자연림 자체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수백 년 간 국가가 나서 보호해온 가리왕산 을 파괴해 일회용 스키장을 짓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극이다. 더욱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경제올림픽, 환경올림픽을 표방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조동진 정책기획실장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문제점을 지적했다.“중앙정부와 강원 도, 기초자치단체들이 올림픽 관련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한 만큼, 교육·복지·문화 등에 투자할 기 회가 사라진 것이다. 정부가 누리과정 무상보육 예산을 부담하지 않아 강원도교육청 등은 총 1조 원 가량 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한다. 메르스가 대유행인 가운데 강원도의 국가지정거점병원인 강원대병원은 음압 병상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계속해서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메가 이벤트를 열고 있지만 잔치는 잠깐이고 고통은 오래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현정 (주)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은“우리나라의 경우는 알프스산맥 주변에 있는 기존의 개최국 가들은 물론 일본 나가노와 비교해도 훨씬 많은 투자와 환경파괴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분산개 최 없이 모든 건설사업을 강행할 경우 빚잔치와 함께 가리왕산의 환경도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며 간절하 게 분산개최를 호소했다. 뒤를 이은 질의응답 시간에는 건설 노동자들의 일자리 창출에 동계올림픽이 기여하는 부분에 대한 지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전체적인 지역경제의 활성화 속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일 수 있다는 의견 교 환이 이루어졌다.

당의 형편이 힘들 때인데도 중앙당과 도당, 당협이 힘을 모아 해낼 수 있었던 행사였다. 우리에게는 지 역문제에 보다 깊이 결합하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문제제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으로서 의 보다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고민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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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석유의 장기 지배에 마침표를 캐나다 앨버타 주 선거 장석준 기관지위원

올해는 유독 여러 나라에 굵직굵직한 선거가 많다. 최근 몇 주만 봐도 그렇다. 5월 24일 스페인에서 지방선거가 있었다. 며칠 뒤인 6월 7일에는 터키가 총선을 치렀다. 스페인에서 는 포데모스를 비롯한 여러 좌파 세력들이 결성한 선거연합이 양대 도시, 마드리드와 바르 셀로나에서 집권에 성공했다. 터키에서는 피억압 소수민족 쿠르드인들과 좌파,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신생 좌파정당 인민민주당(HDP)이 단번에 10% 넘게 득표하며 주요 야당으로 부상했다. 지중해 서쪽 끝과 동쪽 끝에서 모두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이 두 선거 소식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대륙에서도 비슷한 돌풍이 불 었다. 5월 5일에 캐나다의 앨버타 주는 주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캐나다는 중앙정부뿐만 아 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내각책임제를 따른다. 주의회 다수당이 주정부를 구성하고, 다수당 대표가 주지사(정확히는 주총리) 역할을 맡는다. 이번 선거는, 미국식으로 표현하면 앨버타 주지사 선거였던 셈이다. 그런데 선거 결과가 놀라웠다. 앨버타에서는 지난 44년 동안 쭉‘앨버타 진보보수연합’ (참 요상한 이름인데, 성격은 그냥‘보수당’ 이다)이 여당이었다. 그 전에도 이 주에서는 비슷한

성격의 보수정당들이 장기 집권했다. 그래서 앨버타는 캐나다에서 흔히 보수의 아성으로 통한다. 오죽 하면‘캐나다의 텍사스’ 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 역사가 올해로 끝나고 말았 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NDP)이 40.57%를 득표하며 집 권당이 됐기 때문이다(총 87석 중 54석 - 소선거구제라서 득표율과 의석이 비례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민주당이 지난 2012년 선거에서는 9.82%를 득표하며 4석을 차지하 84


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신민주당이 이미 집권한 바 있는 온타리오 주 등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앨버 타에서 이 당은 만년 소수정당에 불 과했던 것이다. 한데 불과 3년만에

신민주당 로고

주의회에서 안정 다수를 확보한 강 력한 집권당으로 도약했다. 어떻게 이런 약진이 가능했을까?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걸은 캐나다 그리고 NDP 앨버타의 정치 격변을 살피기 전에 먼저 짚어볼 게 있다. 캐나다의 정치 지형과 신민주당의 역사다. 캐 나다는 이웃 나라 미국과 마찬가지로 각급 선거의 선출 방식이 다 소선거구제다. 신생정당이 기존 거대정 당들의 틈을 비집고 성장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따라서 캐나다의 정치 지형도 미국과 같은 양대 보수 정당 독점 체제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그래왔다. 보수당(앨버타의 지역정당인 진보보 수연합과는 다른 정당이며 미국의 공화당에 가깝다)과 자유당(미국의 민주당 격)이 정치권을 양분해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게 있다. 미국은 양대 보수정당의 지배가 철옹성인 데 반해 캐나다는 그 렇지 않다. 캐나다의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는 수십 년 전부터 조금씩 균열을 보였다. 그 균열의 한 쪽 출발점은 퀘벡 주다. 프랑스어 사용 인구가 다수 거주하는 퀘벡 주에서는 1960년대부터 좌파 성향의 분리 주의 세력이 급성장했다. 그래서 이제 퀘벡에서는 영어 사용 인구가 주도하는 중앙정치의 정당 구도가 먹 히지 않는다. 균열의 또 다른 출발점은 전국적인 제3당 신민주당의 등장이다. 비록 당명은 우파인지 좌파인지 헷갈 리지만, 신민주당은 영국 노동당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적 지지에 바탕을 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이 당이 등장하고 성장한 것이야말로 캐나다 현대사가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실은 그 전에도 캐나다에는 여러 좌파정당들이 있었다.‘노동당’ 이라는 정당도 있었고, 진보적 성격의 농민정당도 있었다. 대공황 직후인 1932년에는 이들 정당이‘협동공화연맹[노동-농민-사회주의](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Farmer-Labour-Socialist], CCF)’ 라는 독특한 이름의 새 정당으로

통합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지지 기반이 뉴딜을 계기로 민주당에 흡수된 데 반해 캐나다에서는 협동공화연맹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좌파 독자정당 노선을 꿋꿋이 견지했다 (1945년 총선에서 총 245석 중 28석을 획득한 게 최대 의석이었다).

이 협동공화연맹이 확대 재창당한 게 바로 지금의 신민주당이다. 1961년에 노총인‘캐나다 노동회의 (Canadian Labour Congress, CLC)’ 가 정당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하면서 협동공화연맹과 노동회의는

새 정당, 신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이렇게 노총이 적극 합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민주당은 중앙정치 무대 먼 좌파 이웃 좌파 85


신민주당의 전신인 협동공화연맹의 포스터

에서는 여전히 소수정당이었다. 협동공화연맹 시절과 마찬가지로 연방의회에서 수십 년 동안 전체 의석 의 10% 수준을 맴돌았다. 하지만 신민주당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주정부 수준의 지역정치를 중요한 돌파구로 삼았다. 그 최초이자 대표적인 사례가 창당 주역 토미 더글러스(초대 대표)가 이끈 서스캐처원 주정부였다. 서스캐 처원 주의 신민주당 정부는 1962년에 북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전 주민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이에 반대하 며 의사 파업까지 벌어졌지만, 주정부는 공공의료보험제도를 당당히 관철시켰다. 이를 계기로 결국 1970 년대에 캐나다 전체에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됐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는 전혀 다른 캐나다 공공의료 체계의 탄생사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바로 신민주당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 에도 얼핏 이 내용이 나온다. 책으로는 데이브 마고쉬가 쓴 토미 더글러스의 전기《또 다른 사회는 가 능하다 :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 [김주연 옮김, 낮은산, 2012)]가 있다.)

이런 오랜 노력은 2011년 총선에서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 속에 실시된 이 선거에서 신민주당은 총 308석 중 103석을 획득하며 자유당을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했다. 보수당-자유 당의 양당 구도가 깨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후 자유당이 다시 지지율을 늘려 현재는 보수당, 자유당, 신민주당이 여론조사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신민주당이 1위를 기 록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 당의 성장은 어느 정도‘돌이킬 수 없는’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올해 10월에 있을 캐나다 총선 결과가 주목된다. 86


물론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 들과 마찬가지로 신민주당도 요즘 많은 비판을 받는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 수세적 입장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온타리오 주 등에 서 집권했을 때는 이 당을 지지한 사회운동 세력에게 큰 실망을 안 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어 려운 제도 여건 속에서도 반백년 의 노력 끝에 보수정당 독점 체제 를 보수 대 진보 구도로 바꿔낸 것 은 놀라운 성취임에 분명하다. 비 슷한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는 더 욱 그러하다.

신민주당 창당의 주역이자 캐나다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의 선구자 토미 더글러스

앨버타 선거, 보수-석유 카르텔에 맞선 승리 다시 앨버타 선거로 돌아가자. 앨버타가‘캐나다의 텍사스’ 라 불린다고 했는데, 이는 단지 보수정당의 거점이어서만은 아니다. 앨버타는 텍사스처럼 석유산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스와 오일샌드(원유를 10% 이상 함유한 지질층으로서, 다량의 물을 분사해 석유를 추출한다)의 매장지다. 이들 천연자원을 채굴하는

에너지 기업들이 앨버타 경제를 좌우한다. 보수정당의 장기 집권과 석유기업들의 경제적 지배, 이것이 이 제껏 앨버타 주를 이끌어온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은“석유 경제의 성장 = 앨버타의 발전” 이 대다수 주민들의 상식이었다. 덕분에 보 수-석유 카르텔은 별 도전 없이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상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 다. 앨버타도 북아메리카의 다른 지역들처럼 2008년 금융 위기로 타격을 입었다. 금융 위기 이후에는 국 제원유가가 하락했다. 석유산업에 의존해온 앨버타 경제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더구나 그간 석유 기업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앨버타 주는 캐나다에서 법인세가 가장 낮았다. 가뜩이나 세원이 제한되어 있 는데 석유산업 경기마저 추락하니 당장 재정 위기가 닥쳤다. 2009년 주정부는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50 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과 함께 앨버타 주민들의‘석유경제 신화’ 도 붕괴했다. 석유 덕분에 잘 사는 게 아니라 (제3세 계 산유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앨버타의 경제와 사람들의 삶이 왜곡돼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오일

샌드에서 원유를 추출하기 위해 토양과 수질을 엄청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게 됐다. 그런 먼 좌파 이웃 좌파 87


데도 진보보수연합은 이제껏 해오던 대로 석유기업들의 눈치만 봤다. 사람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앨버타 주에서 만년 소수정당이던 신민주당이 감히 그 대안의 역할을 떠맡고 나섰다. 사실 1961년에 신민주당 창당대회가 열린 곳은 앨버타에 속한 도시 캘거리다. 하지만 보수정당의 텃세 때문에 앨버타는 한동안 신민주당의 성장과는 인연이 먼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새로운 인물이 주당(州黨) 대표로 선출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변호사 출신의 여성 정치인 레이첼 노틀리(1964년생)가 그 주인공이다. 앨 버타에서 신민주당 조직을 처음 만드는 데 앞장선 고(故) 그랜트 노틀리의 딸인 레이첼은 70%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주당 내 세대교체를 성공시켰다. 신임 대표를 얼굴로 내세운 신민주당은 앨버타에 필요한 새 정치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이번 선거에서 앨버트 주 신민주당은 보수-석유 카르텔을 정면 공격하는 정책들을 핵심 공약으로 내 세웠다. 석유산업과 그 수혜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복지를 확대하고, 석유기업들을 규제해 기후변 화 대응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법인세를 10%에서 12%로 인상한다. - 고소득자와 부유층에 누진세를 부과한다. - 석유 및 천연가스 기업들의 유전 사용료 인상을 검토한다. - 2018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한다. - 미국과 연결된 천연가스 수송관의 증설에 반대한다. - 오일샌드의 원유 추출로 인한 환경오염을 중단하고 원상회복시킨다.

앨버타 주 총리로 당선된 신민주당의 레이첼 노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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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한다. - 공공운수에 적용할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 보건, 교육, 사회복지 지출을 늘린다.

보수-석유 지배 체제에 실망한 민심은 신민주당의 이런 공약에서 대안을 발견했다. 이것이 신민주당 의 득표율이 네 배 이상 늘어난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혹자는 진보보수연합 으로부터 이탈한 표심이 또 다른 우파 지역정당 들장미당(Wildrose Party)으로 향하리라 내다보기도(또는 기대하기도) 했었다. 들장미당은 실제로 2012년 선거에서 30% 넘게 득표한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진보보수연합보다 더 보수적인 들장미당(미국의 티파티에 가깝다고 한다)이 아니라 신민주당을 선택 했다. 이번 선거의 심판 대상은 단순히 진보보수연합만이 아니라 그 배후의 기존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었던 것이다.

앨버타 선거가 보여준 것 - 변화는 가능하다 물론 지난 몇 달 동안 그리스에서 다시 확인한 것처럼, 선거 승리의 환희는 짧고 신임 좌파 정부의 책임 은 무겁기만 하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앨버타 주도 마찬가지다. 벌써부 터 보수 언론은 신민주당의 공약들을 하나하나 무력화시키려고 벼르고 있다. 그 배후에는 물론 석유자본 이 있다. 레이첼 노틀리의 새 주정부는 과연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온타리오 나 퀘벡의 좌파 주정부가 그랬듯이 결국 애초의 약속들을 포기하고 투항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인들이 지 금 그리스나 스페인에 기대하는 것과 같은 사회 세력 관계의 변화에 나설 것인가? 결말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높이 평가하고 주목해야 할 게 있다. 다름 아니라 앨버타 와 캐나다 전체에서 신민주당이 성공시킨 역사적 도전이다. 이들의 승리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절실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준다. 첫째,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어떠한 낡은 경제-사회 패러다임도 결국에는 변화한다는 것. 둘째, 신생 좌파정당이 보수 독점 정치체제를 바꾸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셋째, 위의 두 사실은 밀접 히 연관된다는 것, 다시 말해 정당 정치의 변화는 기존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실현 된다는 것. 이것이 앨버타의 드라마가 우리에게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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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2015년 서울시대중교통 요금인상 투쟁기 김상철 서울시당 위원장

기억이 새로운 투쟁을 만든다. 사실 끝나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너스레를 떠는 것 같아 불편하지만, 현 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새겨놓는 일은 지금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 글은 서울시당 차원에 서 진행했던 대중교통요금 투쟁의 과정을, 애초의 예각화 단계에서부터 현재까지 경과를 중심으로 정리 하면서 논평을 덧붙일 예정이다.

준비기 서울시당은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확정한 2015년 사업계획에서‘서울지역 버스공영제 운동본부 구 성’ 을 포함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논란이 되었던‘무상교통’쟁점을 지속적으로 잡아갈 필요가 있었고, 더구나 올해 대중교통요금의 인상이 너무나 명확했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가 2004년 버스준공영제 도입 이후 만 10년이 된다는 점, 그래서 올해 하반기가 버스준공영제 협약서의 갱신 시기라는 점도 고려했다. 작년부터 기존의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 양 공사의 통합 역시 발표된 터라, 향후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 개편이 핵심적인 쟁점으로 등장할 개연성이 다분했다. 우선, 버스공영제 운동본부 구성을 당내 기구로 만들기보다는 당 외부 기구로 설치하려 했다. 공공운 수노조 버스지부와 공동사업으로 추진해야 대중사업으로서 주체발굴을 할 수 있을뿐더러, 기존 자동차노 동조합연맹에 의해 독점화되어 있는 서울지역 버스노동운동의 균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무엇보 다 당의 밖에 운동본부를 설치해 광범위한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참여 통로를 만들자는 욕심이 있었다. 이 런 관점은 이후 배심원형 공청회를 제안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3월에 진행한 서울경기강원 버스지부의 사업계획안에‘공영제 추진사업’ 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리고 최소 격주에 한 번씩 만나 현황을 공유했다. 다른 맥락에서 기존의 궤도교통네트워크라는 단위가 공 90


공교통네트워크라는 형태로 확대 개편된 것 역시 주요했다. 서울지역에서 대중교통의제를 가장 꾸준하게 다뤘던 단위였고, 가장 단단한 네크워크를 가진 곳이기도 했다. 여기엔 양대 지하철노조와 철도노조 뿐만 아니라 녹색교통, 서울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이 들어와 있었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시민 연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같은 단체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곳에선 버스에 대한 대응을 노동당이 분담함으로써 사실상 서울지역에서 대중교통 의제 내 버스문 제를 주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 서울시의 여러 행정부서 중 대중교통을 총괄하는 도시교통본부는 굉장히 독특한 위상을 지니고 있는 부서다. 무엇보다 현행 대중교통법제 자체가 절차법으로서 행정관료 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도 하고, 교통문제를 단순히‘수송문제’ 로 접근하는 전통적인 교통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많은 대중교통의 쟁점이 효율화를 위한 최적점

교통문제를 단순히‘수송문제’ 로 접근하다 보니, 이용자 시민은 언제나 주변부였고 전

을 산출해나가는 것으로 이해되기 십상이

문가들이 실험실 컴퓨터로 계산한 수치가

었다. 이렇다 보니 이용자 시민들은 언제나

교통정책의 중심에 자리했다.

주변부였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교수 등 전문가들이 실험실 컴퓨터로 계산한 수치가 교통정책의 중심에 자리했다. 이런 조건은 소위 시장의 의지, 즉 정치적 판단도 가볍게 무시하는 조건이었는데, 기술관료로서 이들이 가진 폐쇄적인 직군체계와 함께 서울시 내 정무팀의 교통정책에 대한 무지 속에서 더욱 견제되지 못했다. 노동당을 포함한 서울지역 각 단체들은 이미 몇 차례의 공방을 통해 이들이 합리적 토론이나 설득으로 생각이 바뀔 수 있는 집단이라는 기대를 접었다. 만약 이런 생각이었다면 초기부터 서울시와의 사전협의 중심으로 일을 추진했을 테지만, 지금의 결과적 측면에서 보자면 애초 서울시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준비 했던 것이 주효했다.

잠복기 올해 안에 요금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연초부터 조짐이 있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미 작년 12월 9일‘서울시 도시교통정비 기본계획’ 을 확정 고시하는 과정에서“시내버스 재정지원 기준금액 을 산정해 기준금액 대비 총 운영적자 비율이 적정 수준보다 높아지면 요금 인상을 추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거기다 이 과정에서“2년에 한 번씩 요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 이라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기본적으로 공공요금을 자동화한다는 말인데, 전통적으로 공공요금의 공공재적 성격을 고려할 때 위와 같이 계량적 요소만으로 적정요금 수준을 측정한다는 것 자체가 지극히 시장주의적 접근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기존의 <서울특별시 대중교통기본조례>를 개정하여“원가수준, 적자규모, 수도권 지역 대중교통 요금과의 형평성, 물가상승률” (제14조(대중교통요금))에 따라 요금 수준을 2년마다 자동적으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1


로 산정하도록 했다. 서울시당은 이에, 3월 4일자 입법예고안에 대한 의견을 통해 각각의 인상 근거라고 말하는 요인들부터 정확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원가수준이라고 할 때 원가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 을 어떻게 산정하는지, 적자규모라고 할 때 그 적자의 성격이 무엇인지, 형평성이라고 할 때 고려하는 요 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두루뭉술 규정하면 사실상 자동요금인상제와 같은 효 과를 띨 뿐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13일자로 감사원이 공개한‘교통보조금 집행실태’보고서를 통해, 서울시의 버스준공영제는 여타 광역정부에 비해 과다한 버스보조금을 지급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 과다하게 적정이윤을 높여서 지급해온 점(서울시는 2013년에 201억 원에 달하는 이윤을 적정이 윤보다 추가로 지급했음) 2) 차량보험료, 차량감가상각비 등 정산항목의 부실(차량보험료의 경우에는 2013년 에만 서울시가 60억 원을 과다하게 지출했다고 나타났음) 3) 버스운송업체에 대한 부당한 이자지원(2010년부 터 지원된 이자가 72억 원에 달함) 등의 내용이다. 총액 300억 원을 넘어서는 규모로, 한 해 버스보조금의

10%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무임승차 비용을 적자로 포함하여 산정하는 것은 회계원칙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었다. 기 대수익에 대한 손실이면 몰라도 이것을 적자의 원인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했다. 사실상 사회적 약자에 대 한 배려의 성격으로 제공되는 사회적 보조를 이용자들에게 요금으로 전가시키는 것으로, 이와 같은 셈법 은 무임승차를 하는 노인계층과 유임승차를 하는 청장년계층을 대립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더욱이 이와 같은 논리는 과거 이명박, 오세훈 시장 시기 요금인상 때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논리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재선으로 등장한 박원순 시장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전 시장의 시장주의적 접근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박원순 시장과 그 주변의 참모그룹에서 대중교통에 대한 정확한 이 해가 없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와 같은 쟁점을 단순화하면, 대중교통을 공급하는 서울시가 이를 단순히‘수지타산을 맞추는 장사’ 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과, 대중교통에 대한 서울시의 재정지원 성격이 적자를 보충하기 위한 부 수적인 것인지, 아니면 시민들의 요금 부담이 재정지원을 보충하는 부수적인 것인지에 대한 관점의 차이 로 정리할 수 있다. 현재까지 시의회에 계류 중인 <서울특별시 대중교통기본조례> 개정안은 이후 이와 같 은 논쟁을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발화기 4월 9일자《아시아경제》 에는 <때만 되면 오르는 버스 지하철요금 … 적자 때문이라는데 그대로 믿기 엔 수상한‘대중교통원가’ >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이는 주요 포털의 메인에도 공개되면서 대중교통 요금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해당 취재 과정에서 서울시 대중교통요금 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자문했 고 이를 근거로 기사를 작성했던 것이다. 사실 서울시가 요금인상안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서울시의 준비 정도를 떠보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즉각적인 반박자료를 냈고, 4월 10일 서울 92


시당은 서울시의 반박을 조목조목 재반박하는‘논평’ 을 발표한다. 그런데 정작 요금인상에 대한 소식은 엉뚱하게 들려왔다. 4월 13일 서울시 대변인이 개략적인 주간 브리핑을 하면서 요금인상안이 이번 주에 시의회에 부의된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대중교통요금인상안은 통상적으로 시장이 직접 발표하고 설명했 던 관례에 비춰보면 상당히 의아한 브리핑이었다. 서울시 출입기자를 통해서 확인된 이 사항은, 결국 4월 16일에 요금인상안에 대한 의견청취안이 제출될 예정이라는 사실로 구체화된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얼마를 올린다는 이야기는 기자를 통해서도, 서울시 대변인을 통해서도 또한 서울 시 담당부서조차도‘확정된 것이 없다’ 는 선에서 눙쳐졌다. 4월 16일에 공개된 요금인상안은 버스 150원, 지하철 200~250원 인상으로, 최대 24%에 달하는 인상폭을 보였다. 지난 2011년의 요금인상안과 비슷하 거나 이를 상회하는 수준인데, 실제로는 기존의 거리비례제 내용을 바꿔 장거리 이용자에게 더 많은 부담 을 안기는 요금제도의 변화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적인 측면과 별도로 4월 16일이 세월호참사 1주기였다는 점에서 서울시가 일부러 관심을 피 할 수 있는 날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실제로 14일, 15일 양일간 세월호 1주기에 요금인상안을 공개하는 것은 시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박원순 시장의 꼼수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여러 번 피력했으나 강행되었다. 참여연대를 매개로 서울시장 정무팀에게 시기가 좋지 않다, 의견청취안 상정시기를 조정하 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을 때 들려왔던 답변은, 세월호 1주기라는 일정은 전혀 고려한 것이 아니 라는 답이었다. 이런 답은 아예 솔직해서 좋았으나, 그 정도로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둔감한 서울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후 서울시당을 비롯해 공공운노조서울본부, 참여 연대, 공공교통네트워크 등은 공동기자회 견을 개최했다. 요구는 단순했는데, 요금인 상 전에 현행 대중교통체계가 가진 문제점 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라 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미 확인된 버스 준공영제의 문제점만 해도 전혀 해소되지

요금인상 전에 현행 대중교통체계가 가진 문제점을 해소할 제도개선안을 마련하라는 요구는 싸그리 무시됐다. 서울시는“나중에 다 바꾸면 된다” 고 말했을 뿐이다.

않은 상태에서, 다시 말해 적자의 원인을 낮 은 요금으로만 특정할 수 없는 조건에서임에도,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하지 만 이런 의견은 싸그리 무시된다. 서울시는“나중에 다 바꾸면 된다” 고 말했을 뿐이다. 4월 17일 서울시의회는 의견청취안을 상임위에 배정했다. 그때가 금요일이었다. 서울지역 시민사회가 바빠졌다. 급하게 정무부시장 면담이 잡혔다. 날짜는 시급성을 고려해서 4월 20일 오후 2시로 잡았다. 요 금인상안 졸속처리 반대,‘선 구조개선, 후 요금인상’원칙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전달했다. 당시 임종석 정무부시장은“실제로 들어와서 보니 돈 쓸 데가 많더라구요, 지하철도 노후화해서 고쳐야 하는데 쓸 돈 은 없고, 들어와서 보면 밖에서 이야기할 때랑 달라요” 라는 특유의 내부자 관점을 내비쳤다. 기존 재정지 출의 구조조정 없이 새로운 재정지출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지출사업을 정리함으로써 겪게 된 이해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3


관계자와의 갈등을 회피하는 대신 요금인상을 통해서 필요 재원을 마련하는 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간혹‘현실주의적 입장’ 이라고 오도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는 현실순응주의에 가까운 태 도일 뿐이다. 정말 현실주의적이려면 자신들의 지지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재정지 출 순위를 뒤집어 구조변화를 꾀하는 것이 현명하다. 전라도에 퍼주기를 하면 이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만큼이나, 버스사업자들의 눈치를 보면 이들이 박원순 시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은 숫 제 순진하거나 멍청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정무부시장과 면담하던 바로 그 시간에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에서 해당 요금인상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우스운 건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도 생략한 채 바로 질의응답을 몇 차례 진행한 후 외려 마을버스 요금인상안까지 담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렇게 빨리 의회 일정이 나오리라 예측하지 못했 던 상황에서 4월 23일 본회의 밖에는 기댈 수 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적어도 시의회를 통해서 공청회가 되었건 토론회가 되었건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깨졌다. 이에 4월 23일 서울시당 은 서울지역 단체들과 함께 서울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서울시의회가 시민의견수렴의 절차 를 반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막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 와중에서 본회의에 출석하는 박원순 시장에 게 대중교통요금 인상안의 처리는 안 된다는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4월 23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면화 다시 공은 서울시로 넘어왔다. 노동당은 4월 23일 본회의에서 의견청취안이 통과되자마자 긴급 논평 을 통해서 시민공청회 개최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사실 시민청구 공청회는 준비된 방안이 아니었다. 박원순 시장이 워낙 소통을 강조하고 이를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웠기 때문에 이를 공략해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을 뿐 구체적인 수단은 발견하지 못했다. 관련 단위들 역시 이렇게 몰아붙이는 사태에 대해 당황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있을지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시당 차원에 서는 직접 서울시민들을 조직해야 한다는 관점만 세운 채, 그 방식을 서명운동으로 할지 청원운동으로 할 지 고민했다. 서울시 조례 중 시민참여와 관련된 사항을 뒤졌고,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시민청구 공청회 였다. 이에 따라 5월 한 달 동안 서울지역 17곳에서의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서울특별시 주민참여기본조 례>가 2011년에 제정된 이래 첫 번째로 시행되는 시민공청회 청구였다. 조례에는‘선거권’ 을 가진 서울지 역 주민의 서명이 필요하며, 그들의 자세한 주소가 필요했다. 요즘처럼 개인정보에 민감한 상황에서 요구 하는 정보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번번히 개인정보 제공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서명을 포기하는 시민 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흔쾌히 동의하거나, 아예 요금인상안 자체가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시민들을 더욱 자주 만났다. 구로, 은평, 마포, 서대문, 영등포, 강남서초, 종로중구 당협에서는 지 94


서울시청 광장에서 서명운동을 진행 중인 당원들 (사진 : 노동당 서울시당)

역 내 거점에서, 청년학생 당원들은 대학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하루 5시간 정도 하면 300명에서 500명 사이의 서명이 모아졌다. 일단 최대한 자주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시민들에게 알려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버스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서울시청 앞 덕수궁 돌담길은 주요한 전략지역이었다. 서명도 서 명이었지만 노동자들의 농성을 고립된 상태로 나둬서는 안 되었다. 목적의식적으로 덕수궁 돌감길에서의 서명운동을 다수 배치했다. 노동자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하면서 버스노동자가 왜 이번 요금인상을 반대 하는지 시민들에게 함께 알렸다. 이 사이 5월 15일에는 정효성 행정1부시장을 면담했다. 이미 서울시당을 비롯한 연대단체들은 격양될 대로 격양된 상태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느긋했다. 이미 이 정도로 진행된 상태에서 할 것이 없다는 말이 었다.“아니 우리가 이것 하겠다 저것 하겠다 그러면 서울시의회가 뭐가 되나요? 절차적으로 크게 문제도 없고, 당신들의 의견을 들어 별도의 거버넌스를 만들어서 개선방안을 논의하겠다” 는 입장이 나왔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버스정책과 공무원은 현재 공개되지 않은 각종 연구용역 자료나 원가정보가 공개되어 있다며 허위보고를 했다. 그 자리에서 부시장에게 확인해보라고 요구했다. 공개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동안 도시교통본부 공무원들이 이런 식으로 고위 관료들을 속여왔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해결된 것은 전혀 없었으나, 이 자리에서 서울시당 위원장이 1차적으로 거버넌스에 들어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5월 19일 대중교통요금제도 개선 및 경영혁신 TF라는 임시 거버넌스의 첫번째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요금인상안의 필요성이 재차 논란이 되었다. 서울시는 이 거버넌스를 요금인상을 전제로 후 속논의를 하는 자리로 이해하고 있었지만, 자리에 참여하고 있던 위원들은 그런 태도야 말로 이 거버넌스 를 요금인상을 위한 들러리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위원 구성에 있어서도 버스업체나 지하철공사와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5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래는 1시간 남짓으로 예정되었던 회의가 2시 간을 넘겨 진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만약 거버넌스 논의와 별개로 요금인상안이 확정된다면 거버넌스 참 여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6월 4일에 일차적으로 5210명의 명단을 정리해서 서울시에 제출했다. 다소 불충분한 서명이 있 었지만 당장 물가대책위원회가 예정된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적 압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청구서를 제출하면서 청구인 측이 바라는 공청회 형식도 제안했다.‘시민배심원형 공청회’ 라는 형태로, 기존의 행 정배심원 제도를 변용한 형태였다. 이용자 시민 100명을 무작위로 선정한 후 이들을 대상으로 요금인상 의 불가피성과 부당성을 주장하는 측의 공청회가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시민배심원들이 찬반 양측에서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면서 쟁점을 명확히 하고, 이후 배심원단 숙의를 통해서 요금인상안에 대한 의견을 작성하여 제출하는 형태다. 일종의 숙의 과정을 제안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방법은 해당 공청회를 진행하는 데 1달의 시 간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고지한 6월 27일 요금인상시기를 미룰 수 있겠다는 속 내도 있었다. 6월 27일 인상시기는 행정일정에 불과했지만, 시민공청회는 반드시 1달 내에 개최하도록 법 적구속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일정에 비해 앞선다는 확신이 있었다. 서울시는 메르스 사태 통에 수많 은 행사를 백지화했다. 당장 6월 9일 로 잡혀 있던 12명이 참여하는‘참여 예산지원협의회’회의도 메르스 사 태를 근거로 연기했다. 하지만 200 명이 참여할 것이라는 6월 10일, 대 중교통요금인상에 대한 서울시 공청 회는 강행되었다. 행사장 입구에 열 감지기가 설치되고 참여자에게 마스 크를 나눠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서울시당의 시민배심원형 공청회 개최(안)

행사는 이틀 이후로 예정되어 있던 물가대책위원회를 위한 사전 절차의

성격이 컸다. 시민공청회 청구 후 서울시는 자신들이 준비 중이던 공청회를 시민공청회로 갈음하면 안 되 겠냐는 요구를 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시민패널을 모집할 시간이 필요하니 공청회 일정 을 변경할 것, 단 하나였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를 거부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결국 6월 10일 공청회가 강 행되었고 서울시당은 사전에 버스지부와 협의한 대로 피케팅을 실시했다. 사전에 패널로 배정되어 있던 참여연대 관계자와 서울지하철노조 관계자들은 무리한 공청회에 항의하는 뜻으로 공청회 불참을 선언했 다. 피케팅을 하는 과정에서 또 한명의 패널로 참여할 예정이었던 소비자단체 관계자는“요금인상안에 대 96


6월 10일 서울시가 강행한 대중교통요금인상 공청회장 안에서 형식적인 공청회에 항의하는 피케팅을 진행 중인 당원들 (사진 : 노동당 서울시당)

한 공청회가 아니라 제도개선에 대한 공청회로 알고 왔다” 는 이야기를 했다. 서울시가 공청회의 취지를 왜곡해서 패널들에게 공지한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제도개선에 대한 공청회라면 굳이 날짜를 고집해 개 최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에 제시된 내용 역시도 앞서 설치된 거버넌스에서 논의되지 않은 초초안 성격의 내용에 불과했다. 반면, 최초 공청회 공지자료에는 없던 대중교통요금인상안 설명안이 발제자료에 포함 되었다. 사실상 서울시 공무원들이 기만한 것이다. 버스지부 박상길 지부장은 공청회 장에서 항의 중이었고, 노동당원들은 행사장 밖에서 피케팅을 하는 상황이었다. 방청석은 버스업체 관계자들로 채워졌다. 서울시가 형식적인 공청회를 하려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노동당원들이 공청회장에서 피케팅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공방이 이뤄졌지만, 서울시는 단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이 공청회의 토론 결과에 따라 현재 서울시가 확정하고자 하 는 요금인상안이 변경될 가능성이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패널로 참석하겠다"는 질문이었다. 서울시로서는 요식절차에 불과한 공청회를 통해서 제대로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공 방 끝에 서울시는 공청회 무산을 선언한다. 우리에겐 제대로 된 시민공청회를 개최하자는 명분이 있었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는 점 점 군색한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6월 12일에 열린 물가대책위원회에서도 요금인상안이 통과 되지 못했다. 사전에 입장을 공유한 민주노총서울본부 부본부장이 분위기를 주도했고, 결국 찬성 반대와 함께 보류를 선택지로 하는 표결을 진행하는 데 성공한다. 당연히 요금인상안은 보류되었다. 언론들은 이 원인을 서울시의 불통에서 찾았고 서울시의 입장에서는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6월 15일 저녁 서울 시 정무부서에서 만날 것을 요청했다. 다음 날인 16일 정책특별보좌관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황당한 이 야기를 접했다. 서울시장이 6월 27일로 예정된 요금인상시기의 조정을 지시했는데 해당 부서에서는 근거 도 없는 소송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절대 불가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상 시장의 방침에 항명 빨간 도시교통 이야기 97


한 꼴인데, 서울시장이나 정무부서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시장의 의지를 통해서도 6월 27일 요금인상안을 막지 못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 에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4가지 선결조건을 제안했다. 5000명이 넘는 시민공청회 청구 시민들에게 제대 로 된 의견수렴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할 것, 버스정비직 노동자들도 운전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적정인력 고용의무와 노동조건 개선을 시행할 것, 기존의 버스정책시민위원 등 관련 거버넌 스에 이용자 시민과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할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해당 부서를 믿을 수 없으니 시장 이 요금인상 공고와 함께 명시적으로 해당 사항을 언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내부 논의를 하겠다 는 이야기를 들었고, 관련 단위들과 공유했다. 17일 오후 공동대응단위의 회의가 진행되었다. 미흡하지만 사실상 절차상 하자가 없는 상황에서 6월 27일 요금인상 공고를 막을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되지 못한다 는 점과 시민공청회 역시도 이것이 개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요금인상을 할 수 없는지 법률적 판단이 모 호하다는 조건이 고려되었다. 노동당의 입장에서는 명시적으로 시민공청회에 응해준 시민들에게 대한 직 접적인 언급과 사과가 있다면 명분이 있겠다 싶었고 버스지부 입장에서도 정비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이 라는 것이 중요한 요구의 한 축이었던 만큼 최소한으로 받을 수 있는 안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6월 17일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노동당과 공공교통네트워크, 버스지부와 사회공공연구 원의 연구자가 면담자였다. 1시간 정도 진행된 면담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된 4가지 조건을 명시적으로 요 구했다. 시장은 별 문제 없을 것이고 자신도 동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면담 끝에 재차 4가지 사항에 대한 시장의 명시적인 언급을 요구했다. 다시 시장은 그렇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사 실 이 날 시장의 면담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물가대책위원회의 사전 정지 작업에 가까웠다. 공동대응 단체들은 물가대책위원회에서 최대한

요금인상안이 통과되고 일제히 공고되었지만, 우리가 요구한 선결조건에 대한 시장의 명시적 언급은 없었다. 시장의 의지가 실무진 급에서 ‘마사지’ 가 된 것이다.

반대를 이끌어내되 백지화를 만들어낼 물리적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20명 이 참석해 11대 9로 어렵게 요금인상안 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20일 요금인상 안이 일제히 공고되었다. 하지만 시장 이 약속한 명시적 언급은 없었다. 실무

를 담당했던 서울시 정무비서관은 침묵했고 정책특보는 취지를 알고 있으니 믿고 기다리라 했다. 사실상 시장의 의지가 실무진 급에서‘마사지’ 가 된 것이고, 최소한의 신뢰는 부정되었다.

숨고르기 서울시당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시민공청회를 할 이유가 없었다. 일차적으로 이번 요금인상안에 영향을 미친다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이미 서울시가 별도의 공청회 개최를 확약한 상태에서 최초 98


의 시민공청회라는 명분을 서울시에 제공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서울시로 하여금 시민공청회 무산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이후 제도개선 국면에서 더 타당하다고 봤다. 당연히 시민청구를 수임해준 시민 들의 요구를 이행하지 못한 책임은 남는다. 현재의 조건에서는 명시적으로 시민공청회를 철회하고 서울 시에서 하는 공청회를 최대한 우리의 요구에 맞추도록 하는 이원화된 전술이 최선이다. 여전히 요금국면 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요금인상안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비견하는 성과도 있었다. 우선은 그동안 서울시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였던 단체들의 태도가 변했다. 물가대책위원회에 참 여했던 소비자단체들이 두 번째 회 의의 반대표를 채웠다. 또한 더 이상 서울시가 대중교통요금을 단순히 적 자보전이나 원가라는 개념으로 접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시 가 내세웠던 논리들은 완전히 반박 되었고, 막판에는 경기도, 인천시 등 과 사전에 협의된 날짜를 지켜야 한

대중교통요금은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요금이다.

다는 옹색한 상황 논리만이 남았다. 또 이 과정에서 서울시 교통본부가 가진 폐쇄성이 공론화되었다. 당장 7, 8월로 예정된 서울시 인사에 대 규모 조직개편이 예정되어 있다(물론 그간 서울시의 행태를 봤을 때 100% 장담은 하지 못한다). 노동당의 입장에서는 대중교통요금이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해서는 안 되는, 사회적 요금이 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는 점이 의미 깊다. 이것은 작년 무상교통 논의를 제안했던 맥락과 이어진다. 그 리고 이후 공영제 전환과 다양한 요금제도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다. 사실 작년 무상교통 논 쟁에서 가장 극복하기 힘들었던 것이‘공짜’논리였다. 정말 대중교통을 무상화하는 것이 공짜를 의미하 는 것인지 제대로 논쟁하지 못한 채, 김상곤 후보자의 빠른 퇴장에 따라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특별시 대중교통기본조례>의 개정안이 여전히 계류 중이다. 즉, 교통요금 문제는 이 제 2라운드로 접어들었을 뿐이다. 비가역적인 변화를 위한 투쟁은 이제 조금 진행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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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한국 대학 체제의 형성⑦

대학 기업화의 빌미를 준 김대중 정권과 BK21 김예찬 서울 강남서초 당원

‘인적자원’ 으로 대변되는 김대중 정권의 교육 개혁 김영삼 정권이 야심차게 시도한 5.31 교육 개혁조치의 방향은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큰 기조 변화 없이 이어졌다. 5.31 교육 개혁안을 입안한 인사들은 민주개혁 정부 의 주요 인사들과 시장적 자유주의를 기조로 대학 교육을 개혁하겠다는 이데올로기를 공유 하고 있었고, 정권 역시 무리하게 덜 다듬어진 새로운 교육 개혁 구상을 내놓는 것보다는 이전 정책의 연장선에서 그것을 개선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1) ‘인적자원’ 이라는 표현은 김대중 정권의 교육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01 년 1월, 교육부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로 바뀌어 새롭게 출발했다.“국가수준의 인적자 원개발정책의 수립 및 총괄·조정기능을 수행”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마치 공교육의 역 할을 생산 자원 수급에 두는 듯한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대학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정책들 역시 추진되었다. 특히 김대중 정권이 시행했던 대학 정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BK21(Brain korea 21) 사업이다. BK21은 본래 대학원의 연구경쟁력을 강화하여, 미국식 연구중심대학을 육성

하겠다는 취지의 프로젝트였다. 산학연계를 통해, 산업기술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에 대학의 역할 중점을 두겠다는 뜻이다.2) BK21 사업을 수립할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1) 김종엽, <교육에서의 87년 체제-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경제와사회》2009년 겨울호(제84호) 2) 2003년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을 통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산업자문’ ,‘산학협 력’등의 개념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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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던 이해찬은 서울대를 이공계 대학원을 중심으로 재편하여 집중 투자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 다.3) 그러나 1조 4천억 규모의 대형 사업을 서울대에 집중 투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구상이었다. 결국 예산의 절반만 서울대에 배치하고 나머지 예산은 전국의 각 대학으로 지원했다. 지원 분야 역시 이공계 뿐 아니라 전 분야로 확대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BK21과 연계한 새로운 정책 목표들이 등장한다. BK21 지원 사업을 통하여 현존하 는 대학 개혁의 과제들을 함께 수행하 려 했던 것이다. 90년대 후반 당시 대학 들은 1) 5.31 교육 개혁조치 이후 설립 준칙주의로 인한 부실 대학 난립, 2) 대 학 정원 자율화 이후 팽창한 대학 입시 정원, 3) IMF 외환 위기로 인한 대졸자

BK21 사업을 통해 당시 대학 개혁의 과제들을 함께 수행하려 했던 교육부는‘연구 중심 대학’ 을 모토로, 학부 규모를 축소하고 대학원 중심 으로 대학을 재편하는 구조조정을 시도한다.

실업난 등의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이 러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부는‘연구 중심 대학’ 을 모토로, 이제까지 한국 대학 교육의 핵심이었 던 학부의 규모를 축소하고 대학원 중심으로 전체 대학을 재편하겠다는 구조조정을 시도하게 된다.

BK21의 실패 당시 교육부가 BK21 사업비 지원에 대한 조건으로 각 대학에 요구한 구조조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었다.

1) 수시 입학과 고교장 추천제로 대표되는 입학제도 개선 (대입 전형 다양화) 2) 이미 5.31 이후 부분적으로 시행되던 모집단위 광역화 (학부제 전면 실시) 3) 학부 정원 15% 감축 4) 대학원 확대 개방 5) 연구비 중앙 관리제 6) 교수 업적 평가제

먼저, 대입 전형 다양화는 21세기 창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인재들을 위한 전형을 만들겠다는 정부 의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영화감독 심형래로 유명한‘신지식인 운동’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 라는 3) 2004년 국무총리 청문회에서 이해찬은 교육부 장관 재임 당시의 가장 잘한 일로 BK21을 꼽았으며, BK21은 원래 서울대의 학부 정원을 줄이고 대학원 연구 중심의 대학으로 재편하고자 했던 계획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이해찬은 BK21이 바이오산업을 중시 했기 때문에 황우석 박사의 성과가 가능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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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99년 2월 4일자 1면 갈무리(위) 경향신문, 1999년 9월 1일자 1면 갈무리(아래)

모토로 펼쳐진 대학 입시 개혁 등이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이 해찬 세대’ 라는 표현이 생겨날 정도였다. 학제간 연구와 통합적 교육을 추구하겠다는 명목으로 시행된 학부제는, 사실상 학과 통폐합을 통해 정 원을 감축하겠다는 의도로 진행된 것이나 다름없다. 훗날 교육적 측면에서 처절히 실패했다는 것이 증명 되었듯이, 학부제에 적합한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강행한 학부제는 교육의 질을 저하시 키고 이후 대학 구조조정의 한 전형이 되었다. 학부제 도입 이후 발생한 문제 중 하나는, 대학들이 전임 교원 확충을 꺼리는 상황에서 계약직 교원을 통한 교양 강의의 비중이 늘어나고 대형 강의의 수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는 학생 교육 서비스의 질 저 하를 가져왔고, 교원들의 비정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원의 연구 기능을 강화한다는 목적은 훌륭했지만, 실제로 산학연계를 통해 대학이 실용적 성과를 내는 데에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산학연계를 통해 장기적으로 고등교육의 재정을 기업으로부터 확충하겠다는 것이 그 의도였으나, 오히려 산학협력이 추진된 이후, 연구개발비에서 민간 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었다. 반면 정부재원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4) BK21 사업이 표방했던 고급 인력 육성 계획 역시 공급만큼의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매년 2

4) 윤자형, <1990-2000년대 고등교육개혁 정책의 공공성 진단 : 새로운 공공성의 기획을 위하여>, 제 7차 서울적록포럼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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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여 명의 BK21 박사 졸업생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일부 고급 산업 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를 빼 고는 고학력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뿐 아니라, BK21 지원 사업 채택 기준에 맞춘 대학의 구조 재편은 본래 특성화·전문화된 연구 중심 대학을 육성한다는 취지와 동떨어진 결과를 낳았다. 대학들이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해 획일화된 구조로 변모했고, 이러한 급속한 구조 재편에 따른 내실 약화 등의 문제도 나타났다.

이처럼 김대중 정권이 BK21을 통해 시도한 대학 개혁의 방향은 시장주의적 경쟁 원리의 도입이라는 김영삼 정권의 기조를 이어가되,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 사업을 통해 대학과 민간 기업 간의 연계를 강 화하여 대학의 자율적인 운영과 성장이 가능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

김영삼 정권이‘세계화’ ‘정보화’등의

에서 정부는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인재 상

키워드로 대학 개혁의 큰 그림을 그렸다

을 설정하고, 각 대학이 이에 맞추어 특성화 되고 전문화된 교육을 통해 고급 인력을 육성 하도록 주문했다. 김영삼 정권이‘세계화’

면, 김대중 정권은‘창의 인재’ 와‘연구 중심’ 을 모토로 이를 구체화하고자 했다.

‘정보화’등의 키워드로 대학 개혁의 큰 그림 을 그렸다면, 김대중 정권은‘창의 인재’ 와‘연구 중심’등의 모토로 이를 구체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산업 수요를 예측하지 못했고, 대학을 둘러싼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 한 구조적 전환을 이루는 것에 실패했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과정에서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 이 바로 대학 기업화의 논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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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치 칼럼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의 춤을 출 것입니다 강현주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팀, 서울 양천 당원

‘보여지기’ 를 선택한 짜릿함 퀴어문화축제(이하 축제)는 성적소수자들에 대한 직간접적 차별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성적소수자 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매년 열리는‘참여형’문화행사 다. 성소수자 인권 이슈를 퍼레이드, 부스, 전시, 공연, 토론, 파티 등 다양한 문화행사로 녹여내어, 참가 자들이 행사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축제를 준비 하는 조직위원회는 축제의 모든 업무를 총괄하며 홍보 및 디자인을 담당하는 사무처와 파티, 전시, 시민 참여 이벤트 등을 기획하는 파티/스페셜 이벤트팀, 참가자들이 다 같이 모여 음악과 함께 도로를 행진하 는 행사로, 축제의 가장 주된 행사라 할 만한 퀴어퍼레이드를 준비하는 퍼레이드팀, 성적소수자를 위한 영화제인 한국퀴어영화제를 준비하는 영화제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축제의 기획단원이며 퍼레이드팀 소속으로 활동한 지 5년이 되었다. 16년 전의 첫 퍼레이드 때는 50여 명의 사람들이 대학로를 행진했다는데, 내가 처음 퍼레이드에 나온 5년 전에는 청계에서 약 3천여 명이 행진했다. 토요일 낮의 청계천 도로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이 의아한 행렬을 맞닥뜨린 시 민들의 반응은 조용히 사진만 찍는 정도였다. 해가 바뀌어갈수록 장소를 잡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2013년에 더 이상 장소대여를 허가해줄 수 없다는 광장 측의 반응에 급하게 찾아낸 곳이 홍대입구역 공항철도 출구 근처, 일명‘굽고싶은 거리’일대였다. 당시에는 SNS상에서‘그렇게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하다니 단체로 아웃팅시킬 생각이냐’ 는 의견이 제 법 있었다. 행사 당일, 하늘에 무지개가 떴고 역대 최대 참가자인 1만 명이 모였다. 홍익대 정문에서 홍대 입구역 쪽으로 내려올 때, 수많은 사람들이 서서 우리 행렬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우리 행렬의 존재감이 그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고, 내가 스스로 타인에게‘보여지기’ 를 선택했을 때의 짜릿한 감 각을 그때 알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던 것 같다.‘우리끼리만 재미있으면 된다’ 는 입장에 서,‘우리가 더 당당하게 나서도 괜찮구나’하는 방향으로. 홍대 걷고싶은거리 상인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 104


2015 퀴어문화축제 공식포스터(좌)(사진제공 : 퀴어문화축제).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2015 퀴어문화축제 개막식에서‘우리는 연결 될수록 강하다’ 라고 쓴 피켓을 든 사람들(우)(사진 : 김민수 퀴어문화축제 기획단)

고, 역 근처 노점상인들도 퀴어문화축제를 지지한다는 홍보물을 붙여주었기에, 성소수자와 지역사회의 접점에 대한 고려를 시작해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들이‘혐오’ 를 말할 때 우리는‘사랑’ 을 그러나 행사 후 일부 단체가 마포구청에 찾아가‘마포구에서 다시는 동성애 행사가 열려서는 안 된다’ 는 의견을 전달했다. 상인회장은 언제든지 이 곳에서 개최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야 했다. 2014년, 신촌 지역단체의 도움을 받아 신촌 상인회와 만났고, 공간 사용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일부 목사들이 서대문구청에 달려가 행사를 당장 취소할 것을 구청장에게 요구했고, 우리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새벽부터 앰프를 크게 틀어놓고 돌아다니며 기도문을 크게 읊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동성애1)는 죄악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던 목소리를 처음 맞닥뜨 린 때였다. 행인들이 그들의 홍보물을 하나도 받아주지 않아 일그러지던 표정도 기억한다.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 혐오세력은 우리의 퍼레이드 코스 시작점에 천여 개의 의자를 깔고 음악회 를 열었다.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축제의 행진 대열 바로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러누웠 다. 경찰은 그들의 집회신고 또한 받아줬기에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대치는 계속되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차량2)을 포기하고 사람들만 내보낸다면 길을 터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차량을 지켰다. 만

1) 그 당시에는 동성애만 이야기를 했고 지금도 그들의 홍보물은 남성동성애에 치중되어 있으나, 요새 혐오세력은 축제를‘퀴어축 제’ ‘퀴어측’ 이라고 부른다. 2) 퍼레이드 때는 음향장비를 실은 차량에 간이무대를 꾸며 각 콘셉트에 맞춰 꾸미고 사람들이 올라가 음악을 튼 채로 참가자들과 함께 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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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우리가 꼭 찾아 가야 할 목표지점이 있었다면 차량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사 람들이 다 같이 모여 즐거운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 가장 두드러진다. 차량을 꾸미기 위해 몇 달 을 꼬박 준비한 사람들이 있고, 차량 또한 우리 행렬의 일부이니 포기할 수 없었다. 우리는“더러운 동성 애자” 라고 외치는 사람에게“사랑한다” 고,“대한민국” 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같은 리듬으로“혐오반대” 라 고 외쳤다. 다섯 시간 여의 대치 끝에 길이 열렸다. 20여 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비로 소 행진을 할 수 있었다.“마지막 차량 굴다리 지나갑니다” 라던 무전을 기억한다. 연세로 도로에서 들어오 는 사람들을 기다리던 밤을 기억한다. 사람들과 끌어안고 도로 위에서 펑펑 울던 시간을 기억한다. 새벽 부터 나와 그 큰 소리들을 들어가며 묵묵히 행사를 준비했고, 1.8킬로미터의 도로를 행진하는 데 그 긴 시 간이 걸렸지만, 우리 모두 무사히 돌아왔고 밤늦게까지 함께한 사람들이 많았다. 수도 없이 지나쳤던 신 촌 거리였지만 그날 밤이 제일 밝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변해버린 신촌 거리를 걸을 때마다 누구 라도 붙잡고 혹시 그 밤을 기억하냐고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축제는 계속된다 서울에서의 축제가 끝나고 대구 퀴어문화축제, 서울시 인권헌장 사태와 성북구 주민참여예산 무산 사 태 등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16회 축제를 준비해야 했다. 처음에는 대학로 일대를 염두에 두고 준비를 했 지만, 혜화경찰서의 집회신고 0시 선착순 진행과 혐오세력의 혜화서 앞 노숙 때문에 결국 대학로에서 진 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비교적 얼굴이 안 알려진 내가 집회신고를 하러 갔을 때, 시종일관 점잖았지만 혐오세력도 하나의 의견이니 존중하시라던 경찰관의 말을 기억한다.

서울시청광장 집회 신고를 위해 남대문서에서 릴레이 줄서기를 진행 중인 사람들 (사진제공 : 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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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장소가 서울광장으로 옮겨지면서 집회신고 관할도 남대문서로 바뀌었지만, 그곳에도 혐오세력이 1순위로 대기 중이었다. 우리는 남대문서 앞 줄서기 릴레이를 진행했다. 28일 0시에, 100여 명의 사람들 이 모여 LED전구를 담은 풍선을 흔들며 줄서기를 마무리했고, 그 시각 조용히 서울시경에 집회신고 접수 를 했다. 예상한대로 옥외집회금지통고처분이 나왔고, 몇몇 분들이 모여 이 처분의 효력정지신청을 준비 했다. 6월 18일, 드디어 법원으로부터 효력정지결정을 받았다. 우리의 행진이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사실 앞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서울시청은 메르스를 이유로 들며 계속해서 축제를 못 하게 할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개막식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시청에서 참가자들의 실명 및 연락처를 수집할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축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해서 사랑해왔던 사람들이고 사랑은 타의로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8일에는 아마 개막식 때보다 훨씬 많은 혐오세력이 모일 것이다. 나는 그들보다 더 많은 성적소수자 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 궁금한 사람들이 모이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의 많 은 면면을 직접 겪어보기를 바란다. 가장 햇살이 찬란한 계절에, 환하게 웃는 이들을 확인해주기를 바란 다. 당신의 상상과 예측은 부디 접어두시고,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우리가 어떤 행사를 준비했는지 당신이 스스로 느껴주기를 바란다.

나가면서, 덧붙이는 말 예수님의 이름으로 동성애에 대해 근거 없는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가시화된 것은 작년부터겠지만, 나 는 모두가‘혐오세력’ 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살아왔다. 10대 시절에는 학교에 있는 사람들 모 두가 나에겐 얼마간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누군가 내 어떤 면을 알았을 때 나를 미워하고 거부할 수 있음 을 항상 자각해야 했다. 당 활동을 하면서도 이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혐오세력을 마음껏 조롱하고 욕하 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말끔한 얼굴을 하고, 당신은 10대 시절에 또래 성소수자를 본 적이 있는지, 그들에 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지 묻고 싶을 때도 있다. 축제를 시작하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울고 웃 었다.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축제를 준비하지만 준비하면서 나이나 성별로 인한 차별 을 겪어본 적이 없다. 세상의 성적소수자들이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 밖으 로 나와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축제를 준비하지만, 내가 이 일을 5년 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일하는 이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세상이 혐오를 말할 때 우리는 사랑을 얘기합니다. 우리의 사랑을 멈추라고, 감추라고 윽박질러도 우 리는 계속해서 사랑의 춤을 출 것입니다.”

삶과 문화 107


메아리 공업사③

해운대 에코에코, 꿈의 첫발을 내딛다 글·사진 : 화덕헌 마을기업 에코에코협동조합 아트디렉터

메아리공업사, 마을기업이 되다 오랜만에《미래에서 온 편지》 를 통해 메아리공업사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 5월, 오랜 준 비 끝에 드디어 메아리공업사가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어 해운대구청과 약정식을 진행하였 습니다. 마을기업은 마을주민들이 지역의 자원을 가지고 수익사업을 해서 지역공동체를 활 성화시키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는 마을단위의 기업으로, 2년간 안전행정부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첫해에는 인건비 1000만 원을 비롯한 5000만 원을, 두 번째 해에는 3000만 원을 지원 받습니다. 물론 사전에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되는데요, 메아리공업사는‘에코에 코’ 라는 상호로 도시자원재생디자인 사업에 관한 제안서를 제출해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을기업 선정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각 시도의 사회적기업센터를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돈은 혼자 오지 않고 항상 간섭과 함께 오기 마련이라, 연초부터 지난한 과정을 거쳐 비 로소 마을기업에 선정되었지만 선정 이후 지원금이 통장에 꽂히기까지의 1개월여 동안에도 새로운 난관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향후 2년간 이 사업이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이 지원금이 매우 소중한 역할을 하게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불평 않고 서류 만드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저희들이 제안한 사업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가 폐목재를 활용한 인테리어 사업 이구요, 두 번째가 해운대 해수욕장 폐파라솔 천으로 가방을 만드는 사업, 세 번째가 폐자 원을 활용한 인테리어 소품 제작 사업입니다. 2010년에 의원이 되고나서 의정활동의 첫 영역이 구청 청소노동자의 처우에 관한 연대 투쟁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제가 원래부터 좀생이 기질이 충만해서 그런지 의정기간 내 108


폐파라솔로 만든‘에코에코’ 의 가방

내 쓰레기, 폐기물, 재활용… 이런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메아리공업사는 2012년 가을, 제가 구의원으로 일할 당시 폐기물로 분류되어 소각되는 폐파라솔 천을 주워오면서부터 시작된 셈입니 다. 사실 예전에 소개한 메아리도서관 사업도 도서관 사업 이전에 거리의 공공시설물을 어떻게 재활용할 까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구요(편집자 :《미래에서 온 편지》5호(2014년1월호) 78쪽 <의원단 일기> 참조).

마을기업으로 선정되고 공적 자금을 지원 받았으니 이제부터 문제는 일정한 성과 곧 사업실적을 올리 는 것이 발등의 불처럼 느껴집니다. 마을기업의 중요한 목적이 마을의 지역성이나 공공성을 가꾸는 것이 긴 하지만 마을기업도 기업인 이상 영업실적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도 사실입니다. 가장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폐파라솔 천으로 가방 만드는 사업은 단가를 맞추고 판로를 개척하는 일 이 당분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폐파라솔을 수거해서 분류하고, 세탁과 다림질, 재단과 박음질을 하는 데 꽤 많은 일손이 듭니다. 가방 하나를 만드는 데 4시간 정도의 인건비가 든다는 계산이 나옵니다.(4시간 ×8,000원=32,000원) 거기에 밥값과 기타 경비를 더하면 가방 값이 꽤 높게 책정됩니다. 거기에 더해 바

느질 노동이나 천 쪼가리를 재활용한 물건에 대한 소비자들의 편견도 판매 부진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 니다. 아마 새 원단을 사서 봉제 공장에 보내 만들어오면 1~2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비슷한 가방을 충분 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코 관련 사업 한답시고 사서 고생을 하는 셈입니다. 삶과 문화 109


마을기업‘에코에코’ 의 화려한 데뷔 다행히 마을기업이 출범하자마자 올해 제출한 목표 매출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일감이 생겼습니 다. 해운대 모래축제에 공중전화통을 활용한 수족관을 만들어 납품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모래축제를 준비 하는 담당자가 기획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말을 우연히 듣고 프랑스 리옹의 거리에 설치되었던 공중전 화통 수족관에 관한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소개해 주었는데, 결국 직접 제작해서 납품해 달라는 의뢰를 받 았습니다. 거리에 설치되었던 공공기물들 중에서 정보화 관련 기물이면서 정보화의 속도에 떠밀려 폐물이 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우체통과 공중전화통 입니다. 이 물건들을 다시 디자인하여 쓸모 있는 것으로 바꾸는 작 업을 통해 재사용·재활용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해보고 싶었습니다.

① 마을기업 조합원들과 백사 장 위에 기초 작업을 하고, 쇠 파이프로 지지대를 설치한 후 방부나무 판재로 마루를 깔았 습니다. ② 수족관은 20센티미터 두께 의 아크릴을 접합해서 만들었 는데, 크기는 800×800× 1800입니다. 그 안에 KT를 통 해 받은 DDD 카드식 구형 전 화기도 설치하고, 함께 들어간 기포 발생기와 야간 조명은 태 양광 발전으로 운영했습니다. ③ 폐공중전화통이 수족관으로 멋지게 탈바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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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에코’ 에서 만든 수족관을 구경하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역시나 우리가 만든 수족관이 다른 모래작품이 나 심지어 잘 꾸며놓은 공식 포토존보다 인기가 더 좋았습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했습니다. 실내의 작은 어항에서 살던 금붕어들도 야외의 큰 수조에서 며칠 지내더니 더 활기차져서 나중에는 뜰채로 포획하기가 난감할 지경이 되기도 했습니 다. 1톤이 넘는 수량과 두꺼운 아크릴 판 덕분에 수 온 상승도 염려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염려했던 폐사량도 초기 몇 마리를 제외하면 지극히 미미했 습니다. 다만 실내와 달리 야외라서 설치 후 일주일 이 경과하고 나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녹조는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먼 첫걸음입니다. 도시자원을 아끼고 가꾸고 재사용하는 일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수준의 작업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차원에서 보다 획기적으로 자원을 절약하는 사업을 펼치는 데까지, 해운대 에코에코의 꿈은 원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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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로 보는 한국언론

사망선고는 뉴스가 하는 게 아니다 조윤호 <미디어오늘> 기자

언론은 때로 사람을 죽인다. 질 나쁜 보도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뜻도 있 지만,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이‘죽었다’ 고 보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망 오보는 최악 의 오보 중 하나다.

삼성서울병원 의사, 한국일보는‘뇌사’YTN은‘사망’ 메르스라는 대형 뉴스거리를 만난 언론이 최악의 오보를 저질렀다. 메르스 확진을 받 은 35번째 환자인 삼성서울병원 의사는 6월 11일 오후 8시 30분 경‘사망자’ 가 됐다. YTN 보도 때문이다. 이 의사는 감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1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접촉 했다는 논란이 일어 박원순 서울시장과 공방을 벌인 인물이다. YTN은 이날 오후 8시 30분 경“의료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오늘 오후부터 뇌 활동이 사실상 정지해 있다 오늘 저녁 끝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며“어제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오늘은 혈액순환을 강제로 해주는 장치인 에크모를 착용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고 밝혔다. YTN 보도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YTN 보도를 믿었던 이유는 YTN 이 보도하기 전 나온 한국일보 기사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11일 오후 6시 30분 경 해당 환자가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해당 환자가 뇌 활동이 모두 정지돼 회복이 불가 능하다고 판단, 가족들이 장례절차를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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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나아가“30대인데다 지병도 없었다. 가벼운 알레르기성 비염 정도만 앓던 건강한 사람 이 뇌사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는 보건당국도 예측하지 못했다” 며 환자 가족들이“박원순 서울 시장이 스트레스를 줘 면역력이 약해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고 주장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전했다.

충격적인 사망소식, 오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YTN과 한국일보 보도 모두 오보임이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한국일보 보도 직후 해명자료를 통해“35번 환자가 뇌사상태라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현재 호흡곤란이 있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고 생명이 위독한 상황은 아님을 주치의를 통해 확인했다” 고 밝혔다. 보건복지 부 관계자는 또한 미디어오늘에“YTN보도는 오보이며 지금 시각 기준으로 사망하지 않았다” 고 설명 했다. 해당 언론도 곧 오보임을 인정했다. YTN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수많은 정보가 들어오던 상황이 었고 이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다” 며“결과적으로 잘못된 보도” 라고 인정했다. YTN은 또한 기사를 내 보낸 지 20분 만인 오후 9시 경“35번 환자 박아무개씨가 사망했다는 소식 조금 전 전해드렸는데 사 실이 아닌 것으로 정정한다” 고 오보를 인정했다. YTN는 나아가 12일 보도자료를 통해“구체적인 팩트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과 다 른 내용의 보도가 이뤄진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 며“현재 병상에서 투병하고 계신 당사자와 가족 여러분, 메르스 확산 저지를 위 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과 관계당국에도 예기치 않은 혼선과 심려를 끼쳐드린 점 거듭 사과드린다” 고 밝혔 다. 한국일보는 YTN보다 오보 를 더 늦게 인정했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굉장 히 가까운 분과 복수의 취재원 에게 확인했고 우리가 취재한 범위 내에서 이게 맞다고 판단 했다” 고 말했다. <메르스 감염

6월 11일자 한국일보 온라인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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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자 YTN 뉴스 갈무리

삼성서울병원 의사 뇌사>라는 제목의 단독기사는 한동안 한국일보 온라인 홈페이지의‘탑’ 을 차지하 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오후 11시 10분 경이 되어서야 기사를 수정했다. 기사제목은 <메르스 감염 삼성서울병 원 의사“뇌사” >에서 <삼성서울병원의사“뇌 손상”위중>으로 바뀌었다.“35번 환자 A(38)씨가 뇌사 상태에 빠져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인 것

한국일보의 기사제목은 <메르스 감염 삼성 서울병원 의사“뇌사 “>에서 <삼성서울병원 의사 ” 뇌 손상 “ 위중>으로 바뀌었다. 뇌사 와 뇌 손상은 엄연히 다르다.

으로 알려졌다” 는 기사내용은“35번 환 자 박모(38)씨가 뇌가 손상됐을 만큼 위 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 바뀌었 다. 뇌사와 뇌 손상은 엄연히 다르다. 한국일보는 이어 기사 말미에“본지 는 앞서 박씨의 상황에 대한 취재를 종

합해‘뇌사 상태’ 로 드러났다고 보도했으나, 의료팀이 뇌사를 공식 확인하지 않은 만큼 표현을 수정했 습니다” “ ‘뇌사’ 라는 표현으로 가족과 독자 여러분께 걱정을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는 말을 붙였다.

‘관계자’통한 사망 확인, 사망선고는 의사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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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와 YTN의 보도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관계자’ 의 말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일보의‘뇌 사’기사는 서울시 관계자, 삼성서울병원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나왔다. YTN 역시‘의료계 관계자 들’ 의 말을 빌려 환자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의 취재 결과 YTN의 오보는 서울대학교 한 의사의 제보에서 나왔다. 한 의사가 해당 기 사를 쓴 YTN 김 기자의 후배에게 제보했고, 김 기자는 한 번 더 확인하라고 했으나 후배는 확실하다 고 답했다. 김 기자는 그 의사가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의사일 것이라 생각하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의사는 사망 사실을 직접 본 게 아니라 의사들 사이에서 도는 글을 보고 제보한 것이었다. ‘뇌사’보도를 한 한국일보는 기사를 바로 내린 YTN과 달리 한참이나 관련 기사를 걸어뒀다. 당사 자와 가족이 명예훼손 소송을 할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일보와 YTN의 오보를 보면 미국 HBO의 드라마《뉴스룸》 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뉴스룸 시즌1 4화의 한 장면이다. 한 여성의원이 총 격 사건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모든 언론이 사망소식을 전했으나 ACN 뉴 스는 총격 사건만 보도할 뿐 사망 소식은 내 보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앵커와 ACN의 보도국에 사

한국일보와 YTN의 오보를 보면 미국 드라마‘뉴스룸’ 의 한 대사가 떠오른 다.“사망선고는 의사가 하는 거지 뉴스 가 하는 게 아니다”

망소식을 보도하라고 다그친다. 한 스태프 는“사망 소식이 없으니 매 초마다 1000명이 채널을 바꾼다” 고 외친다. 그러나 보도국은“사망선고는 의사가 하는 거지 뉴스가 하는 게 아니다” 고 반박한다. 결국 사망은 사실이 아니었고 ACN 뉴스만 사 실보도를 하게 됐다. YTN과 한국일보가 떠올려야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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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

“언제 유명해지고 싶냐면요… ” 노동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르포작가 이선옥 인터뷰·정리 : 나도원 문화예술위원장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성미 급한 더위가 아스팔트와 시멘트에 뒤덮인 도시를 달구고 있었다. 2015년 6월 2일, 서울시 마포구 에 위치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앞에 모인 사람들의 이마와 콧잔등에도 땀이 맺혔다. 노동당이 경총에 게‘최저임금 국민투표’ 를 제안하는 기자회견 자리에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이선옥 작가도 참석했다. 좀처럼 외부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지만“노동당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고”홍보대사를 수락하고 기자회견에도 함께한 것이다. 그냥 병풍처럼 둘러서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왔다며 앞줄에 서기를 끝끝내 마다했다. 하지만 홍보대사 를 호명하는 사회자 덕분에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발언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순서는 투표 퍼포먼스 였다. 기표소에 들어가 도장을 찍고, 투표함 앞에선 포즈까지 취해야 했다. 기자들이 들고 있는 사진기에 서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잘 대처한 이선옥 작가의 모습은 곧 수십 장의 사 진들에 담겨 인터넷 언론에 등장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잘 대처한 건 아니라고 한다. 선글라스를 쓴 채 찍 은 이유도 실은 선글라스를 벗을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해서였다는 것이다. 116


기록노동의 가치와‘의자놀이 논란’ 스스로‘기록노동자’ 라 칭하는 이선옥 작가는 2010년 제18회 전태일문학상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 야기 <그대 혼자가 아니랍니다>로 기록문 부문 장편에 당선되었다. 용산참사 이야기를 담은《여기 사람이 있다》 , 장애인의 권리 이야기인《나를 위한다고 말하지마》 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썼다. 2014년에 주목받 은, 이른바‘섬섬프로젝트’ 의 결과물인《섬과 섬을 잇다》 도 그렇게 세상에 내놓았다. 활동에도 나서고 있 다. 노동자 탄압수단이 되어버린 손배가압류에 대한 연대운동으로 2014년에 출범한‘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에도 적극 참여했다.

2015년 5월 1일에는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위원장으로 취임하여 예술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에도 동참 중이다. 2012년 1월부터 예술노동자와 문화산업구조 개혁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예술인소셜유니온이 2015년에 공식 출범하면서 공동위원장을 맡기로 한 것이다. 아직‘위원장’ 이라는 호칭이 어색하다면서도 해야 할 일은 마다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이선옥 작가가 공동위원장으로 나 선다는 소식을 들은 만화가 최규석 작가는 “한국에 존재하는 노동조합들 가운데 최강 의 외모를 자랑하는 위원장들” 이라 평했다 고 한다(참고로 다른 한 명의 공동위원장은 나 도원이다).

노동문제를 꾸준히 기록해온 이선옥 작 가의 이름이 장안에 회자된 사건이 있었다. 공지영 씨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돕기 위하여 낸 책이《의자놀이》 이다. 그런 데 알고 보니 그 책 안에는 다른 이가 작업 한 르포와 인터뷰 등을 무단으로 가져다 쓴 내용이 많았다. 그 당사자였던 이선옥 작가 와 뜻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기록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는 인사들이 나타나 논쟁이 벌어졌다. 이렇게 저작물의 활용 혹

남의 의자를 뺏는 세상을 고발하기 위해 남의

은 도용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던 중에 문제 를 지적하는 이들을 놀랍게도‘내부의 적’

의자를 뺏는 놀이는‘선의의 목적을 위한 나쁜

으로 힐난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좋은 목적

착취 수단’ 이다.

을 위해 한 일에 대한 문제제기가 우리를 삶과 문화 117


불리하게 만든다는 논리였다. 그러나‘내부의 적’ 이 아니라‘내부착취’ 의 문제였다. 우리는‘선의의 내부착취’ 에 너무 관대했다. 어떤 방송은 좋은 취지를 위해 현장 다큐멘터리를 훔쳐갔고, 어떤 기획자는 좋은 행사를 위해서라며 예술인 착 취를 당연시하고, 어떤 동네는 대의를 위한 헌신을 요구하고, 누구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남의 산물을 그냥 가져다 썼다. 남의 의자를 뺏는 세상을 고발하기 위해 남의 의자를 뺏는 놀이는‘선의의 목적을 위한 나쁜 착취 수단’ 이다. 남의 의자를 뺏는 의자놀이 말고 서로 의자를 챙겨주는 의자놀이가 필요하지 않을까.

알려지는 것과 진실은 다르다 이선옥 작가는 10여 년 전에《작은 책》글쓰기 모임에 나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이 모임과 《작은 책》 이 계기가 되었다. 현대자동차 하청노동 자노동조합 준비위원을 만나면서 인터뷰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양한 글쓰기를 하면서도 노동 문제 관련한 르포가 중심부에 서게 된 시작점이 다. 사실 읽는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르포와 같은 기록물은 품과 힘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칼 럼 등과 같은 글과 달리 인터뷰와 현장취재를 기본 으로 하는 르포를 쓰기 위해선 공부와 준비 그리고 비용과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합당한 대가를 받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어려운 작업을 이어가 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3년, 한진중공업의 김주익과 곽재규 열사 의 장례식에 갔어요. 당시에 투쟁과 죽음 끝에 노 동조합의 요구안대로 타결되었다고 언론들이, 심

한진중공업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장례

지어 진보 성향이라는 언론들조차‘노조의 완승’

식 광경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알려

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기사를 내더라고요. 그런데

지는 것과 진실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

그것이 어떻게 완승이에요? 장례식장에 갔는데

다. 자기라도 그 광경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글을 썼다 118

40~50대의 경상도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울었어 요. 소리 내서 통곡하는 게 아니라 다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어요. 만장을 들고 있는


데… 눈물을 닦는데… 작업복 소매가 다 헤져 있었고…. 깊은 슬픔이 가득했어요. 그것을‘완승’ 이라고 표 현하다니….”

그 광경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여러 번 이야기한 사연인데도 그때 이야 기만 하면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알려지는 것과 진실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고, 자기라도 그 광경을 세 상에 알리고 싶어서 글을 썼다. 그에게 잊히지 않는 장면은 또 있다.

“2012년에 대법원에서 콜트콜텍 마지막 판결이 나왔잖아요. 많은 기자들이 법원에 왔는데, 콜트콜텍 때문이 아니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판결이 나는 날이어서 왔던 거였어요. 콜트콜텍 노동자들 은 졌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이겼어요. 이긴 쪽에는 사람도 많고 언론도 있고 풍선도 날리는데, 콜트 콜텍 쪽은 몇 사람만 모여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죠. 그러면서도 콜트콜텍 사람들이 이긴 쪽에도 참석을 해줘야 하고요.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는데, 슬픔이 소수였고, 그 광경이 서럽고 슬프더라고요.”

약자 대 강자의 구도? 아니라고 봅니다 슬픔을 보고, 슬픔 속에 깃든 진실을 발견하고 전달해온 이선옥 작가는 노동문제에 관하여 계속 글을 쓰고 활동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운 것이 있다. 바로 사법부이다. 사법부 판결에 따라 이기면 정의가 살 아있다고 하고, 지면 정의가 죽었다고 말한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노동자들, 특히 해고노동자들은 사 법부의 판결에 따라 가느다란 희망의 끊을 잡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선옥 작가는 긴 호흡으로 사 법부에 대한 글을 장기 취재하여 쓸 생각이다.‘노동문제와 사법 트라우마’ 에 대한 글이다. 이렇게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종종 삼는 이선옥 작가이지만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만 빠져선 안 된다 고 생각하고 있다. 설득해야 할 대상은 같은 편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 이 아니라 진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말을 던졌다.

“약자 대 강자의 구도로 보는 건 쉬워요.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말하는 할머니에게는 박근혜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약자로 보이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 할머니가 빈곤하다면 그런 분들을 위해야 하지요. 약자 대 강자의 구도가 꼭 옳지만은 않아요. 약자에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지만,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동지(同志)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단어 자체는‘같이함’ 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전제 는‘뜻’ 이다. 뜻을 주체로서 갖지 않고 같음에 집착하면 대오에 나란히 서지 않는 자를 모두 동지가 아닌 삶과 문화 119


“약자 대 강자의 구도가 꼭 옳지만은 않아요. 약자에 편에 서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지만,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자로 간주하고 만다. 틀린 것 아닌가? 어떤 명제, 어떤 지침, 어떤 사안에 대한 태도에 있어 자신과 남을 뜻으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단지 지침 순응이고 대세 편승이 될 것이다. 그런 상태로‘같지 않음’ 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뜻이 있은 후에 같음을 논함으로써 동지란 말이 성립한다. 그래서 곡절 끝에 같은 깃발 아래 모였다면 뜻을 두고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똑같지 않으 면 뜻조차 간단히 폄훼해버리거나, 심지어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문화는 없는지 생각해보곤 한다. 뜻이 아니라 같음에 집착하는 문화에 우리도 젖어있는 건 아닐까. 우리가 염원하는 사회상을, 그리고 정치상을 각각의 조직과 정당 안에서 구현해볼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약자와 강자, 정의, 그리고 동지처럼 아직 우리에겐 제대로 던져보지 못한 질문들이 많다.

노동당의 이름으로 이선옥 작가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옛 진보신당에 입당한 계기는 홍세화 전 대표가 제공했다. 당 시 홍세화 당원이 쓴 일종의 출사표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가 화제가 되었는데, 이선옥 작가 120


도 그 글을 읽고 입당했다. 이어진 2012년 총선에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홍보대사를 맡아 나름대로 열심 히 힘을 보탰다. 하지만 선거의 결과는 패배였다. 선거가 끝난 후 홍세화 전 대표를 만났을 때에 감정이 북 받쳐 울어버렸고, 홍세화 전 대표가 그를 다독여주었다. 사진가 이상엽 작가가 그 장면을 사진기로 찍었 고, 그 사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지금은 가족 간첩단 사건으로 희생된 정해룡 선생 평전과 세월호 학생 전기 등 여러 권의 책들을 준비 하고 있다. 어떤 원고는 이미 마쳤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노동당에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미래에서 온 편지》 에 <노동르포 : 콜트콜텍을 읽는 두 개의 시선>을 연재할 때에는 평소 받는 고료의 절반 수준만 받았고, 다른 일들까지 모두 끊고 그 작업에만 집중했을 정도이다. 사생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임에도 노동당을 위해서라면 사람들 앞에 나섰고, 팟캐스트 녹음에도 응했다. 이선옥 작가는 유독‘노동’ 이라는 이름을 가진 당에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그도 지난 수개월 동안 이 런저런 상황을 전해 들으면서 노동당이 없어지는 건 아닌지 심란해 하고 있었다.

“유명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요. 노동당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노동당이 서러울 때, 내가 유명하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죠.”

그리고 묻지 않았음에도 노동당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고 입술을 뗐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살짝 그리고 간절하게 떨리고 있었다.

“노동당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라지지 말아요, 노동당!”

삶과 문화 121


꽃다지 사람, 조성일 1999년 봄, 일주일 만에 만난 그는 수척해진 모습이었습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고개를 떨군 채“활 동을 그만두겠다” 는 한마디를 내뱉고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순식간에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탁자 사이 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멀어진 거리를 좁히기 위해 나는 무슨 말을 했던가.“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라는 질책이었던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공식적으로는‘음악의 한계’ 라는 우아한 이유를 말했지만, 그것이 아 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새벽녘, 공연을 마치고 사무실로 들어서는 가수들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하고 사기충천한 모습이었습니다. 한 선배가 한 후배에게 격려의 말을 꺼낼 때까지는. 조언과 격려가 지나쳐 참견과 훈계가 되고 언어폭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갓 들어온 후배가 들을만한 말이라기에는 지나쳤습 니다. 선배의 언성이 높아지더니 테이블이 넘어지고 술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 다. 난장판이 된 술자리를 같이 치우다 슬그머니 합주실로 들어간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위압적인 언어 폭력을 행사하던 선배, 맨몸으로 고스란히 당하던 후배, 그 사이에서 주춤거릴 수밖에 없던 자신. 이 모든 게 힘들었으리라. 그리고 그날 그는 가출을 했습니다. 일주일 만의 만남은 침묵과 막무가내 설득을 위한 웅변이 뒤섞이며 무거워져 갔습니다. 그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매니저와 나는 그의 결정을 수용함으로써 일주일 전의 행패를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했던 말.“마지막으로 이미 약속한 공연을 마쳐라.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네가 다시 활동하고 싶은 이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분명히 찾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도 활동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면 그만두어도 좋다.”다행 히 그는 1999년 5월 15일 연세대 노천극장 무대에 서 있었습니다.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르는 무대였습 니다. 그 공연을 마치고 그는 남았고 2013년 봄까지 꽃다지 사람이었습니다. 조성일의 이야기입니다. 공공연히 나는‘바보 조성일’ 이라고 진심 어린 농담을 하곤 합니다. 돌이켜보면 조성일이 조금만 영악 했다면 꽃다지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첫 인연이,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이, 수년의 골방 생활이 그러했습니다. 1997년 여름, 꽃다지의 전주 콘서트에 찾아와 전한 테이프에 실린 그의 노래는 꽃 다지를 설득하지 못했습니다.“다음에 뵙지요” 라는 완곡한 거절을 곧이곧대로 믿고 다시 오디션을 보겠 다고 찾아온 그는 참 눈치 없는 바보였습니다. 가수로 들어왔음에도 첫 두 달을 콘서트 기획팀에서 일하

노래의 꿈

점거 민정연 문화기획자, 꽃다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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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온갖 잡무를 군소리 없이 하던 그는 참 우직한 바보였습니다. 1년에 200회가 넘는 현장 공연 때문에 그 의 노래를 들어줄 틈이 없는 선배들의 어쩔 수 없는 무관심에도 묵묵히 아침부터 밤까지 노래 연습에 몰두 하던, 세월을 지나 선 첫 콘서트 무대에 대한 혹평에 변명하거나 투정부릴 줄 모르던 그는 참 욕심 없는 바 보였습니다. 조성일이 그런 바보여서 참 다행입니다. 바보가 아니었다면 첫 번째 거절에 냉큼 다른 길을 선택했을 테고,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에 화내며 포기했을 테니 말입니다.

벼랑 끝 삶이 만나 만들어진 노래 <점거> 바보가 만나는 무정한 세상은 그를 노래만 하는 가수로 머물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바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주어도 타박할 사람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눈에 들어온 세상사에 온 마음을 다 주는 바보 말입니다. 다른 이들보다 컸던 그의 분노는 <불태우자>를 만들었고, 작은 보살핌 과 마음만으로도 충분했을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아이야>를 만들었습니다. 벼랑 끝에 선 심경이었을 자 신의 삶과 현장에서 만난 벼랑 끝 삶이 만났을 때에는 <점거>와 <호각>을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점거>라 는 노래를 소개하려 합니다. <점거>는 <호각>과 더불어 창작자 조성일을 각인시켜준 노래로, 조성일이 만 든 노래 중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작사하지 않은 노래이기도 합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꽃다지는 한 달에 한 번씩 창작곡을 의무적으로 발표하는 내부 워크숍을 진 행했습니다. 많은 노래가‘한 번 더 들어보자’ 는 평조차 듣지 못하고‘폐기!’한마디에 휴지통으로 직행했 습니다. 이때 가장 많은 노래를 가져온 사람이 조성일입니다. 무려 6곡을 가져왔는데 모두 폐기처분 당했 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던 2003년 봄날, 처음으로 제 평가표에 동그라미와 별표를 그려 넣은 노래가 나왔 습니다. 처음으로 긴가민가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노래가 좋아서“한 번 더 들어보자” 고 했습니다. 조성일 은 노래를 들려주며“이미 투쟁이 끝나버려서 쓸 수는 없을 것 같지만…” 하며 망설였지만, 저와 다른 구성 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한국통신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비정규직노동자가 걷 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이 노래는 비단 한국통신 비정규직노동자의 노래라고만 할 수 없다. 시 류를 타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노래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지금도 <점거>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는 <점거>를 만들던 당시에는 드물었던 비정규직노동자의 불안정한 노동 현실과 투쟁이 훨씬 더 많아진 지금의 현실, 10여 년 전에 특정 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을 담은 노래가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 하고 통용되는 현실에 막막할 뿐입니다. 20년 가까이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함께하면서‘그때 우리가

‘그때 우리가 그 현실을 제대로 돌파했더라면…’ 하고 통한의 눈물을 삼키는 몇몇 순간이 있습니다. 제게는 <점거> 속 싸움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삶과 문화 123


그 현실을 제대로 돌파했더라면…’ 하고‘통한의 눈물’ 을 삼키는 몇몇 순간이 있습니다. 제게는 <점거> 속 싸움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함께’ 하는 그 길 위에서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지금의 KT노동조합)는 2000년 10월 11일 임시대의원 회를 열어 비정규직노동자 를 조합 가입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규약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로써 비정규직이 독자 노조를 만들 길이 열렸으니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세상만사입니다. 2000년 10월 14일, 정규직 노조의 가입 승인이 떨 어지지 않아 노조 가입을 못하던 계약직 노동자 1490명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 다. 그러나 한국통신은 전국 8천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을 2000년 12월 31일 자로 계약해지하고 도급업 체로 전환해버립니다. 이때부터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영하 20도에서의 노숙농성, 한강대교 고공시위, 목 동전화국 점거농성, 국회본회의장 농성, 광케이블 고공시위 등의 투쟁을 전개합니다. 이 과정에서 28명이 구속되고 100명이 불구속 기소, 200명이 즉심에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10억의 손해배상이 떨어졌고, 2002년 5월 12일 사측과 합의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도급업체 취업보장, 민형사상 책임면제, 노조해산과 약간의 위로금이 합의 내용의 전부였습니다. 싸움을 시작한 지 517일 만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한국통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다면, 나중에라도 연대해 싸웠다면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했을까요?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들의 투쟁 이후,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 자동차, 하이닉스, 현대하이스코, KM&I, 기륭전자, KTX 여승무원 등 수많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 이 이어졌습니다. 십 수 년 사이에 1000일, 2000일 투쟁은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비정규직노동자들 은 기약 없는 싸움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 암담한 것은 당분간 이 현실이 더 많은 노동자 의 삶이 될 것이란 예상입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탄식은 점점 더 극단적인 싸움 방식을 고민하게 합니다. 살기 위해 선택한 투쟁 방 식이 죽음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끝이 보이지 않는 고립된 희망, 정규직의 꿈을 안고서 일터를 빼앗아 버린 그 전화국으로 전화국으로 뛰어든다’ 라고 했던 절규를 멈출 수 있는 것은‘함 께’ 하는 우리로부터 시작할 겁니다. 살기 위해 노래의 길을 벗어나고자 했던 조성일은 살기 위해 또 다른 노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여전 히 음악만으로 버티기 힘든 현실이지만, 그런데도 음악만으로 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조성일은‘함 께’ 하는 그 길에 있으리라 믿습니다.‘같이 희망을 만들자’ 는 말이 무기력하게 들리지 않는 현실을 만드 는 그 길 위에서 그를 오래 보고 싶습니다.

‘정규직의 꿈을 안고서 일터를 빼앗아 버린 그 전화국으로 전화국으로 뛰어 든다’ 는 절규를 멈출 수 있는 것은‘함께’ 하는 우리로부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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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 오동길 글 /조성일 가락 /꽃다지 노래

멀리 보이는 빌딩 숲 사이 전선 가닥 어깨에 메고 맨홀 속으로 기어들어 가던 시간들이 흐릿하게 지나간다 지나간다 십 년 그 노동이 눅눅이 베인 작업복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계약 해지의 그 기억이 비장하게 스쳐 가고 스쳐가고 음 스쳐 가고

이른 새벽어둠을 밟고 무심히 지나치는 행인의 표정이 싸늘히 목덜미를 눌러도 흔한 카메라 한 번 터트리는 기자들 눈엔 띄지 않고 띄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고립된 희망 정규직의 꿈을 안고서 일터를 빼앗아 버린 그 전화국으로 전화국으로 뛰어든다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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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접으며

우리가 정말 진보했을까 박권일 기관지위원,《88만원 세대》공동저자

잇따라 터진 데이트폭력 사건들을 보며 나는 일시적 실어 상태에 빠져들었다. 며칠간 아무런 글을 쓰 지 못했다. 사람들의 분노는 우선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 또는 폭력성이 지니는 근본적 비윤리성에서 비롯했지만 가해자의 사회적 포지션에도 긴밀하게 닿아있었다. 가해자가 평소 글과 말을 통해 거듭 강조 하던 가치들은 사회평균에 비해 매우 좌파적이었다. 공적 발언에선 그토록 진보적이었던 그들이, 사적 삶 에서 폭력을 일삼아왔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거의 즉각적인 혐오와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내뱉 은 말과 글을 스스로 배신했기에 더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진보진영, 운동권 내부의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존경받는 진보인사가 자신의 삶 속에서 얼마나 보수적일 수 있는지, 혹은 반진보적일 수 있는지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해왔다. 신자유 주의를 격렬하게 반대하던 어떤‘선생님들’ 이 대학원 제자들이나 회사 노동자들을 얼마나 지독하게 착취 하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좌파적 견결함을 늘 과시하는 어떤‘선생님’ 은 성희롱 발언을 밥 먹듯이 일삼는다. 학벌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러 글에서 보여줬던‘선생님’ 이 사석에서 모교 자랑(당연히 서울 대)을 늘어놓는 정도는 차라리 애교로 보일 지경이다.

“양심선언” “맞아죽을 각오로 쓴 내부고발” “뼈를 깎는 성찰” 이 클리셰처럼 반복되지만, 아침에 일어 나면 늘 같은 날 같은 시각인 어느 헐리우드 영화《사랑의 ( 블랙홀》 이었던가)처럼 우리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 돌고 있다.‘PC함’ 에 대한 강박, 즉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태도는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특별히 나아지지 않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게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의 해결책들 이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나는 사태가 터졌을 때 개인의 처벌과 교정에만 집중하면서, 재발을 방지하고 줄여줄 공적 기준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하고 실천적으로 세련하는 데에는 게을렀다는 점이다.‘PC함’ 에 대한 강박은 어떤 개 인의 일탈을 줄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하나마나한 당위적 선언의 성찬이 아니라 실용적 의미에서, 그리고 대중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의 가이드라인이 활발하게, 또 유연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 기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대에 맞게 제대로 업데이트되었는지는 의문스럽 다. 다른 하나는‘거악’ 이라는 알리바이 뒤로 계속 후퇴하게 되는 사회적 상황이다. 이를테면“지금 해일 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겠냐” 는 식의 마인드다. 이명박, 박근혜, 혹은 어떤 자본과의 싸움이 가장 급박한데 내부문제로 전열을 흐트러트릴 수 없다는 전선주의적 사고방식은, 어찌 보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지금 훨씬 팽배해 있다. 우리는 정말 진보했을까. 모르겠다. 분명한 건 다시 시험대에 섰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살려야 한다.’자칫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 128


표지 이야기

노동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르포작가 이선옥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2003년, 한진중공업의 김주익과 곽재규 열사의 장례식에 갔어 요. 당시에 투쟁과 죽음 끝에 노동조합의 요구안대로 타결되었다고 미래에서 온 편지 제22호

언론들이‘노조의 완승’ 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기사를 내더라고요. 그 런데 그것이 어떻게 완승이에요? 장례식장에 갔는데 40~50대의 경 상도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 울었어요. 소리 내서 통곡하는 게 아니라 다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어요. 만장을 들고 있는데… 눈물을 닦는데… 작업복 소매가 다 헤져 있었고…. 깊은 슬픔이 가득 했어요. 그것을‘완승’ 이라고 표현하다니….”

발행인 나경채 편집인 이장규 위원회 김건담 김성현 김헤연 박권일 백시진 장석준 정정은

정철수 조윤호 최백순 교 열 정정은 최백순 디자인 고미숙

이선옥 작가는 그 광경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눈물 을 흘렸다. 알려지는 것과 진실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고, 자기라도

등록일 2013년 6월 11일 (등록번호 영등포, 라00407)

그광경을 세상에알리고싶어서글을 썼다.

발행일 2015년 6월 30일

슬픔을 보고, 슬픔 속에 깃든 진실을 발견하고 전달해온 이선옥 작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주 소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664 한흥빌딩 2층 노동당

가지만,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만 빠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설득해

전 화 02) 6004-2006, 2007

야 할 대상은 같은 편이 아니라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 진실을 알고

팩 스 02) 6004-2001

있는사람들이아니라진실을 모르고있는사람들이기때문이다. “약자 대 강자의 구도가 꼭 옳지만은 않아요. 약자에 편에 서는 것 이 정의라고 말하지만,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 이선옥 작가의 인터뷰 전문은 116~121쪽 <숨은 문화예술 당원 찾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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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제22호

2015.7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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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 노동당 ■ 2015 정기 당대회 스케치 당원총투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특집

올리자! 최저임금 1만원! 기획 ■ 정기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당의 위기,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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