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 24호 (2015 09-10)

Page 142

A 9 미래편지-내지

편지를 접으며

철학적으로싸우기: 역경속에서살아가겠다는결심

사업이다. 도랑치고 가재 줍고 선물도 만드는 셈이다.

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으니 그냥 웃다 말고, 비아냥거리다 말 수밖에 없었다.

만들어갈 수도 있다. 단순한 환경보호운동이 아니라, 바다와 해안을 청소하면서 돈도 벌고 추억도 남기는

수 있을 뿐, 정확한 사실을 들을 수는 없었다. 우리도 분노해야 할 것 같고 분노하고 싶은데 누구도 우리에

다쓰레기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아니면 자신이 버리거나 주운 쓰레기를 가져와 자기만의 기념품을 직접

다.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어떤 배제의 역사, 권력의 문제가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것이라고 짐작만 할

팔거나 비치코머들을 대상으로 공예학교를 운영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관광객들은‘바다상점’ 에서 바

람들이 이렇게 들고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궁금해서 기자들한테도, 선배들한테도 물어봤

양솔규 편집위원 미 : 이 사건을 계기로 대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시작했고 어디쯤 와있는가? ‘안정(安定)’ 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아니다.‘불안’ 의 반대말이‘안정’ 이다. 이 말은 자칫‘보수적 가치’ 를 대변하는 말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 속에서‘안정’ 은‘보수’ 나‘진보’같은 이념적 지형보다 는‘생존’ 과 밀접히 결부된 말이었다. 참혹한 한국전쟁이 끝난 후 모든 국민들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상황과 조건에 맞게 다양한 전략을 선택했지만 목표는 단 하나,‘안정’ 이었다. 당시에 ‘안정’ 이라는 말은‘항구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상태’ 였다. 그럼‘불안’ 이란 무엇인가? 사전에는‘걱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음’또는‘걱정스럽거나 초조하여 편

홍 : 이전부터 불만이 쌓여있었다. 논란 발생 후 겸사겸사 젊은 작가들, 기획자들, 기자들이 모였다. 그 래서 얘기했던 것이, 그들이 했던 방식대로 그들을 치지는 말자는 거였다. 그건 꼰대 같으니까. 우리는 전 혀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걸 해보자고 했다. 처음에는 좋은 사진상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작가들 지 원제도를 고칠 수 있는가 함께 고민해봤다. 그런데 이것도 기존 시스템 안에서 헐떡대는 것 같았다.

토론하는 시간을 내기로 했다. 끝이 어디일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대에 옆에서 작업하고 있는 사

한’개인의 삶과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는‘사회적 조건’ 이다. 우리가 힘들게 만들어온‘안정’ 의 울타리가 뉘

과 관련된 공간에 관해 읽는 일부터 시작했다. 심사하고 줄 세우는 거 말고, 주기적으로 만나서 자랑하고

이어‘항구적인 생존’ 을 의미하는‘안정’ 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한 없이‘불안

그래서 우선은 우리끼리 사진을 존중하고 읽어보기로 했다. 사진은 물론이고 사진에 관한 글이나 사진

안하지 않다’ 고 설명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간에 평생도 모자라 세대를

엿뉘엿 지고, 대신‘불안’ 의 그림자가 엄습해왔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올 겨울을 뜨겁게 달굴 것이다. 역사는 패배에 더욱 관대하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기고자 하지만, 최종적으로 패배할 수도 있다. 노동시장은‘안정’ 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가 아 니라‘항구적인 불안’ 을 관철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면 발명의 아 버지는 고집이다” 라는 토인비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화요일의 약속 - 첫 번째

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식판 들고 줄 설 수는 없다.

더 이상 식판 들고 줄 설 수는 없다 ‘지금여기’ 의 사진가, 홍진훤 모래도 훌륭한 기념품이다. 난개발로 인해 해운대 모래는 이미 멸종했으나, 에코에코 산하 모래연구소에서 해운대 고유 모래를 복원 중이다. 9월 하순이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다.

“울창한 숲이 말라죽은 상태가 되었을 때” ‘달아난 원시인’ 들은 인간이 되지 못한 반면, 진정 인간이 된 것 은“앉을 나무조차 없어진 그 자리에 버티고 있던 무리들” 이며“나무 열매가 익지 않자 짐승을 잡아 고기를 먹

사진・글 현린 편집위원, 문화예술위원장

은 무리들” 이며“햇볕을 쫓아 이동하는 대신 불과 의복을 만든 무리들” 이며“거처의 방비 벽을 구축하고 아이 들을 훈련시켜 세계의 비합리성에 합리성을 입증한 무리들” 이라고 한다. 단지 자기의 자리를 고수하자거나

이번 공모전에서 이 아이디어가 채택된다면 상금 천 만 원은 물론, 에코에코의 자원재사용사업 자체가

고집을 부리는 게 능사라는 얘기가 아니다.‘불’ 과‘의복’ 을 만들고, 고기를 잡고,‘방비 벽’ 을 구축하고 아이 들을‘훈련’ 시키자는 말이다. 그래야 현재의 비합리성을 넘어‘안정’ 을 위한‘진지’ 가 구축될 수 있다.

커다랗고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두근두근,‘바다상점’ 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화요일의 약속> 연재를 시작하며

예전 우리의 운동은 이러한 노력을 진지하게 추구했다. 유혈적 착취에 맞선 민주노조의 건설과 전국적 연 대체 건설은‘불’ 과‘의복’ 이었다. 산별노조와 노동자정치세력화라는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는‘방비 벽’ 이었 다. 퇴직연금관리를통한조직률높이기, 연기금에대한통제등일본과는다른가능성을찾기위해노력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함께 추구해야 할‘전략적 목표’ 를 상실했다. 남은 선택지는“햇볕을 쫓아 이 동” 하든가 아니면“그 자리에 앉아 버티기만 하는 게으름” 으로 좁혀졌다. 우리가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지금 이 시대의 바람과 기온과 삶의 조건 속에서 가장 적합한‘불’ 과‘의복’ 의 형태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훈련’ 이 필요한지이다.‘불안’ 을 좌우하는 것은‘생존 조건’ 의 유무가 아니라‘생존 조건’ 을 만들 수 있는‘자신감’ 과‘연대감’그리고‘사유’ 의 가능성이다.“역경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결심” 은 결코 혼

일생 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은 화요일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만큼 대개의 사람들에게 화요 일은 월요일 다음 날이란 것 말고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날입니다. 그러나 노동당 당원을 비롯한 세계 사회 주의자들에게는 적어도 두 화요일, 1818년 5월 5일 화요일과 2017년 11월 7일 화요일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특별한 날입니다. 우선 1818년 5월 5일 화요일. 2백여 년 전 5월의 첫 화요일은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의 기초를 놓은 칼 마 르크스가 태어난 날입니다. 어린이날치고는 아주 특별한 어린이가 태어난 화요일이죠. 1925년 조선공산당 건설을 주도한‘화요파’ 의 명칭도 마르크스가 태어난 화요일을 기념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 모두 과거 의 일들입니다. 그럼 다음 화요일은 어떤가요?

136

삶과 문화 137

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본인은 어떤가?

홍 : 물론이다. 안 할 이유가 없다. 젊은 작가들이 안 하고 싶겠냐. 판만 깔아주면 다 알아서 한다.

임시풍경 中 (2013)

은 예술이고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예술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때문에 이들에게는 상업예술이라

미 : 본인 사진 얘기를 해 보자. 2009년에 사진비평상 수상작도 그랬고, 2012년 <TAKE LEFT> 전시

사진촬영, 영상촬영, 영상편집, 책편집, 인쇄

1992년 러버덕 장난감 2만 8천 개를 실은 화물선이 폭풍우를 만나 컨테이너 박스를 태평양 바다에 떨어

작도 저널리즘 사진에 가까웠다. 그런데 막상 개인전의 경우, 예컨대 2013년 <임시풍경>이나 2014년 <붉

디자인, 전시기획, 부스설치 등이 다 가능한

뜨리는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로 인해 러버덕 수만 개가 바다에 표류하게 되었고, 이후 해류를 따라 떠

은, 초록>, 그리고 2015년 <마지막 밤(들)>에서는 저널리즘 사진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의 사진들을 전시

사업자다. 처음엔 홈페이지 만들고 사진 찍

돌았다. 러버덕들은 장기간 바다를 떠다니며 호주, 인도네시아, 알래스카, 남미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이

했다. 어떤 이유가 있는가?

는 일 외엔 아무 것도 못 했다. 그런데 사람들

기획들에서 보듯이 프로젝트 중심으로는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자기 작업이기도 하기 때문이

이 가끔씩 물어본다. 혹시 영상편집 할 줄 아냐, 책편집 할 줄 아냐, 우리 전시하는데 부스 만들 줄 아냐고.

다. 대중적인 작가부터 전위적인 작가까지 진보적인 예술가들 정말 많지 않나. 이들이 모일 수 있는 프로

홍 : 나에 대한 생각의 변화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저널리즘 사진을 보고 자랐고 그렇게 찍는 게 다라

그러면 무조건 다 할 줄 안다고 한다. 그리고는 돌아와서 혼자 배워서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재벌

젝트를 기획하고 판을 만들어주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진보정당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당 깃

해운대에는 바다뿐만 아니라 제법 규모가 큰 수영강 하구가 있다. 수영강은 해운대구를 비롯하여 기장

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널리즘 사진은 나랑 맞지 않았다. 나란 사람 자체가 주장 같은 것을 좋아하지도 않

이 되어버렸다. 직원은 나 혼잔데. 돈 벌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요새 다 그렇지 않나. 안 그런 사람이

발 꽂을 필요 없지 않나? 노동당 문예위나 정의당 문예위가 유의미한 공동기획을 한다면 참여할 작가들

군,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 수영구 등 부산시의 6개 구・군 사이를 흐른다. 이 수영강에서부터 동해안 송

고, 급박한 현장에 적응도 잘 못하고, 순간 포착 같은 것도 못한다. 그런 것에 큰 감흥을 느끼지도 못하고

어디 있나. 조선일보와 삼성 일만 아니라면 뭐든지 한다.

많다.

정해수욕장까지, 해운대 연안 구석구석에는 한반도 어디나 그렇듯이 파도나 조류를 따라 떠내려 온 쓰레

해서, 대신 현장 주변을 맴돌며 천천히 찍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일치해야겠더

기들이 잔뜩 쌓여있다. 눈에 잘 띄지 않으니 누구도 치우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라. 멋들어진 사진은 못 찍는다. 내 정서에 맞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좀 더 솔직하게, 솔직하게 찍는다.

은 1톤짜리 러버덕을 만들어 엄청난 인기를 끌며 돈을 벌었다.

원일컴-노동당

자서는 할 수 없는‘집단적 고민’ 의 결과다. 박근혜 정권과의 동투(冬鬪) 속에서 우리가 이러한“큰 결심” 을얻

삶과 문화 141

같은 것들을 사진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세상이 바뀌어야 돼” 가 아니라 그 자리

을 수 있다면 싸움의 승패 유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철학적으로 싸우자.

132

매하는 것을 수익모델로 삼는다. 비치코머들은 노동의 대가를 얻을 테고, 공예작가들은 공예품을 만들어

삶과 문화 129

삶과 문화 133

2013년 첫 개인전을 할 무렵 사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과 방식, 뉘앙스 그렇게 해야 오래 간다. 남들 시선 의식하지 않고, 스트레스 안 받는다.

144

140

그리고 주워낸 쓰레기를 재활용품으로 되팔거나, 공예기술을 접목해서 해운대 관광 상품으로 만들어 판 ‘바다상점’ 은 일차적으로 이런 쓰레기를 찾아서 치우는 과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일감을 얻는다. 2014년 서울 석촌호수에 전시되면서 잘 알려진 고무오리 러버덕 프로젝트도 그 기원은 비치코밍이다.

걸 주워서 수집한 사람도 있고 학술적으로 연구한 해양학자도 있는데, 네덜란드 작가 플로렌타인 호프만

미 : 개인적으로 하는 사진작업과 상업적인 작업 사이에서 갈등이 많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하는 작업

미 : 좋은 판을 마련하고 초대하면 본인도 응하겠다는 말인가? 홍 : 예술가들은 어느 정당에 소속되기가 힘들다. 소속돼도 당적이나 갖고 있지. 하지만 세월호 관련

‘지금여기’ 의 내부

이 있다면 말해 달라.

운영자 외에 스튜디오 디렉터이기도 하다.

지극히 사(회)적인 사진 비치글라스는 파도에 떠밀리며 자연스럽게 마모된 유리조각을 말한다. 비치글라스로 다양한 장신구나 선물을 만들 수 있다.

미 : 그렇다면 정치조직인 정당과의 연대는 어떤가? 지금 여기 예술가들을 위해 노동당이 해야 할 역할

가지고 있는 명함이 세 종류다. 사진가, 공간 사람이 빡세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달한다.

붉은, 초록 中 (2014)

결국 갑과 을의 관계로 진행된다. 이런 경우에는 서로 하면 안 된다.

홍 : 월세로만 매달 70만 원이 나간다. 두

으로 권장할 게 아니다. 좋은 품앗이는 서로가 주체가 된다. 하지만 관이나 기업에서 권하는 재능기부는 시나 일반 기업에 재능기부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재능기부 하는 예술가는 개념 있는 예술가라는 식

창신동 골목에 자리한‘지금여기’

서 내가 먼저 찾아가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 조직은 품앗이가 필요하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서울 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연대의 기본이라 생각한다.《빅이슈》 가 창간될 때 매력적인 사업이라 생각해 홍 : 재능기부는 애매하다. 어디에는 서로의 노동력을 나눠 쓰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사라 기부다. 본인도 재능기부 경험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 : 예술은 돈과 무관해야 한다는 논리로 많은 예술가에게 무료봉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른바 재능

예술가의 연대 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때도 있다.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돈 받아서 그들이 만들어 달라는 대로 만들었는데 쓰레기가 나올 때도 있 자에게 직접 파는 것이 가능해졌다. 먼저 팔지 않을 때 오히려 가격이 높아진다. 예술이냐 아니냐는 돈을 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고? 옛날에는 한정된 소수만이 예술을 소비했다면 지금은 불특정 소비 홍 : 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걱정이면 모르겠는데,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해야 예술이 순수하

원일컴-노동당

미래편지-내지

9

A

Process

Cyan Magenta Yellow Blac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